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과학
1. 전통적 자연관
1) 재이현상으로 본 전통적 자연관
한국역사에는 수많은 자연현상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전통사회의 역사 기록 가운데 가장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朝鮮王朝實錄≫은 역대 어느 왕대에나 끊임없이 자연현상을 기록해 남기고 있다. 아직 이에 대한 종합적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는 못한 상태지만, 필자의 연구로는 이들 자연현상에 대한 기록을 당시 자연현상이 일정한 정치적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에≪조선왕조실록≫에 등재되기에 이른 것으로 해석된다. 즉 당시 사람들에게 이들 자연현상은 그저 일어난 무심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정치의 잘잘못을 지적하기 위해 하늘이 내리는 災異였던 것이다.001)
오늘날 과학의 시대라 불릴 정도로 과학과 기술이 크게 발달하고 있다. 과학이 인간생활의 모든 면을 좌우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옛날의 과학을 과소평가하기 쉽다. 조선 초기 지식인들의 자연에 대한 이해와 설명은 당시로서는 훌륭한 ‘과학’이었지만, 지금 우리들의 눈에는 과학이라기 보다는 ‘미신’에 가깝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시의 자연에 관한 기록을 보면 조선시대의 과학 역시 그 나름의 자연관을 바탕으로 하여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자연체계의 대표적 특징은 자연현상을 재이로 파악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조선왕조실록≫에는 천문현상을 비롯하여 수많은 지상의 이상현상, 그리고 세 쌍둥이의 출산과 같은 인간에게 일어나는 이상현상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조선 초기 약 1세기 남짓한 기간만을 조사해 보면 이런 자연현상에 대한 기록이 자그만치 약 8천 회가 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 기록은≪增補文獻備考≫의 象緯考에도 상당히 수집되어 있지만, 그 내용이 서로 일치하지는 않는다. 조선왕조가 개창된 1392년부터 중종 22년(1527)까지 135년 동안의 재이 기록을≪조선왕조실록≫에서 찾아 보면 가장 많은 기록을 보이는 것은 ‘별이 낮에 보이는 현상’으로 이 기간 동안 1,281회나 된다. 그 다음으로 많은 기록은 햇무리 등으로 1,191회이다.
이 기간 동안의 자연현상 기록을 그 빈도수에 따라 차례로 적어 보면 다음과 같다.
별이 낮에 보임(星晝見) 1,281 햇무리 (暈) 1,191 천둥 (雷電) 502 지진 (地震) 490 우박 (雹) 453 큰 비·홍수 256 큰 바람 (大風) 221 가뭄 (旱) 214 혜성 (彗) 206 서리 (霜) 174 별똥별 (流星) 173 이상한 구름 157 안개 (霧) 150 달의 항성 침범(月犯恒星) 137 벼락 (震, 震死) 133 별의 행성 접근(五緯掩犯恒星) 125 벌레 (蟲異) 104 전염병 (癘疫) 92 메뚜기·황충 (蝗) 88 세 쌍둥이 (生産異) 73 새 (禽) 72 화재 (火災) 70 월식 (月食) 68 눈 이상 (雪異, 大雪) 67 일식 (日食) 55 목빙·목가 (木氷, 木稼) 55 흰 꿩 (白雉) 47 이상한 따뜻함 (溫異) 46 바다물 이상 (海異, 潮水異) 46 달의 이상 (月變) 46 유언비어 (訛言, 妖言) 42 무지개 (虹) 41 달의 행성접근 (月掩犯五緯) 38 초목의 이상 (草木異) 36 산의 이상 (山異) 32 바위와 돌의 이상 (石異) 31 비의 이상 (雨土 등) 28 소 (牛) 25 이상한 추위 (寒異) 24 광물 (鑛物) 24 닭 (鷄) 22 물고기 (魚) 18 감로 (甘露) 15 행성의 상호 접근 (五緯掩犯) 13 별의 이상 (星變) 13 곡식의 이상 (穀異) 11 말 (馬) 11 해의 이상현상 (日變) 10 겨울에 얼음이 얼지 않음 9 우물 이상 (井異) 9 호랑이 (虎) 9 하늘 이상 (天變) 7 땅이 찢어짐 (地裂, 地陷) 7 낮이 어두움 (日昏, 晝晦) 6 시냇물 호수 (川澤異) 6 건물의 이상 (宮室異) 6 노루와 사슴 (獐鹿) 6 요상스런 일 (妖) 5 여우 (狐) 5 개 (犬, 狗) 5 표범 (豹) 4 객성 (客星) 3 강의 이상 (江河異) 3 용 (龍) 2 기형아 (畸形兒) 2 눈이 오지 않음 (겨울) 1 동요 (童謠) 1 개구리 (蛙) 1 벌·나비 (蜂·蝶) 1 곰 (熊) 1 고양이 (猫) 1 흑점 (黑點) 1 귀신 (鬼) 1 기타 잡변이 (雜異) 34
