신편 한국사고려 시대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Ⅰ. 교육1. 중앙의 교육기관1) 국자감(1) 국자감의 성립과 운영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1. 중앙의 교육기관
          • 1) 국자감
            • (1) 국자감의 성립과 운영
            • (2) 예종의 교육개혁과 국자감
            • (3) 학식의 제정과 성격
            • (4) 국자감의 직관과 학제 운영
          • 2) 동·서학당
            • (1) 설립
            • (2) 운영과 성격
          • 3) 10학
          • 4) 사학 12도
            • (1) 설립
            • (2) 운영
            • (3) 성격
        • 2. 지방의 교육기관
          • 1) 향교
            • (1) 향교 설치의 배경
            • (2) 향교의 설치와 변천
            • (3) 향교의 운영실태
          • 2) 서경학교
            • (1) 설치 배경
            • (2) 서경학교의 설치
            • (3) 서경학교의 변천
            • (4) 서경학교의 운영실태
          • 3) 서재
      • Ⅱ. 문화
        • 1. 과학과 기술
          • 1) 천문 역산
            • (1) 천문 역산의 제도
            • (2) 천문 관측
            • (3) 역법의 발전
          • 2) 지리
            • (1) 지도와 지리지
            • (2) 풍수지리학
          • 3) 의학
            • (1) 의료제도
            • (2) 의약 서적의 간행과 수입
            • (3) 의약의 교류
          • 4) 기술
        • 2. 문자와 언어
          • 1) 문자
          • 2)언어
        • 3. 사서의 편찬
          • 1) 7대실록·고려실록
            • (1) 7대실록
            • (2) 고려실록
          • 2)≪삼국사기≫
            • (1)≪삼국사기≫의 편찬
            • (2)≪삼국사기≫의 내용
            • (3)≪삼국사기≫의 성격
          • 3)≪편년통록≫과 기타 사서의 편찬
            • (1) 고려 전기 사서의 성격
            • (2)≪편년통록≫
            • (3) 기타 사서의 편찬
        • 4. 문학
          • 1) 한문학
            • (1) 한문학의 본격화와 그 양상
            • (2) 고려 전기 한문학에서의 상상력·의식·풍격
          • 2) 향가 및 그 잔영
          • 3) 설화문학
          • 4) 불교문학
        • 5. 미술
          • 1) 건축
            • (1) 건축활동
            • (2) 도성·궁궐
            • (3) 가람 배치
            • (4) 목조건축
          • 2) 석조물과 조각
            • (1) 석조물
            • (2) 조각
          • 3) 서화
            • (1) 회화
            • (2) 서예
          • 4) 공예
            • (1) 도자공예
            • (2) 금속공예
            • (3) 목칠공예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Ⅰ. 교육

1. 중앙의 교육기관

1) 국자감

(1) 국자감의 성립과 운영
가. 성립 배경

 國子監은 고려시대 최고 학부로서 관료 배출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고려시대의 학제로는 중앙에 국립학교인 국자감과 東·西學堂(공양왕 이후는 5부 학당)이 있고 사학으로는 崔冲 이후에 12徒가 있었으며, 지방에는 鄕校가 있어 교육을 주도해 나갔다. 최고 학부인 국자감의 성립이 고려사회에 새로운 교육전통을 마련하였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국자감은 고려 건국 후 70여 년이 지난 成宗 때에 성립되었다. 그러나 국자감이 설립되기 30여 년 전에 이미 과거제가 운영되고 있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이것은 성종 이전에도 관료 수급을 위한 교육 전통이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高麗史≫選擧志 學校條가 “太祖 13년에 西京에 행차하여 학교를 설립하였다”001)는 기사로부터 시작되고 있는 점과 광종 때에 이미 과거제도가 성립 운영되어 관료를 배출하고 있었다002)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태조는 즉위 며칠 후에 설관 분직에 따른 인재등용의 조서를 발표하였다.

設官分職은 유능한 사람을 임명하여 그 職을 담당하게 하는 데 있고 利俗安民은 현명한 사람을 뽑는 것이 급한 일이다. …오직 사람을 알아보는 데 밝지 못하고 官을 살핌에 실수가 많아 어진 사람을 빠뜨렸다는 탄식이 일어나게 하고 깊이 선비 얻는 일에 어긋날까 염려하여, 밤낮으로 걱정되는 것은 오직 이것뿐이다. … (중략) 마땅히 列辟을 등용하는데 群公을 낱낱이 시험하여 정선에 힘써(歷試精選) 모두 고르게 할 것이니 … (≪高麗史≫권 1, 世家 1, 태조 원년 6월 신유).

 여기에서는 인재 등용과 이를 위한 제도적 장치로써「歷試精選」의 원칙이 제시되고 있다. 이로 볼 때 국초부터「역시정선」으로 인재를 등용할 수 있을 만큼 관료 후보자들이 많았음을 알 수 있고, 또 광종 때에 실시한 科擧制가 전국을 대상으로 하고 있고 당시의 합격자들이 대부분 지방 출신이었다는 것은 교육이 전국적으로 보편화되고 있었음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은 신라적 교육전통에서 배양된 인재들이 고려 건국 후 관료의 자원으로 축적되고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신라시대는 이미 國學이 있어 고급 인력을 배출하였고, 또 宿衛學生들도 있어 고도의 유학적 교양을 지닌 인재들이 많았다.003) 또 9州·5小京을 비롯한 지방에는 學院의 명칭을 갖는 학교가 널리 보급되어 인재를 양성하고 있었다.004) 그리고 신라 말 지방에 할거한 鄕豪들은 중앙의 통제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그들 영역을 통치하던가 또는 그들 세력권을 확충하는 과정에서 지식계급의 행정능력을 필요로 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향호들은 그들 자체의 장기적인 인적 자원의 수급을 위하여 종래의 학교 교육을 장려하거나 새로이 학교를 창건하는 정책을 취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목적에서 나말에는 도처에 학원이란 명칭의 학교가 보편화되었을 가능성이 있고, 이것은<龍頭寺鐵幢記>에 학원의 명칭이 보이는 것으로도 유추할 수 있다.005)

