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조선 시대33권 조선 후기의 경제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1. 인구의 증가와 분포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1. 인구의 증가와 분포
          • 1) 인구의 증감
          • 2) 인구의 분포
        • 2. 농업생산력의 발달과 상품작물의 재배
          • 1) 수전농업의 생산력
            • (1) 이앙법의 보급
            • (2) 새로운 품종의 보급
            • (3) 시비법의 발달
            • (4) 새로운 농업기술의 보급
          • 2) 한전농업의 생산력
            • (1) 품종의 증가와 새로운 작물의 보급
            • (2) 새로운 농업기술의 보급
            • (3) 시비법의 발달
            • (4) 윤작의 실시
          • 3) 농구와 수리시설
            • (1) 농기구의 발달
            • (2) 수리시설의 확대
            • (3) 상품작물의 재배
        • 3. 광작과 지주제
          • 1) 농촌사회 분해와 광작농의 대두
            • (1) 광작과 광작농
            • (2) 광작론과 반광작론
          • 2) 지주제의 변동
            • (1) 농촌사회 분해와 토지의 상품화
            • (2) 지주제의 변동과 그 대책
          • 3) 농업에서의 자본주의 맹아론
            • (1) 자본주의 맹아론과 내재적 발전론
            • (2) 자본주의적 관계의 발생
        • 4. 임노동의 발생
          • 1) 농민층의 분화
            • (1) 부역제의 한계
            • (2) 노동력 수요의 증대
            • (3) 노동예비군의 형성
          • 2) 임노동자의 출현
            • (1) 유민의 증대와 대책
            • (2) 고용관계의 수립
          • 3) 임노동의 양상
            • (1) 임노동의 종류
            • (2) 임노동의 조건
        • 5. 수공업의 발달
          • 1) 자영수공업체제의 형성과 발전
          • 2) 상업자본의 생산적 전회와 선대제의 발생
          • 3) 매뉴팩처의 발생
            • (1) 유기산업부문
            • (2) 야철산업부문
            • (3) 직물산업부문
            • (4) 광업부문
        • 6. 광업의 발달
          • 1) 18세기「별장」제하의 광업 실태
            • (1)「별장」제의 성립과 군수광업의 몰락
            • (2)「별장」제하 은점의 경영 실태
          • 2) 18세기말 19세기 전반「물주」제하의 광업 실태
            • (1)「별장」제의 폐지와「수령수세」제의 성립
            • (2) 물주제하의 광산경영 실태
        • 7. 어·염업의 발달
          • 1) 어업
            • (1) 상품화폐경제의 발달과 어업의 발달
            • (2) 수산물의 종류
            • (3) 어구·어법
            • (4) 어전·방렴류
            • (5) 대규모 어업의 발달
            • (6) 수산양식업
            • (7) 수산제조업
          • 2) 염업
            • (1) 소금과 염업의 중요성
            • (2) 소금 생산방법
            • (3) 제염기술의 발전
            • (4) 소금의 유통구조
            • (5) 염업에 대한 정책
        • 8. 운수업의 발달
          • 1) 육상운송
            • (1) 조선 후기 역의 운영 실태
            • (2) 파발제의 성립과 발달
            • (3) 역마확보의 변화와 고립제
          • 2) 수상운송
            • (1) 관물의 운송
            • (2) 사물의 운송
          • 3) 원과 주막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1. 상인층의 성장과 도고상업의 전개
          • 1) 관상도고의 활동
            • (1) 시전도고의 활동
            • (2) 공인의 활동과 공인자본의 성격
            • (3) 경·영주인과 영저도고의 활동
          • 2) 사상도고의 활동
            • 가. 서울지역에서의 사상의 활동과 신해통공
            • 나. 서울 주변지역에서의 사상도고의 활동
            • 다. 상품생산지 및 집산지에서의 사상도고의 활동
          • 3) 반도고활동의 전개와 상업계의 동향
            • 가. 관상도고에 대한 반도고운동
            • 나. 사상도고에 대한 반도고운동
        • 2. 상품의 유통
          • 1) 농촌장시의 발달
            • (1) 상업적 농업과 농촌수공업의 발달
            • (2) 육상교통의 발달과 장시의 증가
            • (3) 농촌장시의 발달과 시장권 확대
          • 2) 포구상업의 발달
            • (1) 해상교통의 발달과 포구시장권의 형성
            • (2) 경강포구의 상업발달
            • (3) 외방포구의 상업발달
            • (4) 포구상업세력의 성장과 상품유통
          • 3) 상업도시의 형성
            • (1) 전국적 시장권의 형성
            • (2) 서울의 상업도시로의 성장
            • (3) 지방 상업도시의 출현
          • 4) 상업자본의 축적
            • (1) 시전상업체제의 변동과 사상의 성장
            • (2) 도고상업과 상업자본의 축적
            • (3) 상업자본의 생산자 지배
        • 3. 금속화폐의 보급과 조세금납화
          • 1) 금속화폐의 보급과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1) 동전유통 정착의 경제적 기반
            • (2) 17세기말∼18세기 중엽 금속화폐의 유통
            • (3) 18세기 후반∼19세기 중엽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2) 조세금납화와 봉건적 수취체제의 해체
            • (1) 조세금납의 성립조건-17세기 수취제도의 모순
            • (2) 17세기말∼19세기 중엽 조세금납의 전개
            • (3) 19세기 전반 화폐수탈의 급증과 사회적 모순의 심화
        • 4. 대외무역의 전개
          • 1) 청과의 무역
            • (1) 17세기 부연역관의 청·일 간 중계무역
            • (2) 17세기말 18세기 전반 무역별장의 등장과 역관·상인 간의 대립
            • (3) 18세기 후반 19세기 전반 연상무역의 발전과 산업부문 침투
          • 2) 일본과의 무역
            • (1) 무역의 범주
            • (2) 상인
            • (3) 상품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1. 인구의 증가와 분포

