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조선 시대33권 조선 후기의 경제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1. 인구의 증가와 분포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1. 인구의 증가와 분포
          • 1) 인구의 증감
          • 2) 인구의 분포
        • 2. 농업생산력의 발달과 상품작물의 재배
          • 1) 수전농업의 생산력
            • (1) 이앙법의 보급
            • (2) 새로운 품종의 보급
            • (3) 시비법의 발달
            • (4) 새로운 농업기술의 보급
          • 2) 한전농업의 생산력
            • (1) 품종의 증가와 새로운 작물의 보급
            • (2) 새로운 농업기술의 보급
            • (3) 시비법의 발달
            • (4) 윤작의 실시
          • 3) 농구와 수리시설
            • (1) 농기구의 발달
            • (2) 수리시설의 확대
            • (3) 상품작물의 재배
        • 3. 광작과 지주제
          • 1) 농촌사회 분해와 광작농의 대두
            • (1) 광작과 광작농
            • (2) 광작론과 반광작론
          • 2) 지주제의 변동
            • (1) 농촌사회 분해와 토지의 상품화
            • (2) 지주제의 변동과 그 대책
          • 3) 농업에서의 자본주의 맹아론
            • (1) 자본주의 맹아론과 내재적 발전론
            • (2) 자본주의적 관계의 발생
        • 4. 임노동의 발생
          • 1) 농민층의 분화
            • (1) 부역제의 한계
            • (2) 노동력 수요의 증대
            • (3) 노동예비군의 형성
          • 2) 임노동자의 출현
            • (1) 유민의 증대와 대책
            • (2) 고용관계의 수립
          • 3) 임노동의 양상
            • (1) 임노동의 종류
            • (2) 임노동의 조건
        • 5. 수공업의 발달
          • 1) 자영수공업체제의 형성과 발전
          • 2) 상업자본의 생산적 전회와 선대제의 발생
          • 3) 매뉴팩처의 발생
            • (1) 유기산업부문
            • (2) 야철산업부문
            • (3) 직물산업부문
            • (4) 광업부문
        • 6. 광업의 발달
          • 1) 18세기「별장」제하의 광업 실태
            • (1)「별장」제의 성립과 군수광업의 몰락
            • (2)「별장」제하 은점의 경영 실태
          • 2) 18세기말 19세기 전반「물주」제하의 광업 실태
            • (1)「별장」제의 폐지와「수령수세」제의 성립
            • (2) 물주제하의 광산경영 실태
        • 7. 어·염업의 발달
          • 1) 어업
            • (1) 상품화폐경제의 발달과 어업의 발달
            • (2) 수산물의 종류
            • (3) 어구·어법
            • (4) 어전·방렴류
            • (5) 대규모 어업의 발달
            • (6) 수산양식업
            • (7) 수산제조업
          • 2) 염업
            • (1) 소금과 염업의 중요성
            • (2) 소금 생산방법
            • (3) 제염기술의 발전
            • (4) 소금의 유통구조
            • (5) 염업에 대한 정책
        • 8. 운수업의 발달
          • 1) 육상운송
