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조선 시대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1. 정치사상 기반
        • 2. 통치 구조
          • 1) 관료체제의 특징
          • 2) 통치기구
        • 3. 경제구조
        • 4. 사회신분구조
      • Ⅱ. 중앙 정치구조
        • 1. 정치구조의 정비와 정치기구
          • 1) 정치구조의 정비
          • 2) 정치기구의 기능과 구성
            • (1) 도평의사사·문하부·(의흥)삼군부·집현전
            • (2)≪경국대전≫상의 직계아문
            • (3)≪경국대전≫상의 6조 속아문
        • 2. 관직과 관계
          • 1) 관직
            • (1) 문반직·무반직·잡직
            • (2) 실직·허직·녹직·무록직
          • 2) 관계
            • (1) 문산계와 무산계
            • (2) 종친제·의빈계
            • (3) 잡직제
          • 3) 관직과 관계
      • Ⅲ. 지방 통치체제
        • 1. 지방 통치체제의 특징
        • 2. 8도체제의 확립
        • 3. 군현제의 정비
          • 1) 속현의 주현화
          • 2) 임내의 정리
            • (1) 속현의 정리
            • (2) 향·소·부곡의 정리
          • 3) 면리제의 정착
          • 4) 군현 명칭의 개정
          • 5) 소현의 병합과 그 한계
          • 6) 향리 직제의 개혁
        • 4. 행정구역과 행정체계
          • 1) 행정구역
            • (1) 도역과 군현 및 면·리 편성
            • (2) 특수구획:월경지와 견아상입지
          • 2) 지방 행정체계
            • (1) 도의 직제와 행정체계
            • (2) 군현직제와 행정체계
        • 5. 지방자치적 기구
          • 1) 경재소와 유향소
          • 2) 면리임과 5가작통제
          • 3) 향촌 제규약과 좌목
      • Ⅳ. 군사조직
        • 1. 초기 군사제도의 정비
          • 1) 초기 중앙군제의 정비
            • (1) 10위제와 특수부대
            • (2) 사병혁파와 10위제의 변화
          • 2) 초기 지방군제의 정비
            • (1) 육수군
            • (2) 수군(기선군)
            • (3) 익군
          • 3) 군역제도의 정비
            • (1) 군역의 일원화
            • (2) 보법의 성립
        • 2. 5위체제의 확립과 중앙군제
          • 1) 5위체제의 확립
          • 2) 5위의 병종
          • 3) 금군
          • 4) 5위의 군계급과 편제
          • 5) 수도방위의 실제
            • (1) 입직
            • (2) 행순
            • (3) 시위·첩고·첩종
        • 3. 진관체제의 확립과 지방군제
          • 1) 진관체제의 성립
          • 2) 진관의 편제와 유방
          • 3) 진관체제의 변화와 제승방략
        • 4. 군령·군정기관의 정비
          • 1) 군령기관의 정비
            • (1) 의흥삼군부와 군령권
            • (2) 병조권의 강화와 삼군진무소
            • (3) 군령권의 정비
            • (4) 오위도총부의 성립과 군령권의 확립
          • 2) 군정기관의 정비
            • (1) 건국 초기의 군정기관
            • (2) 병조의 군정기능 확립과 속아문
        • 5. 군비의 확충
          • 1) 화기의 발달과 성능
            • (1) 화기 제조의 발달
            • (2) 화기의 종류와 성능
          • 2) 군량미의 확보와 운송
            • (1) 각도 군량미의 확보
            • (2) 양계지방의 군량미 확보
            • (3) 군자감창의 군자미와 운송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1. 관학
          • 1) 성균관
            • (1) 명칭과 시설
            • (2) 문묘종사와 석전
            • (3) 입학 및 교육
            • (4) 관학
            • (5) 성균관의 경제적 기반
          • 2) 4부 학당(4학)
            • (1) 학당의 설치
            • (2) 4부 학당의 교육
            • (3) 4부 학당의 교관
            • (4) 4부 학당의 경비
          • 3) 종학
            • (1) 종학의 설치와 교육
            • (2) 종학의 교관
          • 4) 잡학
            • (1) 10학의 설치
            • (2) 잡학 교육
            • (3) 잡학 교관
          • 5) 향교
            • (1) 향교의 설치와 교육
            • (2) 향교의 문묘
            • (3) 향교의 교관
            • (4) 교생의 신분
            • (5) 향교의 경제기반
        • 2. 사학
          • 1) 서재
          • 2) 서당
        • 3. 과거제의 정비와 운영
        • 4. 과거의 종류
          • 1) 문과
          • 2) 생원·진사시
          • 3) 무과
          • 4) 잡과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1. 정치사상 기반