1) 인구의 증감

 조선시대의 戶口 통계자료에 의하면, 조선 후기의 인구추세는 대개 다음<표 1>과 같이 요약된다.

연도\자료 朝鮮王朝

實錄
戶口總數 연도\자료 朝鮮王朝

實錄
기 타
<중종 14년(1519)> 3,746    정조 16년(1792) 7,346  
<중종 26년(1531)> 3,965    순조 원년(1801) 7,514  
<중종 38년(1543)> 4,162    순조 10년(1810) 7,583  
 인조 17년(1639)   1,521 <순조 13년(1813)> 7,903  
 인조 26년(1648)   1,794 <순조 16년(1816)> 6,595  
 효종 8년(1657)   2,201  순조 19년(1819) 6,512  
 현종 7년(1666)   4,107  순조 28년(1828) 6,645  
 숙종 원년(1675)   4,726  헌종 3년(1837) 6,709  
 숙종 10년(1684)   6,573  헌종 12년(1846) 6,744  
 숙종 19년(1693)   7,045  철종 6년(1855) 6,829  
 숙종 28년(1702)   5,923  고종 원년(1864) 6,829  
 숙종 37년(1711)   6,394  고종 10년(1873) 6,759  
 숙종 46년(1720) 6,801    고종 19년(1882) 6,610  
 영조 5년(1729) 7,132    고종 28년(1891) 6,633  
 영조 14년(1738) 7,041    광무 4년(1900)   5,608 ①
 영조 23년(1747) 7,523   <광무 8년(1904)>   5,929 ①
 영조 32년(1756) 7,318   <광무 11년(1907)>   9,782 ②
 영조 41년(1765) 6,975   <융희 4년(1910)>   12,935 ②
 영조 50년(1774) 7,098     13,129 ②
 정조 7년(1783) 7,317   <1925>   19,020 ④

<표 1>조선시대의 정부 집계 인구수 (단위:1,000명)

비고:
 1) 이 표는 壬辰倭亂 후 최초의 호구통계로 나타나는 인조 17년부터 융희 4년까지의 인구통계를 3式年(9년) 간격으로 간략하게 작성한 것임.< >안 연도분은 3식년 간격 이외의 것으로 참고를 위하여 기재한 것임.
 2) ①≪皇城新聞≫光武 5년 1월 10일 및 光武 8년 12월 21일(=≪增補文獻備考≫). 이호철,≪농업경제사연구≫(경북대 출판부, 1992)에서 재인용.
   ② 政府財政顧問本部,≪韓國戶口表≫(1907). 1907년 5월 警務顧問部 조사임.
   ③ 內部警務局,≪民籍統計表≫(1910). 1910년 5월 民籍實査 결과임.
   ④≪朝鮮總督府統計年報≫(1910·1925). 1925년 통계는 최초의 簡易 國勢調査 결과임.