            • (1) 조선 후기 역의 운영 실태
            • (2) 파발제의 성립과 발달
            • (3) 역마확보의 변화와 고립제
          • 2) 수상운송
            • (1) 관물의 운송
            • (2) 사물의 운송
          • 3) 원과 주막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1. 상인층의 성장과 도고상업의 전개
          • 1) 관상도고의 활동
            • (1) 시전도고의 활동
            • (2) 공인의 활동과 공인자본의 성격
            • (3) 경·영주인과 영저도고의 활동
          • 2) 사상도고의 활동
            • 가. 서울지역에서의 사상의 활동과 신해통공
            • 나. 서울 주변지역에서의 사상도고의 활동
            • 다. 상품생산지 및 집산지에서의 사상도고의 활동
          • 3) 반도고활동의 전개와 상업계의 동향
            • 가. 관상도고에 대한 반도고운동
            • 나. 사상도고에 대한 반도고운동
        • 2. 상품의 유통
          • 1) 농촌장시의 발달
            • (1) 상업적 농업과 농촌수공업의 발달
            • (2) 육상교통의 발달과 장시의 증가
            • (3) 농촌장시의 발달과 시장권 확대
          • 2) 포구상업의 발달
            • (1) 해상교통의 발달과 포구시장권의 형성
            • (2) 경강포구의 상업발달
            • (3) 외방포구의 상업발달
            • (4) 포구상업세력의 성장과 상품유통
          • 3) 상업도시의 형성
            • (1) 전국적 시장권의 형성
            • (2) 서울의 상업도시로의 성장
            • (3) 지방 상업도시의 출현
          • 4) 상업자본의 축적
            • (1) 시전상업체제의 변동과 사상의 성장
            • (2) 도고상업과 상업자본의 축적
            • (3) 상업자본의 생산자 지배
        • 3. 금속화폐의 보급과 조세금납화
          • 1) 금속화폐의 보급과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1) 동전유통 정착의 경제적 기반
            • (2) 17세기말∼18세기 중엽 금속화폐의 유통
            • (3) 18세기 후반∼19세기 중엽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2) 조세금납화와 봉건적 수취체제의 해체
            • (1) 조세금납의 성립조건-17세기 수취제도의 모순
            • (2) 17세기말∼19세기 중엽 조세금납의 전개
            • (3) 19세기 전반 화폐수탈의 급증과 사회적 모순의 심화
        • 4. 대외무역의 전개
          • 1) 청과의 무역
            • (1) 17세기 부연역관의 청·일 간 중계무역
            • (2) 17세기말 18세기 전반 무역별장의 등장과 역관·상인 간의 대립
            • (3) 18세기 후반 19세기 전반 연상무역의 발전과 산업부문 침투
          • 2) 일본과의 무역
            • (1) 무역의 범주
            • (2) 상인
            • (3) 상품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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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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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인구의 분포