 조선왕조의 건국은 정치·사회적으로도 큰 변화를 가져왔지만, 이에 수반하여 사상적으로도 큰 변화가 나타났다. 유교사상이 불교를 대신하여 지배적 지위를 차지하였던 것이다. 왕조 개창에서 커다란 역할을 한 정치적 주도세력인 鄭道傳·權近 등 조선 건국세력은 이러한 유교사상을 정치 지도이념으로 정착시키는 동시에, 사회개혁과 국가운영의 기본정신으로 삼아 왕권강화와 중앙집권 체제의 정비에 노력하였다.

 고려시대에도 유교사상이 정치철학을 주도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훈고학적인 漢唐儒學이었고, 또 불교철학에 의하여 크게 제약을 받았었다. 따라서 유교사상이 정치·제도·사회·문화 모든 면에 지배적 위치를 차지한 것은 조선시대에 들어온 이후였다. 조선 초기의 유교사상에서 특히 중시한 것은 왕도정치 사상이었다. 왕도정치란 유교로 교양된 국왕과 儒臣들이 이상적인 유교정치를 할 수 있는 정치체제 하에서 유교적 민본사상에 근거한 德治·仁政을 베풀고, 나라의 모든 의례는 禮治에 입각하여 행하며 유교윤리가 양반 사대부뿐만 아니라 일반 민중 모두에게 생활화된 정치를 말한다.

 조선 초기 건국의 주도세력은 이러한 유교정치를 실현할 수 있는 정치체제로 중국 三代의 이상 사회를 나타낸≪周禮≫에 주목하였다. 이들은 고려 말에 들어온 성리학을 正學으로 일단 긍정하면서도≪주례≫를 모범으로 하여 새로운 국가의 여러 제도를 정비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주례≫의 정신에 입각하여 국가의 통치구조뿐만 아니라 경제구조·산업부문을 국가가 주도함으로써 권세가에 의한 私有와 私營을 억제하려 하였다. 즉 조선왕조 건국 후 100년 동안은 중앙집권의 강화와 더불어 관 주도의 경제정책, 양인에 대한 국가의 지배를 강력히 추진하였다.001)

 고려 말에 들어온 성리학이 보다 심화된 인식을 갖게 된 것은 15세기 말, 16세기 초부터였다. 15세기에는 강력한 왕권강화와 함께 모든 정치권력을 중앙으로 집중시키는 중앙집권적 관료체제의 형태였으나, 이러한 현상은 한 세기도 넘기지 못한 채 한계를 드러냈다. 이는 훈구파의 세력 확장과 戚臣政治의 출현 때문이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과 분위기 속에서 자연히 성리학에 대한 가치를 재인식하게 되었고, 결국 성리학을 통치이데올로기로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여론이 강력하게 형성되었으며, 이러한 인식은 향촌 지배세력인 士林派에 의하여 주도된 것이다. 특히 이들은 성리적 명분론에 입각하여 훈구와 척신세력들을 비판하고, 성리학적 이상사회를 실현코자 하였다. 명분론은 地主-佃戶制를 기반으로 한 신분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상하 질서를 중시하고 있으며, 성리학의 발전을 위하여 사림들은 현량과 실시와 留鄕所 혁파, 留鄕所 복립운동, 鄕約의 조직·활용 등을 통하여 향촌질서를 재확립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들은 대부분 지방의 향촌사회에서 중소지주적 생활기반을 가진 지식인이었고, 점차 새롭고 참신한 정치 비판세력으로 성장해 갔다. 사림들은 관인사회의 기강이 크게 문란해져 사회파탄이 가속화되는 것을 목격하고 이를 염려하면서 그 극복 방안과 수단으로서 성리학을 활용하는 길이 가장 현명하고 바른 길이라고 확신하였던 것이다.002)