 이에 따르면, 조선 후기의 인구는 인조 17년(1639)의 152만여 명에서 1910년에는 1,293만여 명이 되어 270년 동안에 무려 850%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초기 50여 년 동안(인조 17년∼숙종 19년;1639∼1693)에 152만여 명에서 700만여 명에 이르는 급격한 증가세(460%)를 이룬 것과, 말기 5∼6년 동안(光武 4년∼隆熙 4년;1904∼1910)에 593여만 명에서 1,293만여 명으로 경이적인 증가세(218%)를 이룬 것이 그 주된 원인이 되겠다. 이 밖의 시기, 즉 18세기 한 세기에는 대체로 710만 명을 전후로 하는 정체양상을 보였고, 19세기에는 그 초기에 잠시 증가세를 이루어 순조 13년(1813)에 800만 명에 육박했으나 그 다음 式年에 130만여 명이 감소된 뒤로는 650만∼680만여 명을 오르내리는 정체를 이루었으며, 20세기초에는 다시 100만 명 정도가 더 감소된 560만∼590만여 명을 이루어서 순조 16년∼광무 8년(1816∼1904)의 약 1세기 동안에는 18세기 때보다 100만여 명이 감소되는 추세 속에 정체와 감소가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도표로 작성하면 다음<그림 1>과 같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림 1>인조 17년∼융희 4년(1639∼1910) 정부 집계 인구수의 추세

 조선시대에는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강력한 쇄국정책, 즉「海禁策」으로 인하여 외국으로의 移去나 외국으로부터의 移入이 거의 없었다. 따라서 인구의 증감은 거의 자연증감에 따랐는데, 이러한 정황 속에서 아무리 17∼19세기에 영농기술이 발달하고 경작지가 확대되어 토지생산력이 급속히 증대되었다 하더라도 인조 17년∼숙종 19년이나 광무 4년∼융희 4년의 인구증가상은 상상할 수도 없는 현상이 되겠다. 그리고 이와는 반대로 순조 16년∼광무 8년의 정체·감소상도 인구의 자연증가를 억제·감하하는 극심한 재해·질병들이 연속되지 않았다고 하면, 아무리 ‘多産多死’의 시기였다 하더라도 수긍하기 어려운 현상이 아닌가 한다. 따라서<표 1>에서 보이는 조선 후기의 정부 집계 인구수는 그 모두가 실제의 인구수라고 보기가 어렵다. 이는 1910년 5월의 民籍實査에서 1904년보다 무려 690여만 명(110%)이 많은 1,293만여 명의 인구가 파악된 것이나, 1925년 10월 1일부 簡易 國勢調査에서 1,902만여 명의 인구가 집계된 것에서도 확인될 수 있다. 조선 후기의 사회·경제적 실정이나 인구의 연평균 증가율로 볼 때, 17∼19세기의 인구추세가 위와 같아서는 1910년이나 1925년의 이같은 인구수를 기대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표 1>의 인구수는 어떻게 해서 그처럼 실제와는 다르게 파악되었으며, 이 시기의 실제 인구수와 그 증감양태는 어떠했다고 보아야 할까? 먼저 전자에 대해서 살펴보면, 그 원인은 주로 조선시대의 호적제도와 부세·부역제도의 문란에서 찾아지고 있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조선왕조에서는 전국의 호·구를 파악하기 위하여 3년에 한 차례씩 행정구역 단위로 戶籍大帳을 작성·보고하게 하였다. 호적식년(子·卯·午·酉年)에 각 家戶의 戶主가 가호 내에 거주하는 인구와 그 신상에 관한 사항들을 기록하여<戶口單子>를 소속 관아에 제출하면, 당해 관아에서는 이의 이상 유무를 조사·확인한 다음, 이를 面·里(坊·契 또는 村·洞)별로「5家作統」하여 그 군현의 호적대장을 작성-끝에 사망·전출·전입 등 변동내용과 성별·연령별(대체로 老·壯·弱·兒로 구분)·職役別 인구수 등을 집계·기록-하고, 이를 2부 整寫하여 1부는 관찰사영에, 1부는 호조(후에는 한성부)에 보고하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중앙(호조 또는 한성부)에서는 이를 토대로 한성 및 8도의 호수와 성별 인구수를 집계하여 국왕에게 보고하였으니,<표 1>의 인구수는 바로 이것이었다.