 그러면 이같은 규모의 인구는 어디에 어떻게 분포되어 있었고, 또 그 추이는 어떠했던가? 우선 각 지역별 분포양태를 살피기 위하여 지금까지 불규칙하게 산견되는 각 道別 인구수들을 가능한 한 9∼12년 간격으로 정리하여 보면 다음<표 3>과 같이 나타난다.

연 도 인구수 한성 경기 충청 전라 경상 강원 황해 평안 함경 出 典
인조 26

(1648)
1,531①

100%
96

6.27
81

5.29
174

11.37
432

28.22
425

27.76
54

3.53
55

3.59
146

9.54
69

4.51
증보문헌비고

(실록,탁지지)
효종 8 (1657) 2,290

100%
81

3.54
133

5.81
287

12.53
522

22.80
763

33.32
72

3.14
138

6.04
185

8.09
110

4.80
증보문헌비고
현종 10 (1669) 5,019②

100%
194

3.87
546

10.89
595

11.86
973

19.39
1,174

23.39
186

3.71
361

7.19
720

14.35
269

5.36
숙종 4 (1678) 5,247③

100%
167

3.19
554

10.56
714

13.61
1,000

19.06
1,005

19.16
271

5.16
455

8.67
707

13.47
374

7.12
숙종 43 (1717) 6,840④

100%
238

3.48
561

8.20
974

14.26
1,110

16.22
1,629

23.81
282

4.13
458

6.69
1,078

15.77
510

7.45
증보문헌비고

(실록)
영조 2 (1726) 7,032⑤

100%
189

2.69
560

7.96
911

12.96
1,105

15.71
2,243

31.90
290

4.12
469

6.67
735

10.45
531

7.55
영조 29 (1753) 7,299⑥

100%
174

2.39
642

8.80
931

12.76
1,193

16.34
1,662

22.77
391

5.35
540

7.40
1,268

17.38
498

6.82
증보문헌비고
정조 1

(1777)
7,239

100%
198

2.74
607

8.39
871

12.03
1,190

16.44
1,569

21.67
341

4.71
550

7.60
1,274

17.60
639

8.83
정조 13 (1789) 7,404

100%
189

2.55
642

8.67
868

11.73
1,221

16.49
1,591

21.49
332

4.49
568

7.67
1,296

17.51
696

9.40
호구총수

= 실록
순조 7

(1807)
7,561

100%
205

2.71
675

8.92
893

11.81
1,251

16.55
1,607

21.25
336

4.45
583

7.71
1,306

17.27
706

9.34
증보문헌비고
헌종 3 (1837) 6,709

100%
204

3.04
658

9.80
846

12.61
1,093

16.29
1,501

22.37
318

4.75
547

8.15
853

12.71
690

10.28
철종 3

(1852)
6,919⑦

100%
204

2.95
673

9.72
881

12.73
1,068

15.43
1,536

22.19
325

4.70
673

9.72
869

12.56
692

10.00
고종 1

(1864)
6,829

100%
203

2.97
674

9.88
879

12.87
1,083

15.86
1,521

22.28
332

4.86
568

8.32
873

12.78
696

10.19
광무 8

(1904)
5,929

100%
192

3.24
673

11.35
775

13.07
931

15.70
1,111

18.74
302

5.09
382

6.44
813

13.71
750

12.65
광무 11

(1907)
9,782

100%
199

2.04
869

8.88
1,142

11.67
1,448

14.80
2,333

23.85
628

6.42
901

9.21
1,289

13.18
973

9.95
한국호구표
융희 4

(1910)
12,919

100%
234

1.81
1,104

8.55
1,407

10.89
2,448

18.95
2,896

22.42
775

6.00
963

7.45
1,832

14.18
1,261

9.76

<표 3>조선 후기 인구의 지역별 분포 (단위:1,000명)

비고:
 ① 京兆掌故御覽獻民口數:1,793,701명.
 ② 京兆掌故御覽獻民口數:5,218,744명.
 ③ 京兆掌故御覽獻民口數:5,872,217명.
 ④ 京兆掌故御覽獻民口數:6,788,789명.
 ⑤ 京兆掌故御覽獻民口數:6,995,004명.
 ⑥ 京兆掌故御覽獻民口數:7,288,361명.
 ⑦ 합계는 6,810,206명으로 되어 있으나 실합계수는 6,918,838명이다.
 ⑧ 李憲昶,<「民籍統計表」의 檢討>(≪古文書硏究≫9·10, 1996).

 <표 3>에 따르면, 조선 후기에는 대체로 三南지방(충청도·전라도·경상도)에 전 인구의 51% 정도가, 三北지방(황해도·평안도·함경도)에 32% 정도가, 한성부와 中部지방(경기도·강원도)에 17% 정도가 각각 거주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호구의 파악이 극히 미진했던 인조 26년∼효종 8년(1648∼1657)에는 삼남지방에 68%, 삼북지방에 18%, 중부지방에 14% 정도가 각각 거주했던 것으로 나타나지만, 호구 파악이 어느 정도 수준에 달했던 현종 10년∼숙종 4년(1669∼1678)에는 삼남지방이 53% 정도로 하강되는 반면에 삼북지방이 28% 정도로, 중부지방이 19% 정도로 상승되어, 이후의 18·19세기 양상, 즉 51·32·17%의 비율에0007) 접근하고 있다. 인구의 80% 정도가 집계된 것으로 여겨지는 1910년도의 분포 비율이 52.3·31.4·16.4%를 이루는 것을 보면, 18·19세기의 이러한 분포양태는 거의 실제에 가까웠던 양상이 아닌가 생각된다.

 조선 후기의 이같은 인구분포 양상은 무엇보다도 경작지의 분포와 긴밀한 관계를 지녔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사회가 아직은 농업 위주의 토지경제사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인데, 이제 그 구체적인 양상을 살펴보면, 다음<표 4>와 같다.