 그러면 조선왕조의 정치사상의 기반을 이룬 성리철학의 본질에 대하여 간략히 살펴보자.003) 성리학은 유교의 가치체계를 존중하면서 인륜과 도덕을 우주의 질서와 연결시켜 파악함으로써 정치철학적 이론을 제공하고 있다. 성리철학에서는 우주와 인간의 질서를 형이상의 理와 형이하의 氣와의 융합에 의하여 구성되는 것으로 보았다. 즉 이는 物의 性을 결정하고 기는 物의 形을 결정짓는다는 것이다. 이는 우주만물과 인간에 근원적으로 내재하는 것으로, 순수하고 지극히 선하여 인성의 근원이 되는 것에 비하여 기는 인간의 형체를 이루는 것이다. 따라서 이가 「본연의 성」인데 비하여 기는 「기질의 성」으로 되어 인간은 본연의 성과 기질의 설을 동시에 타고나게 된다. 본연의 성은 지선하여 죄악이 발생하지 않지만, 기질의 성은 善惡·賢愚·長 短·通塞 등의 차이가 있어서 이 때문에 각종의 악과 범죄가 발생하고 인간들 사이에도 차별이 생긴다고 한다. 정치는 이와 같은 기질의 성으로 인한 인간사회의 결점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부단한 수양을 통하여 범죄·차별·정욕·악 등을 버리고 본연의 성을 되찾는 데 주력해야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정치는 교화, 즉 인간을 바르게 하는데 목적이 있다. 따라서 정치는 곧 교화와 일치한다. 그런데 인간을 바르게 교화하는 데는 순서가 있다. 나→가정→국가→세계의 순서이다. 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논리이다. 개인은 출발이고 천하는 종점이라는 것이다. 存心과 養性, 格物致知가 개인의 수신에 필요한 수양 방법이고, 제가·치국·평천하에 필요한 윤리 도덕이 三綱五倫이다.

 한편 理와 氣는 둘이면서 동시에 하나로 보았다. 즉 이 속에 이미 기가 내포되어 있고 기 속에 이가 이미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화엄의 『一卽一切 一切卽一」과 비슷한 논리가 된다. 이와 기가 둘이면서 하나이기 때문에 理氣二元的一元論으로 불리기도 한다. 성리학에서는 또 인간이 객관적 경험적 인식과 주관적 인식을 동시에 행한다고 보았다. 즉 인간은 마음(心) 속에 간직한 기가 지각작용을 벌여서 심(心) 중에 내재되어 있는 이, 즉 만물의 이치를 인식케 할 수 있는 것이며, 아울러 인간의 외계 사물에 접해 서 그 법칙을 객관적·경험적으로 구명함으로써 인식체계를 분명히 할 수 있다고 믿었다.

 다음으로 성리학에서는 통치권의 근원을 어디로부터 구하고 있는가에 대하여 알아보자. 성리철학에 의하면 우주와 인간을 지배하고 있는 원리는 곧 天理이며, 인간사회를 다스리는 통치권도 결국 천리, 天命에 근원한다는 것이다. 인간사회를 다스리는 최고의 통치권자가 국왕인데, 이 국왕은 천리에 따라 위임된 인간사회의 통치자일 뿐이다. 그런데 국왕은 윤리관을 기본으로 하는 윤리정치를 펴야 한다. 이는 修己之學으로서의 성리철학 정신에 충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修己란 개인이 윤리적으로 충분히 수양을 한다는 뜻이며 그 방법으로는 덕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리하여 국왕의 덕치와 인정, 즉 왕도정치가 이상적인 통치방법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治者는 修德에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과, 그 덕목으로 仁·義·禮·智의 4덕을 들고 있다.

 천심과 민심은 서로 감응관계에 있어 민심이 바뀌거나 국왕으로부터 점차 멀어져 가게 되면 천심 또한 바뀌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통치자인 국왕이 민심을 잃어 국민들로부터 멀어지게 되면 그것이 천심에 감응되어 통치자, 즉 국왕에 대한 책임을 물어 천재지변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농업국가에서의 천재지변은 국왕의 통치역량과 직결되는 것이었다. 이에 통치자는 천재지변에 대한 대비와 현명한 처리방안을 연구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조선 후기에 농업과 관련이 깊은 천문과 역법을 「帝王之學」으로서 중시하고 이를 속히 서양으로부터 받아들이려고 노력한 것도 천재지변이 국왕의 진퇴와 관련이 깊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국왕의 악절이 민심의 동요와 이반을 가져오게 되고, 민심의 동요와 이반은 곧 천재지변으로 연결되어 마침내 천명은 다른 유덕자에게 옮겨가게 된다는 것이다. 맹자는 이렇듯 천명이 바뀌는 것을 「革命」이라 하였고, 혁명의 방법에는 평화적인 것과 폭력적인 것의 두 가지 경우가 있다고 하였다. 전자가 禪讓이고 후자가 放伐이다. 이와 같은 혁명사상은 조선 초기의 유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전술한 바와 같이, 결국 조선 초기의 성리철학적 정치사상은 民本思想으로 구체화되고 심화되었다. 민본이란 백성이 나라의 근본, 즉 「民惟邦本」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이라는 말도 있다. 이는 民·社稷(나라)·君(왕) 세 가지 중에서 민이 가장 귀하고 나라가 그 다음이요, 왕이 가장 가볍다는 것이다. 민본사상을 나타낸 말로서 이것은 조선 초기의 정치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리하여 당대 최대의 정치학자이며 사상가인 정도전은 “대저 군주는 국가에 의존하고 국가는 민에 의존하므로 민은 국가의 근본인 동시에 군주의 하늘”이라 말하기도 하였다.