 이러한 호·구의 파악은 공물의 책정과 군역·부역의 差定에 기준자료가 되었기 때문에 당초부터 漏頉의 소지가 많았다. 일찍부터 농민층의 경제적 몰락이 재현·확대되고 있었으므로 호구단자를 기재·제출하는 호주에 의해서는 물론, 호적대장의 작성을 담당한 面·里任과 色吏, 守令들에 의해서도 면·리와 군·현의 호·구수가 적당히 조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영·유아는 그 사망률이 매우 높았고, 현실적으로도 반드시 파악할 필요가 적었던 데서 호적에서 누락되는 것이 관례로 되었다. 따라서 호적대장에 등재되는 인구는 당초부터 실제와는 크게 다른 일부 인구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실정은 농민층의 몰락이 확대됨에 따라 더욱 심화되어 갔다.

 조선정부는 이러한 실상을 방치할 수만은 없었다. 국가재정과 국방을 곤란케 하는 漏籍이나 신분제 질서를 위협하는 冒錄·冒稱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號牌法·五家作統法 등을 보완·강화하면서 호구의 실제적인 파악에 노력해 보았으나, 일시적으로 제한된 효과를 거두는 데 그쳤을 뿐, 소기의 목적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정치기강이 확립되고 농민의 경제적 안정과 사회적 향상이 이룩되지 않는 한, 성취되기 어려운 과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도상으로는 호구의 실제를 낱낱이 파악하는 覈法을 표방하였으나, 현실적으로는 16세기 이래로 관행화된 寬法, 즉 재정 및 군역이 어느 정도 충당될 수 있는 정도의 호구를 확보하는 데 그치는 戶口成籍의 관행이 지속되었다. 그것은 18세기말에 이르러 점차 都總制(比總法)로 정착되었다.0001)<표 1>에 보이는 인구수들이 특별한 사유도 없이 심한 기복을 나타내고 있는 양상이나, 인구의 자연증가를 무시한 채로 정체 또는 감소되고 있는 양상은 주로 이러한 실정에서 말미암은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그러면 조선 후기의 실제 인구수는 어느 정도였고, 그 증감의 실상은 어떠했을까? 정조 12년(1788)에 戶曹正郞 朴一源은≪度支志≫를 편찬하면서 호적대장에 등재되지 않은 인구를 30% 정도로 파악하였다.0002) 그러나 근래의 연구들을 조사하여 보면 다음<표 2>와 같이 정리된다. 대개가 1925년의 간이 국세조사 결과를(총 인구수:19,020,030명) 기준으로 해서 조선시대의 인구통계와 기근·질병·전란 등을 고려하고 인구의 연평균 증가율을 추정하여 소급·산출한 것들인데, 그 결과가 박일원의 추정과 근사한 것도 있고, 커다란 차이를 보이는 것도 있다. 연구자들에 따라 조선시대 인구통계에 대한 이해와 기근·질병에 대한 고려의 정도, 연평균 증가율의 산정 방법 등에 적지 않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시간적으로 보면, C의 경우가 기왕의 연구들을 모두 참작한 최근의 것이어서 우선 존중될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보다 精緻한 연구를 기다려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시대의 생산력 증대나 각종 재해·질병들이 인구의 증감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는지를 보다 세밀하게 考究하여야 할 필요성이 보이기 때문이다.0003)