 이에 따르면, 대체로는 각 도의 전결수 백분비와 인구수 백분비가 비례하고 있어서 경작지가 많은 지역에 인구가 많이 거주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충청·전라·경상도의 삼남지역과 황해도는 시종 경작지에 비해 인구수가 적었던 것으로 나타나는 반면에, 경기·강원·평안·함경도는 시종 경작지에 비해 인구수가 많았던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평안도와 함경도의 경우에는 전결수의 증가로 그 대비의 격차가 점차 감소되고 있으나, 여타 지역에서는 그 격차가 점차 증대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역에 따라서는 경작지의 다과와 인구의 다과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았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농법의 차이나 농업 이외의 생업의 발달 등이 고려될 수도 있겠고, 한편으로는 量田이나 호구조사의 지역적 차이에서 말미암은 격차를 생각하여 볼 수도 있겠다. 특히 경작지나 그 증대에 비해 인구수와 그 증대가 월등하였던 평안도와 함경도의 경우, 더욱 그러한 것이다. 평안·함경도는 황해도와 함께<표 5>에서 보듯이 17세기에는 물론, 18세기에도 남다른 인구 증가를 이루어 위와 같은 18·19세기의 인구분포 양상을 이루어 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이를 해명할 만한 연구는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의 연구를 기다려야 하겠지만, 우선 다음과 같은 사실이 한 가지 참고가 되리라 본다. 즉 순조 14년(1814)에 평안도 관찰사가 民戶逃散의 세 가지 폐단을 지적하면서 평안도의 前式年(순조 10년)의 戶數는 302,844호 이고 남정수는 664,654명인데, 今式年(순조 13년)에는 호수가 192,867호이고 남정수는 402,972명으로 감축되었다고 국왕에게 보고하고 있는 것이다.0008) 곧 호·구의 虛錄을 실사한 결과, 호수에서는 전식년보다 무려 36.3%가, 남정수에서는 39.4%가 각기 감소되었다는 것이다. 호구의 허록은 유독 평안도에만 국한되었던 폐해가 아니었지만, 순조 7년까지 계속 증가만 하던 평안도의 인구수가 헌종 3년(1837)에 무려 35%나 감소한0009) 것도(<표 3>·<표 5>참조) 순조 11년(1811)의 洪景來亂과 그 직후의 이같은 救弊조치에서 기인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평안도는 이 결과로 전결수 대 인구수의 격차가 2.4배(숙종 46년·정조 10년)에서 1.5배(순조 28년)로 좁혀지고 있는 것이다.

  인조 24(1646) 숙종 46(1720) 정조 10(1786) 순조 3(1803) 순조 28(1828)
전 결 인 구 전 결 인 구 전 결 인 구 전 결 인 구 전 결 인 구
한성   6.3   3.5   2.7   2.7    
경기 3.2 5.3 7.3 8.2 7.7 8.7 6.8 8.9 6.3 8.2
충청 18.2 11.4 18.3 14.3 17.8 11.8 15.1 11.8 17.9 14.2
전라 29.2 28.2 27.1 16.2 24.3 16.6 25.6 16.6 23.7 14.9
경상 27.7 27.8 24.2 23.8 23.4 21.6 24.8 21.3 23.5 23.7
강원 1.2 3.5 2.9 4.1 2.8 4.4 1.4 4.5 2.9 5.6
황해 6.5 3.6 9.3 6.7 9.0 7.7 8.7 7.7 9.2 8.7
평안 7.0 9.5 6.5 15.8 7.4 17.5 9.9 17.3 8.3 12.8
함경 7.1 4.5 4.4 7.5 7.6 9.1 7.7 9.3 8.2 11.7
총수 685,300①

100%
1,531,365②

100%
1,391,700③

100%
6,840,000④

100%
1,436,400⑤

100%
7,356,783⑥

100%
845,900⑦

100%
7,561,000⑧

100%
1,435,400⑨

100%
6,099,700⑨

100%

<표 4>조선 후기 각 도별 전결수 및 인구수의 백분비

비고:
 ① 柳馨遠,≪磻溪隨錄≫田制攷說. 인조 24년도 時起結數.
 ② 인조 26년 인구수.
 ③ 丁若鏞,≪經世遺表≫田制考. 숙종 46년도 元帳付.
 ④ 숙종 43년 인구수.
 ⑤≪度支志≫總要. 정조 10년도 元帳付. 이에는 총수가 元田畓 1,427,519결, 時起 834,878결로 기재되어 있으나 각 도별 수치의 합계는 1,436,400결(원전답), 739,936결(시기)이다.
 ⑥≪度支志≫總要. 정조 10년도 元戶口. 이에는 총수가 남 3,577,680명, 여 3,762,036명으로 기재되어 있으나(합 7,339,716명), 각 도별 수치의 합계는 위와 같다.
 ⑦ 丁若鏞,≪經世遺表≫田制考. 순조 3년도 時起結數.
 ⑧ 순조 7년 인구수.
 ⑨≪靑丘全圖≫所載 軍國總目表=<備局都錄>(순조 28년) (≪朝鮮學報≫125, 1987). 이에는 총수가 전결 1,456,600결, 인구 6,058,900명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각 도별 수치의 합계는 위와 같다.

