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려 시대18권 고려 무신정권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1. 무신란과 초기의 무신정권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1. 무신란과 초기의 무신정권
          • 1) 무신란의 주도세력
          • 2) 이의방 정권
          • 3) 정중부 정권
          • 4) 경대승 정권
          • 5) 이의민 정권
        • 2. 최씨무신정권의 성립과 전개
          • 1) 최씨정권의 성립
          • 2) 최씨가의 권력세습
          • 3) 최씨정권의 붕괴
        • 3. 무신란과 최씨무신정권의 역사적 성격
          • 1) 무신란의 역사적 의의
          • 2) 최씨무신정권의 성격
        • 4. 무신정권의 붕괴와 그 역사적 성격
          • 1) 김준 정권
            • (1) 김준의 출세
            • (2) 김준의 집권
          • 2) 임연·임유무 정권
            • (1) 임연의 출세
            • (2) 임연·임유무의 집권
          • 3) 붕괴기 무신정권의 성격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1. 사병의 형성과 도방
          • 1) 사병의 형성
          • 2) 도방
        • 2. 중방과 교정도감
          • 1) 중방
          • 2) 교정 도감
        • 3. 진양부와 정방 및 서방
          • 1) 진양부
          • 2) 정방
          • 3) 서방
        • 4. 별초군의 조직
          • 1) 마별초
          • 2) 지방별초
          • 3) 삼별초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 국왕의 권위
          • 1) 중방정치와 국왕
          • 2) 국왕의 권위
          • 3) 국왕과 문반·민중
        • 2. 무신정권과 문신
          • 1) 무신란과 문신의 동향
            • (1) 은거문사
            • (2) 소외문인
            • (3) 등용문신
          • 2) 초기 무신정권과 문신의 정치활동
        • 3. 최씨정권과 문신
          • 1) 최씨정권의 문신정책
          • 2) 최씨정권하 문신의 역할과 정치적 지위
        • 4. 무신정권기 문신의 정치의식과 그 성향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이의방 정권

 무신란 직후 성립된 무신정권이 어떠한 인물들에 의해 장악되었는가를 알아 보는 방법의 하나로 명종 즉위년(1170)의 인사발령을 검토해 보기로 하자. 이 인사발령에서 무인만을 가려보면 다음과 같다.

정중부:참지정사 양 숙:참지정사 이소응:좌산기상시 이 고:대장군·위위경·집주 이의방:대장군·전중감·집주 기탁성:어사대사 채 원:장군

 위에 의하면 무신란 직후 출범한 무신정권은 무신란에서 온건한 태도를 취했던 인물들과 무신란을 주도한 인물들의 연합에 의해 성립된 것으로 보인다. 즉 정중부·양숙·이소응·기탁성 등이 온건한 태도를 취한 인물들인데 반해, 이고·이의방·채원 등은 무신란을 주도한 인물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실질적인 권력은 무신란을 주도한 무인들이 장악하였던 것 같다. 이는 이후의 권력을 둘러싼 암투가 정중부를 제외한 이의방·이고·채원 사이에서 일어났던 것으로 미루어서도 짐작되는 일이다. 명종 원년(1171) 이고는 이의방과 채원의 연합에 의하여 제거되고 3개월 후에는 채원도 이의방에 의하여 살해되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중부는 화가 자신에게 미칠 것을 두려워하여 職을 사양하고 두문불출했다 한다.

 이고와 채원이 제거된 후의 무신정권은 李義方 1인의 독차지였다. 그러나 정중부의 세력도 전연 무시할 수만은 없었던 것 같다. 이의방이 두문불출한 정중부에게 술을 들고 찾아가 父子의 義를 맺은 것으로 알 수 있다. 이의방은 정중부와의 이러한 타협을 통해, 그의 집권으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고위 무신들의 반발을 무마해 보려 하였다. 무신란 전에 낮은 직위에 머물렀던 이의방으로서는 집권 이후에도 고위 무신들을 도외시할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고려 무신들에 대한 이의방의 회유는 重房에 대한 그의 정책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무신란 이후 중방의 권한은 크게 확대되었는데, 무신란 이후 최초로 성립된 것이 이의방정권임을 감안하면 중방의 역할이 강대해 진 것은 곧 이의방정권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상·대장군의 합의기구인 중방의 권한 확대에는 고위 무신들에 대한 이의방의 정치적인 배려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이의방은 고위 무신들에 대한 회유와 아울러 난에서의 행동세력으로 그가 이용했던 하급 무인들에 대해서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미천한 신분출신으로서 무신란에 적극적이었던 하급 무신들이 이의방정권 아래에서 크게 진급했던 것은 이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될 것이다. 한편 명종 3년에는 문신들의 出仕路였던 지방관에 무인들을 임용함으로써 무인들에게 벼슬로 나아가는 길을 넓혀 주었는데, 이 또한 하급 무신에 대한 배려에서 비롯되었다고 이해된다. 지방관에의 무인 임용은 고위 무신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하급 무신들을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의방정권은 문신들의 반발에 직면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金甫當의 난이 그것이다. 명종 3년 東北面兵馬使·諫議大夫 김보당은 東北面知兵馬事 韓彦國 등과 공모하여 군사를 일으켰다. 그가 난의 명분으로 내세운 것은 이의방·정중부의 제거와 의종의 복위였다. 김보당은 張純錫·柳寅俊을 南路兵馬使, 裵允材를 西海道兵馬使로 삼아 군사를 일으킨 한편, 장순석 등을 巨濟에 파견하여 그곳에 유배되어 있던 의종을 받들고 慶州로 나오게 하였다. 이 소식에 접한 이의방은 이의민으로 하여금 의종을 살해하도록 했는데, 의종의 죽음으로 김보당세력은 힘을 잃고 무너지고 말았다.