이상 정리해 본 조선초의 자연현상 기록은 그 빈도가 오늘 우리 눈으로 볼 때 그 들쭉날쭉이 심하다는 것을 당장 느끼게 된다. 그것은 자연현상을 자연현상 그 자체 때문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 아니라 자연의 이상현상이 갖는 재이적 의미를 중시했기 때문에, 재이로서 관찰 기록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가장 빈도가 높은 ‘별이 낮에 보임’과 햇무리 등은 재이로서의 성격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다른 자연의 이상 중 실제 피해를 주는 것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빈도가 가장 높은 두 가지 재이는 오히려 일반에게 직접 피해를 주지는 않는 자연의 이상현상이다. 별이 낮에 보였다는 기록은 주로 금성(또는 당시 표현으로는 太白)이 낮에 보인다는 의미이다. 또 햇무리란 해의 둘레에 여러 가지 색깔의 흔적이 보이는 일체의 현상을 가리킨다. 이들 자연현상은 주로 해의 정상적인 밝음을 저해하는 요소로 여겨졌기 때문에 중시되었고, 그래서 관측 기록되었다. 해의 밝음이란 임금이 영명함을 나타내어, 만약 자연에서 해가 밝기를 잃게 되면 그것은 임금의 밝음에 위협 요소가 있음을 상징한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열심히 관측 기록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 밖에도 해의 밝음을 저해하는 자연현상으로는 일식이나 그 밖의 일변, 그리고 낮에 어두워졌다는 기록 등도 있지만, 그 빈도는 그리 많지 않다. 특히 일식의 경우는 고려초까지는 이미 우리 나라에서도 독자적 예보가 가능해졌기 때문에 조선초에 와서는 그리 심각한 재이라고는 여겨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002) 오히려 비교적 자주 나타났던 금성이 낮에 보이는 현상과 햇무리가 이런 정치적 해석에 많이 이용되었다. 또 그런 정치적 필요성 때문에 열심히 관측되고 기록되었던 것이다.
물론 이런 재이 가운데에는 실제적 피해가 많은 것들도 있었다. 가뭄은 가장 대표적인 예가 된다. 그 밖에도 홍수·바람·우박·메뚜기나 그 밖의 해충 등이 농사에 지장을 주는 자연 재이였고, 계절에 맞지 않는 이상한 더위와 추위도 농사에 해로운 일이었다. 자연히 이런 실질적 피해를 주는 재이에도 관심이 있었고, 또 기록되었다. 또 흰 꿩이나 甘露같은 상서로운 자연 기록도 들어 있다. 이들 여러 가지 재이 가운데 가장 실질적 피해가 큰 가뭄 현상을 통해 조선 초기의 재이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보자.
001) | 조선초의 정치현상을 자연관과 관련시켜 설명하려는 시도는 박성래의 학위 논문을 참고할 수 있다(Park, Seong-Rae, Portents and Politics in Early Yi Korea, 1392∼1519, Ph.D Dissertation, University of Hawaii, Department of History, 1977). 이 영어 논문은 국내에서도 그대로 학술지에 연재된 일이 있다(<Journal of Social Sciences and Humanities>, 한국연구원, 1977∼1978). 좀 수정된 연구는≪과학사상≫에 연재중이다(박성래,<한국과학사상사>,≪과학사상≫3호부터, 1992이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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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 | 박성래,<한국과학사상사>(≪과학사상≫4, 1992), 231∼240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