연도 한성 경기 강원 충청 전라 경상 황해 평안 함경
1648 100 100 100 100 100 100 100 100 100
1678 176 684 502 410 232 237 827 484 542
1717 248 693 522 560 257 383 833 738 739
1753 181 793 724 535 276 391 982 869 722
1789 197 793 615 499 283 375 1,032 888 1,009
1837 213 812 589 486 253 353 995 584 1,000
1864 213 832 615 482 251 358 1,033 598 1,009
1904 200 832 559 445 216 261 695 557 1,087
1910 244 1,363 1,435 809 567 681 1,751 1,255 1,828

<표 5>조선 후기 각 도별 인구증가지수

<표 3>의 인구수에 의거함

 그런데 위의<표 3>에서 한 가지 주목되는 것은 영조 2년(1726)과 영조 29년 사이에 다른 지역과는 달리 경상도의 인구가 26%나 급격히 감소하고 있는 양상이다. 도표로 표시하면<그림 2-1>·<그림 2-2>·<그림 2-3>와 같은 모습이 되겠는데, 평안도의 경우는 순조 7년에서 헌종 3년으로의 변동이 위와 같은 원인, 즉 홍경래란과 그에 뒤이었던 허록의 실사에서 말미암았다고 본다 하더라도, 경상도의 경우에는 20여 년 사이에 60만의 인구가 급격히 감소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 영조 2∼29년 사이에 전국적으로 수십만 명이 사망하는 세 차례(1731∼1737, 1742∼1743, 1749∼1750)의 기근과 전염병이 있기는 하였으나, 이러한 상황은 영조 2년 직전에도 있었다(1717∼1718, 1723∼1725). 그러나 경상도는 다른 지역들과는 달리 영조 2년에 숙종 43년(1717)보다 72%의 인구증가상을 보였던 것이다. 따라서 숙종 43년∼영조 2년의 증가도 그러하거니와, 영조 2∼29년의 감소에는 그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의 연구에 기대하지만, 우선 경상도와는 반대로 이 기간의 평안도의 인구가 53만 명(40%)이나 급격히 증가한 점이 주목된다.

<그림 2-1>조선 후기 지역별 인구증감 추세(三南지방)

<그림 2-2>조선 후기 지역별 인구증감 추세(中部지방)

<그림 2-3>조선 후기 지역별 인구증감 추세(三北지방)

 한편 위와 같은 인구분포에 따른 각 지역의 인구밀도를 살펴보면, 다음의<표 6>과 같이 나타난다.0010) 한성부를 제외하고 본다면, 시종 전라도를 首位로 하여 삼남지역과 경기도가 전국의 인구밀도를 웃돌고 있었고, 삼북지방과 강원도는 인구증가지수의 급격한 상승에도 불구하고 시종 전국의 인구밀도를 밑돌고 있었던 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 이 또한 경작지의 다과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음을 드러내고 있는 모습인데, 그 중에도 경기도가 경작지에 비하여 유난히 높은 밀도를 보이고 있어서 주목된다. 이 시기에는 농업 이외의 생업수단이 이 지역에서 발달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추측되기도 하지만,0011) 앞으로의 연구를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본다.