 그러나 위의 연구들을 종합하여 보면, 조선 후기의 인구수는 대체로 17세기 중엽에 800만∼900만 명 정도0004)에서 19세기 말엽에 이르러서는 1,700만명 정도로0005) 서서히 증가하여 갔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그 사이의 증감 양태는 앞으로의 연구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0006)

연 도 <표 1>의

인구수
A B C 기 타
인구수 증가율 인구수 증가율 인구수 증가율
<1392>       5,549 0.40 7,500   4,500① 10,000③
<1519> 3,746 4,000 0.24 10,469 0.47     7,210①  
<1590>       14,039 -0.25     9,580①  
1639 1,521     10,665 0.31        
1657 2,201     11,226 0.77        
1675 4,726     13,145 1.95        
1693 7,045     16,030 -1.77        
1711 6,394     15,457 1.07        
<1726>   7,500 0.24 17,089 0.92        
1729 7,132     17,567 0.25        
1747 7,340     18,544 0.20        
1765 6,975     17,682 0.02        
1783 7,317     18,242 0.22        
<1789>   9,500 0.36 18,269 -0.39     17,203∼17,977④
1801 7,514     18,497 0.11        
<1810>       18,383 0.43 15,100 0.08    
1819 6,512     16,217 -0.00        
<1830>       16,476 0.12     7,412②  
1837 6,709     16,479 0.05        
1855 6,829     16,856 -0.03        
<1858>   12,000 0.40 16,845 -0.03        
<1870>       16,835 0.05     8,272②  
1872 6,753     16,852 0.05        
<1884>       16,950 0.05 16,000 0.34   16,228⑤

10,519⑥

16,000⑦
1890 6,608     16,999 0.05        
1900 5,608     17,082 0.20     11,436②  
1910 13,129 15,300   17,427 0.20 17,500   13,820② 16,300③

<표 2>조선시대 추정 인구수 (단위:1,000명)

비고:
 1) 1900·1910년을 제외하고는 인조 17년∼고종 27년(1639∼1890)을 6식년(18년) 간격으로 작성한 것임.< >안 연도분은 참고를 위한 것임.
 2) 증가율은 연평균 인구 증가율임.
 3) A:金載珍,≪韓國의 戶口와 經濟發展≫(博英社, 1967).
   B:權泰煥·愼鏞廈,<朝鮮王朝時代 人口推定에 관한 一試論>(≪東亞文化≫14, 서울大, 1977).
   C:李鎬澈,≪농업경제사연구≫(경북대 출판부, 1992).
   ① 韓永愚,<朝鮮前期 戶口總數에 대하여>(≪인구와 생활환경≫, 서울대, 1977). 연평균 인구 증가율을 0.4%로 보고 있다.
   ② 石南國,≪韓國の人口增加の分析≫(勁草書房, 1972). 연평균 인구 증가율을 0.37%로 보고 있다.
   ③ 金 哲,≪韓國の人口と經濟≫(岩波書店, 1965).
   ④ 김두섭,<조선 후기 도시에 대한 인구학적 접근>(≪韓國社會學≫24, 1990).
   ⑤ 1884년:베벨,≪1889년의 한국여행≫.
   ⑥ 1881년:<한국지식>(1892).
   ⑦ 1883년:Japan Daily Herald(1885년 2월 9일자).
   ※ ②·⑤·⑥·⑦은 李鎬澈, 위의 책에 의거함.

0001) 조선시대의 호적제도와 그 운영실태에 대해서는 다음의 논고들이 참고된다.

四方 博,<李朝人口に關する一硏究>(≪朝鮮社會法制史硏究≫, 京城帝大法學會論集 9, 1937).

渡邊業志,<朝鮮に於ける戶籍制の變遷(1)∼(6)>(≪戶籍≫4-6∼9·11∼12, 1944∼1945).

李光麟,<號牌考>(≪庸齋白樂濬博士還甲記念 國學論叢≫, 思想界社, 1955).

有井智德,<李朝初期の戶籍法について>(≪朝鮮學報≫39·40, 1966).

李樹健,<朝鮮初期 戶口硏究>(≪嶺南大學校 論文集(人文科學篇)≫5, 1971).

崔弘基,≪韓國戶籍制度史硏究≫(서울大 出版部, 1975).

申正熙,<五家作統法小考>(≪大丘史學≫12·13, 1977).