 조선 성리학은 16세기에 이르러서 이론과 실천의 양면에서 그 발전을 보 았다. 그래서≪대학≫과≪소학≫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에 대한 연구와 학습을 게을리하지 아니하였다.≪대학≫은 治人之學으로서 관료사회에서의 새 로운 관인상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하였고,≪소학≫은 수기지학의 범주에 속하여 모순된 사회를 바로잡고 안정된 농촌사회의 건설을 위해서 그 실천성을 본받자는 것이었다.004) 원래 주자에 의해 편찬된≪소학≫은 자신·가족·사회인들의 윤리체계를 수립하자는 데 주안점을 두었었다. 이것이 바로 성리학의 실천성인 것이다. 金宏弼·趙光祖 등도≪소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향촌에서 널리 확대되고 있는 향약과 예학도 물론 이≪소학≫의 정신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향약은 원래 향촌 구성원에 의하여 자율적인 운영원칙에 따라 운영하는 것을 원리로 하고 있었으나, 16세기에 사림파들이 새로운 질서 확립책의 하나로 이의 보급을 꾀하였다.005) 그리고 예학은 17세기에 이르러 크게 발달하였는데 이는≪소학≫의 기초 위에 이루어진 것이다.006) 이 예학과 예법은 조선시대의 생활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따라서 조선의 사회적 현실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학과 예법의 영향을 바르게 파악하여야 한다.

 이와 같은 특색을 지닌 성리학은 李彦廸과 徐敬德의 본격적인 이론적 탐구를 거쳐, 李滉과 李珥에 의해 체계화되었다. 이황은 앞에서 살펴본 만물생성의 원리인 理와 변화 원인인 氣가 互發한다는 理氣互發說을 주장하면서 이와 기를 병존적인 존재로 파악하였다. 즉 그는 이·기를 우주 생성의 2대 요소로 보는 理氣二元論을 주장하였는데, 이는 주자 성리학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황은 인간의 도덕적 실천의 근거인 이의 능동성을 강조하여, 원칙과 도덕적인 마음가짐을 무엇보다 우선함으로써 당시 척신정치로 인한 폐해의 극복을 시도하였다.007) 즉 이황은 이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며 主理論을 강조한 것이다.

 한편 이이는 우주 생성의 근원은 이일 뿐이며, 능동적 기가 작용하면 부동의 이는 거기에 항상 내재하기 마련이라는 理氣一元論을 주장하였다. 그래서 그의 이론은 氣發理乘一途說로 설명되기도 하고 主氣論으로 규정되기도 한다. 즉 그는 기를 중시함으로써 도덕적인 교화에 앞서 養民을 하고, 양민에 앞서 時弊를 개혁할 것을 주장하여 당시 사회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고자 하였다.008)

 이와 같은 退溪(이황)의 학설은 東人계열로 이어졌고, 栗谷(이이)의 학설 은 西人계열로 이어졌다. 그리고 서로 논쟁을 거치는 과정에서 퇴계학파의 이를 중시하는 경향과 율곡학파의 기를 중시하는 경향은 더욱 심화되었다. 예학 역시 이러한 이기론과의 연결에서 발전되어 갔다.