연도\지역 한성 경기 강원 충청 전라 경상 황해 평안 함경 전국
인조 26(1648) 422 7.0 2.0 11.0 24.0 14.4 3.0 3.5 1.4 7.3
현종 10(1669) 858 47.0 7.3 38.6 53.6 40.0 22.4 17.1 5.3 24.0
숙종 43(1717) 822 48.7 10.9 54.9 60.7 53.5 25.5 18.2 10.4 32.8
영조 29(1753) 771 55.3 15.3 60.5 65.7 56.5 33.6 30.1 9.8 34.9
정조 4(1781) 889 52.9 13.4 55.3 66.0 53.4 34.5 30.1 12.3 34.6
순조 16(1816) 921 54.9 13.4 55.9 57.8 48.5 32.8 18.2 14.0 31.5
철종 3(1852) 902 57.9 12.7 57.2 58.8 52.2 41.8 20.7 13.6 32.6

<표 6>조선 후기 각 도별 인구밀도 (㎢당 인구수)

  출전

인구
경 기 강 원 충 청 전 라  
A B C A B C A B C A B C
10만이상 한성   한성                

 
     
9∼10만               1      

 
     
8∼9만     (1)       1   (1)    

 
     
7∼8만     (1)             1

 
1      
6∼7만 1 2 1              

 
       
5∼6만 2 1 (1)    

 
1 1 1 1 1 1      
4∼5만 1 1 (1)    

 
2 2 2 4 1 3      
3∼4만 2 1 (1) 2 2 1 1 1 1 4 5 2 (4)      
2∼3만 4 5 3(1)   1 1 (1) 2 2 2(2) 17 10 12 (2)      
1∼2만 13 12 8(1) 11 12 6 (5) 30 30 22(5) 15 21 10 (5)      
5천∼1만 12 13 14(1) 11 10 7 (3) 16 16 13(1) 14 11 11 (4)      
5천 이하 3 2 3(1) 2 1 1 (1) 1 1 4   4        
38

37
29(9) 26 26 16(10) 54 54 45(9) 56

53

40(15)
     
  출전

인구
경 상 황 해 평 안 함 경
A B C A B C A B C A B C A(%) B(%) C(%)
10만이상             1           1

(0.3)
   
9∼10만                           1

(0.3)
 
8∼9만     (1)       1 1         2

(0.6)
1

(0.3)
3

(0.9)
7∼8만 2 2 1             1 1   4

(1.2)
3

(0.9)
3

(0.9)
6∼7만 2 2   1   1 1   (1) 1 1 (1) 6

(1.8)
5

(1.5)
4

(1.2)
5∼6만 3 1 2(1) 2 1 1 3 1 1 (2) 1 2 2 13

(3.9)
8

(2.4)
12

(3.6)
4∼5만 2 1 2   1   2   1 (2) 3 1 2 14

(4.2)
7

(2.1)
13

(3.9)
3∼4만 8 6 5(4) 3 1 2 5 5 2 (3) 4 4 5 29

(8.7)
25

(7.6)
30

(9.0)
2∼3만 14 13 10(1) 6 8 5(1) 18 5 3 (3) 4 4 3(1) 65

(19.5)
48

(14.5)
51

(15.2)
1∼2만 28 32 28(1) 7 9 9(2) 10 18 10(7) 7 9 6(2) 121

(36.2)
143

(43.2)
127

(38.0)
5천∼1만 10 11 13(1) 4 3 1(1) 1 10 3 (5) 3 3 2 71

(21.3)
77

(23.3)
80

(23.9)
5천 이하 2 3 1         2 1       8

(2.4)
13

(3.9)
12

(3.6)
71 71 2(9) 23 23 19(4) 42 42

21(23)
24

25

20(4)
334

(100)
331

(100)
335

(100)

<표 7>조선 후기 인구규모별 군현수

비고:
 A:≪戶口總數≫정조 13년도(1789).
 B:≪靑丘全圖≫軍國總目表, 순조 28년도(1828).
 C:각 군·현 邑誌(고종 5∼8년;1868∼1871년 편찬)(善生永助,≪朝鮮の人口現象≫, 朝鮮總督府, 1927).
 ① 豊德 無(풍덕군은 순조 23년에 혁파되어 開城府에 소속되었다가 고종 3년에 復置).
 ② 濟州·大靜·旌義 누락.
 ③ 咸悅 누락.
 ④ 慈城·厚昌郡 추가(자성군은 세조 5년에 혁파되었다가 고종 6년에 복구. 후창군은 아래 ⑤ 참조).
 ⑤ 厚州 추가(후주부는 원래 평안도 厚州鎭이었는데 순조 13년에 府로 승격되어 함경도로 이속. 고종 6년에 후주와 茂昌을 합하여 厚昌郡으로 삼아 평안도로 이속).
 ⑥ 厚州 無. 위 ⑤ 참조.
 ※ C의 ( )내의 수치는 호수만 기록된 군·현의 경우인데, 호당 5명으로 산출하여 인구수를 추정하였음.