 김보당의 난은 불과 3개월만에 진압되고 말았지만, 그 난이 끼친 영향은 대단하였다. 김보당은 죽음에 임하여 거짓으로 말하기를 “무릇 문신으로 공모하지 않은 자가 없다”고 함으로써,016) 많은 문신들이 살륙당하는 결과를 초래했던 것이다. 이 사건을「癸巳의 亂」이라고 부르는데, 이 때 희생된 문신의 수가 매우 많았음은 경인년에 일어난 무신란과 이 사건을 합하여「庚癸의 亂」이라고 일컫는 것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사건 이후 문신들의 정치적 지위가 더욱 약화되었음은 물론이다.

 김보당은 무신란을 전적으로 부인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가 무신정권에 참 여한 사실만으로도 그렇게 말할 수 있다.017) 실제로 그는 의종대의 정치에 대 해서 상당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일찍이 무신란 직후에 환관 鄭諴의 고신에 서경한 인물들의 탄핵을 주장하기도 했던 것이다.018) 그와 함께 난을 일으켰던 한언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명종 2년 右諫議大夫로서 同知貢擧가 되어 과거를 주관했던 사실만으로도019)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이처럼 문신으로서는 비교적 무신정권에 깊숙히 관여했던 김보당과 한언국이 무신정권에 반기를 들게 된 구체적인 이유를 알려 주는 기록은 없다. 다만 김보당이 거병의 명분으로 이의방·정중부의 제거와 의종의 복위를 내세웠던 점으로 미루어, 의종의 폐위와 이의방의 정권 장악을 못마땅하게 여겼음이 분명하다. 의종대의 정치에 불만을 가진 그들이었지만, 무신란 이후 전개된 정치상황 역시 그들의 기대와는 판이했던 것이다. 일반 군인들이 대거 참여하는 등, 무신란 자체가 애초에 난을 주도한 인물들이 의도했던 것보다는 훨씬 확대된 방향으로 전개되었음을 감안하면 무리가 아니다.

 이의방정권은 명종 4년에 일어난 趙位寵의 亂을 계기로 몰락하였다. 西京留守·兵部尙書 조위총은 정중부와 이의방 등이 의종을 살해하고 장사지내지 않은 것을 성토함과 동시에, “듣건대 開京의 중방이 의논하기를 근래 북계의 여러 성이 거칠고 강하므로 이를 공격하여 토멸해야 한다 하고 이미 크게 군사를 발하였으니, 어찌 우리가 앉아서 죽음을 당하겠는가. 모두 병마를 규합하여 속히 서경에 모여라”는 내용의 격문을 동북 양계의 여러 성에 보냈다.020) 이에 岊嶺(또는 慈悲嶺) 이북의 40여 성이 호응하여 그 기세가 자못 떨치었다 한다. 이의방은 中書侍郎平章事 尹鱗瞻으로 원수를 삼아 3군을 이끌고 조위총을 치게 하였으나 도리어 절령역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김보당의 난과 조위총의 난은 모두 양계에서 일어났고 또 정중부·이의방을 토멸하기 위한 반란이었다는 점에서 공통성이 있다. 그러나 김보당의 난에 있어서 주동이 된 인물들은 兵馬使機構에 소속된 문신 관료들이었다. 동북면병마사 김보당이 중심이 되고 지병마사 한언국, 兵馬錄事 李敬直·張純錫 등이 공모했던 것이다. 즉 중앙에서 파견된 관료들이 병마사의 병력을 이용하여 난을 일으킨 것이 김보당의 난이었던 것이다. 이에 반해 조위총의 난을 일으킨 중심 인물들은 서북면의 토착인이었다. 서북면의 토착세력인 都領들이 중앙에서 파견된 병마사와 수령들을 살해했던 것이다.021)

 도령은 양계 州鎭軍의 지휘관이었다. 그들은 중앙의 무반에 비해 정치·경 제적으로 훨씬 낮은 처우를 받아 왔으므로 그들의 불만을 표출할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다. 한편 그들의 지휘 아래 있던 양계인은 모두 주진군에 편성되어 있었다. 그들은 兵農一致의 군인이었던 것이다. 조위총의 난이 쉽게 진압되지 않았던 것도 그들이 군대조직을 갖추고 있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들과 같은 군인들이 무신란 이후 중앙에서 크게 부상한 데에 자극되어 있었다. 즉 그들이 조위총의 선동에 호응하여 난에 가담한 것은, 무신란 이후 하급 무신들과 일반 군인들의 진출에 크게 고무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022)

016)≪高麗史節要≫권 12, 명종 3년 9월.
017)黃秉晟,<金甫當亂의 一性格>(≪韓國史硏究≫49, 1985), 39쪽.
018)≪高麗史節要≫권 12, 명종 원년 9월.
019)≪高麗史≫권 73, 志 27, 選擧 1, 科日 1.
020)≪高麗史≫권 100, 列傳 13, 趙位寵.
021)邊太燮,<武臣政權期의 反武臣亂의 性格-金甫當의 亂과 趙位寵의 亂을 중심으로->(≪韓國史硏究≫19, 1978).
022)金塘澤,<高麗 武人執權 초기 民亂의 性格>(≪國史館論叢≫20, 國史編纂委員會, 1990), 123∼1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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