韓榮國,<朝鮮 後期의 丹城縣戶籍大帳에 대하여>(≪精神文化≫7,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0).

―――,<朝鮮王朝 戶籍의 基礎的 硏究>(≪韓國史學≫6,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5).

―――,<朝鮮 初期 戶口統計에서의 戶와 口>(≪東洋學≫19, 檀國大, 1989).

崔承熙,<戶口單子·准戶口에 대하여>(≪奎章閣≫7, 서울大, 1983).

武田幸男,≪學習院大學藏朝鮮戶籍大帳の基礎的硏究≫(日本 學習院大 東洋文化硏究所, 1983).

鄭德基,<朝鮮後期 戶口制度 考察>(≪魯山劉元東博士華甲紀念論叢 韓國近代社會經濟史硏究≫, 正音文化社, 1985).

은기수,<조선 후기 인구자료로서의 호적에 관한 일연구>(≪한국사회의 신분계급과 사회변동≫, 문학과지성사, 1987).

全炅穆,<19세기 말에 작성된 南原 屯德坊의 戶籍中草와 그 성격>(≪古文書硏究≫3, 1992).

梁晉碩,<解題>(≪濟州河源里戶籍中草≫1, 서울大 奎章閣, 1992).

李俊九,<壬寅年 『縣內面推刷成冊』의 性格과 資料的 價値>(≪朝鮮史硏究≫5, 1996).
0002)≪度支志≫內篇 總要.
0003) 가장 치밀하게 인구수를 추정하고 있는 B(권태환·신용하의 논문)의 경우를 一例로 살펴보면, 조선 후기의 인구가 아무리 자연증감에만 의존하고 또 갖가지 재난이 잇달았다 해도 영조 23년∼광무 4년(1747∼1900)의 약 150년간에 한 번도 1747년의 인구수(1,854만여 명)를 회복하지 못하고 150여만 명(약 10%)이나 감소된 1,700여만 명을 1900년에 이루게 되었는지 납득할 수 없다. 또 대체로 0.3% 내외의 연평균 증가율을 보였던 前近代社會에서 그 3∼7배나 되는 0.92%(영조 2년, 1726)∼2.18%(현종 4년, 1663)의 증가율이 산정될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그뿐 아니라 인구수 추정과정에서 기근·질병 등으로 인한 증감의 고려가 세밀히 수행되지 못한 곳이 여러 군데 보이고도 있다. 예를 들면, 현종 2∼5년 下三道와 경기·강원도에 심한 기근과 전염병으로 수많은 사망자가 속출한 것으로≪朝鮮王朝實錄≫에 나타나고 있는데, 이와는 상치되게 1.50%(1660∼1662)와 2.18%(1663∼1665)의 인구증가율을 적용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런데 C(李鎬澈의 책)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검토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0004) 인조 4년(1626)에 號牌廳에서 호패 발급을 통하여 파악한 男丁은 226만여 명으로 나타난다(≪仁祖實錄≫권 13, 인조 4년 6월 병오). 이에 隱漏者(약 10%)와 女丁(약 250만)·少兒(약 300만) 등을 합하면 당시 총 인구는 약 800만 명 정도로 추정할 수 있겠다.<표 2>의 A보다는 많고 B와 ①보다는 적은 수가 되어 우선 800만∼900만 명 정도로 설정해 둔다. 이러한 추정은 筆者가 세조 때(15세기 중엽)의 인구수를 500만 명 정도로, 임진왜란 직전(16세기말)의 인구수를 900만∼1,000만 명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0005) 1925년의 간이 국세조사 결과(19,020,030명)로 볼 때 1910년의 인구수를 1,750만 명 정도로 추정한 B·C의 견해가 옳으리라 여겨진다.
0006)<표 1>에 보이는 정부 집계 인구수의 변동에 대해서는 方東仁,<인구의 증가>(≪한국사≫13, 국사편찬위원회, 1976)가 참고된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정부 집계 인구수의 감소를 가져온 질병·기근과 이의 극복을 위한 安民시책 등이 소개되고 있을 뿐, 그를 통한 실제 인구수의 증감양태는 추정하지 않고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