 태조 13年(930)은 통일 이전으로써, 이 때 태조가 서경에 행차하여 “別創學院”하였다는 사실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고려 건국 후 서경은 황폐되어 藩人들의 수렵장이 되고 있었는데 태조가 즉위하자 그 곳에 관심을 가져 黃州·鳳州·白州 등의 민호를 徙民시키기도 하고, 大丞 質榮과 行波 등의 부형 자제 및 여러 주현의 양가 자제를 옮겨 충실을 기하였다. 또 축성과 아울러 관부와 관리를 두고 行政副都로서의 기능을 강화하였다. 태조 13년의 “별창학원” 기사는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부도로서의 행정기능과 관련하여 설치된 제도로 보여진다. 즉 이곳에 옮겨 살게 된 명문가와 주·현의 양가 자제를 위한 학교의 설립은 행정부도로서의 서경이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과제였을 것이며, 학원이라 한 것은 신라시대의 전통적 지방학교의 명칭을 그대로 답습하였다고 볼 수 있겠다.006)

 태조는 건국 후 유학과 관계된 관부들을 설치하고 유학자들을 수용하여 계속 학문에 전업할 수 있도록 하기도 하였고, 또 직접 인재를 양성하기도 하였다. 즉 태조는 국초부터 白書省·元鳳省·內議省을 설치하였는데, 백서성은 이후 秘書省·典校寺와 연결되는 것으로서 經籍祝疏를 담당한 학문적 관부였다.007) 원봉성은 泰封 이래의 학문적 관부로서 유학이념을 보급하는 기능을 담당하였으며, 태조 13년에 설치된 것으로 보이는 내의성도 지식계급을 등용하여 이후 유교적 정치이념을 실현하는 관부로 발전하였다.008) 특히 원봉성은 유학의 교육도 담당하였으며, 성종 때에 유교정치의 향방을 제시한 崔承老도 일찍이 이곳에서 원봉성 학생으로 수학하였다.009) 이 밖에도 翰林院·光文院이 있어 학생 또는 서생의 명칭으로 학문을 연수하였다.010) 이와 같은 배경을 전제로 할 때, 성종 이전까지 학교 설립에 대한 기사가 선거지에 나타나지 않은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성종 때에 와서「詣京習業」과 국자감 설립 등의 교육 개혁이 행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것은 성종 때 정치체제의 정비와 관계가 있을 것이다. 성종 이전까지는 지방호족에 대한 강력한 통치가 불가능하였고, 지방은 鄕豪의 지배하에 행정이 주도되고 있었다. 태조는 “按賓以禮 惠和之意”라는 유교적 명분을 앞세워 향호들을 후한 예물과 겸손한 태도로서 포용하였고 이들에게는 지방의 통제권을 위임하였다. 이후 광종과 경종을 거치는 동안 이들에 대한 숙청 작업이 시도되었지만, 성종 이전까지는 외관이 파견되지 않았다. 외관이 파견되지 않았다는 것은 지방행정이 국가의 직접적인 지배와 통제력에서 벗어나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지방교육도 이들 향호들에게 위임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성종 때에는 강력한 집권화정책이 수행되었다. 즉 성종 원년에는 唐制에 따라 중앙관제를 제정하여 3省 6部를 설치하고, 이어 다음해에는 12牧에 지방관을 파견하였으니, 이제 지방에서 자치권을 가졌던 호족들은 중앙정부의 통제권에 들어가게 되었다. 또 이 때에 개정된 鄕職은 호족들로 하여금 중앙에서 파견한 지방관의 보좌역인 향리의 지위로 격하시키는 계기가 되었다.011) 성종 때에 나타나는 교육개혁도 이러한 관점에서 파악해야 할 것이다. 즉 집권적 국가체제로 정비되는 과정에서 지금까지 지방호족들에게 위임되었던 교육을 국가의 통치권 안으로 흡수하고, 또 중앙관료를 체계적으로 양성 배출시켜야 한다는 당면의 개혁정책이 국자감 설립을 비롯한 여러 가지 교육개혁으로 나타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001)≪高麗史≫권 74, 志 28, 選擧 2, 學校 태조 13년.
002)≪高麗史≫권 74, 志 28, 選擧 2, 科目 2.
003)申瀅植,<宿衛學生考>(≪歷史敎育≫11·12, 1969).
004)朴贊洙,<高麗前期 國子監의 成立과 興替>(≪民族文化≫14, 民族文化推進會, 1991).
005)金光洙,<麗末麗初 地方學敎問題>(≪韓國史硏究≫7, 1972).
006)申千湜,≪高麗敎育制度史硏究≫(螢雪出版社, 1983), 16∼17쪽.
007)≪高麗史≫권 76, 志 30, 百官 1, 典校寺.
008)李泰鎭,<高麗宰府의 成立>(≪歷史學報≫56, 1972).
009)≪高麗史≫권 93, 列傳 6, 崔承老.
010)<龍頭寺鐵幢記>에 翰林學生 金遠의 명칭이 보이고,≪高麗史≫권 93, 列傳 6, 韓彦恭條에서는 그가 15세에 光文院 書生으로 있었음을 보여준다.
011)邊太燮,≪韓國史通論≫(三英社, 1986), 1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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