 조선시대의 성리학이 이와 같은 대립구도 속에서 발전하면서 원칙적으로 성리학 이외의 다른 사상이나 종교는 이단시되었다. 그리하여 고려시대에 국교로서 크게 융성을 보였던 불교조차도 조선시대에 와서는 성리학에 밀려나 사상계의 지도적인 지위를 상실하게 되었다.009) 하지만 성리학은 그 사상 자체에 불교사상과 공통되는 점이 많으며, 華嚴思想과 같은 경우는 성리학에서와 같이 호국적 성격이 강하게 내포되어 있고, 또 성리학자들 중에는 불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분포되어 있었기 때문에 결국 불교는 일시에 없어지기 어려운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성리학에서도 이상론과 현실 사이에는 많은 틈이 생기게 마련인데 성리학 스스로가 이 틈을 메우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자연히 다른 종교나 어떤 신앙을 끌어들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예컨대, 갑자기 닥친 재난이나 질병 등으로 인하여 사망 또는 큰 피해에 직면하게 된다면 인간들은, 스스로 그들의 무능력과 한계를 느끼게 되며 자연히 종교적 욕구나 소망을 가짐으로써, 옛부터 생활화되어 내려오는 佛力이나 또는 자연적인 힘에 의지하려고 할 것이다. 결국 인간의 강렬한 희망과 욕구의 충족을 위해서는 부분적으로나마 유교에서 불교를 포섭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고 생각된다.010) 그러므로 숭유억불 정책을 표방한 조선왕조에서도 불교는 의연히 전승되고 존속될 수 있었다. 태조·세종·성종 같은 국왕이 불교행사 자체를 금지시키지 않고 이를 존속시켰는가 하면, 선비나 서민층 의 부녀자들 사이에서도 불심은 단절되지 않고 은밀히 신봉되었다는 점도 이해를 돕게 한다.

 불교뿐만 아니라 도교 또한 적지 않은 비중을 가진 채 국가적인 행사와 개인의 취향에 따라 발전되었다. 도교는 醮祭를 중요시하여 國泰民安과 개인의 療病을 기원하였다. 특히 강화도 摩尼山의 초제는 유명하며, 이것은 도교신앙과 민간신앙이 연결되어 민족의식을 높이는 기능까지 겸하게 되었다. 천재지변에 대한 국가적인 기도행사에 승려뿐 아니라 道士까지 함께 참여한 것은 위와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도전 등 성리학자들의 강력한 배불운동으로 사원의 노비와 토지가 거의 몰수되어 결국 불교의 지주적 경제기반은 해체되고 말았다. 하지만 사상적 측면에서 선초 성리학은 불교철학·도가사상 및 전통유교의 윤리사 상을 종합하여 포괄적이고 합리적인 사상체계를 이루었다.

001) 李泰鎭,<集權官僚體制의 성립>(≪韓國史硏究入門≫, 知識産業社, 1988).

韓永愚,<朝鮮建國의 政治·經濟基盤>(≪朝鮮前期社會經濟硏究≫, 乙酉文化社, 1983).
002) 李泰鎭,<朝鮮 性理學의 再評價>(≪創作과 批評≫33, 1974).

―――,<士林과 書院>(≪한국사≫12, 국사편찬위원회, 1978).

尹絲淳,<朝鮮前期 性理學의 思想的 機能>(≪民族文化硏究≫9, 1975).
003) 성리철학의 본질에 대해서는 다음 책이 참고가 된다.

玄相允,≪朝鮮儒學史≫(民衆書館, 1949).

裵宗鎬,≪韓國儒學史≫(延世大出版部, 1974).
004)≪小學≫과≪朱子家禮≫는 조선 초기의 위정자들에 의하여 기존의 불교 및 민간신앙인 생활관습을 유교적인 것으로 전환시키는 데 많이 이용되었다.
005) 李泰鎭,<士林派의 鄕約普及運動>(≪韓國文化≫4, 1984).

韓相權,<16·17세기 鄕約의 機構와 性格>(≪震檀學報≫58, 1984).
006) 黃元九,<李朝禮學의 形成過程>(≪東方學志≫6, 延世大, 1968).

―――,<朱子家禮의 形成過程>(≪人文科學≫45, 延世大, 1981).
007) 柳正東,≪退溪의 生涯와 思想≫(博英社, 1974).

尹絲淳,≪退溪哲學의 硏究≫(高麗大出版部, 1980).
008) 李俊浩,≪栗谷의 思想≫(玄岩社, 1973).

李丙燾,≪栗谷의 生涯와 思想≫(瑞文堂, 1973).
009) 韓㳓劤,<麗末鮮初의 佛敎政策>(≪서울大論文集≫6, 1957).

―――,<世宗朝에 있어서의 對佛敎施策>(≪震檀學報≫25·26·27, 1964).

韓永愚,≪鄭道傳思想의 硏究≫(서울大 韓國文化硏究所, 1973).
010) 15세기 중엽에 勳舊勢力은 성리학 이외에도 불교를 비롯하여 도교, 풍수사상 민간신앙 등 여러 사상들에 대해서도 관대한 정책을 취하였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