 다음 각 郡縣別 인구분포 양상을 보면, 앞의<표 7>과 같이 나타난다. 330여 군현 중 60여%가 5천 이상 2만 명 이하의 인구를 지닌 군현들로 나타나고, 30% 내외가 2만 이상 5만 명 이하의 인구를 지닌 군현들로, 8% 정도가 5만 명 이상의 인구를 지닌 군현들로, 2% 정도가 5천 명 이하의 인구를 지닌 군현들로 나타나는 것이다. 당시 호적에 등재되지 않은 인구가 40∼50%에 달했다고 본다면, 60여%의 군현들이 1만∼4만 명의 인구를 지녔다고 하겠다. 그런데 이러한 군현들이 삼북지방에서보다 삼남지방에서 더욱 많은 비율을 점하고 있는 것은 지리적 환경과 함께 집약적 농업에서 연유된 양상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제 실제로 10만 명 이상의 인구를 지녔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군현들을≪戶口總數≫(1789년)에 기준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경기도:廣州·楊洲·水原·開城(49,623명). 충청도:忠州·洪州. 전라도:全州·羅州. 경상도:慶州·尙州·晋州·大邱·星州·密陽·安東 황해도:海州·黃州·安岳 평안도:平壤·義州·江界·成川·寧邊·定州·安州(49,582명) 함경도:咸興·吉州·永興

 경기도가 38개 군현 중 4곳(10.5%), 충청도가 54개 군현 중 2곳(3.7%), 전라도가 56개 군현 중 2곳(3.6%), 경상도가 71개 군현 중 7곳(9.9%), 황해도가 23개 군현 중 3곳(13%), 평안도가 42개 군현 중 7곳(16.7%), 함경도가 24개 군현 중 3곳(12.5%)이고, 강원도에는 한 곳도 없다. 이들 10만 명 이상의 大郡이 道內 군현수에 비하여 삼북지방에 많이 존재하고 삼남지방에 적게 존재하는 이유는 앞으로의 연구를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이지만, 조선 후기에는 대체로 이들 28개 군현의 都市部(대체로 邑治 지역)가 각 지역의 주요 도시를 이루었던 것으로 생각된다.0012)

<그림 3>1830년대의 인구분포

 이같은 인구의 분포나 도시의 분포는 조선 후기에 이르러 새롭게 형성된 것은 아니었다. ‘背山臨水’의 전통적 취락형태와 농업 위주의 경제생활에서 오래 전부터 그 기반이 마련되어 온 것이었다. 그리하여 앞의<그림 3>에서0013) 보듯이, 大同江水系, 漢江水系, 臨津江水系, 錦江水系, 榮山·蟾津江水系, 洛東江水系 등을 쫓아 그 연안에 인구가 밀집되고 도시가 발달하는 양태를 보이게 되었다. 조선 후기에 대표적 鄕市로 손꼽히는 15개 場市가0014) 거의 水運(또는 海運)에 편리한 이들 水系에 위치하는 것도 우연이 아니었다.

<韓榮國>

0007) 18·19세기의 인구 분포 비율을 약 30년 간격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비율은 삼남-삼북-중부지방의 순서임).

숙종 43년(1717):54.3-29.9-15.8

영조 29년(1753):51.9-31.6-16.6

정조 원년(1777):50.1-34.0-15.8

순조 7년(1807):49.7-34.3-16.2

헌종 3년(1837):50.3-32.3-17.4

고종 원년(1864):51.1-31.2-17.6

광무 4년(1900):46.9-32.5-20.7

평 균:50.6-32.3-17.2
0008) 方東仁, 앞의 글, 300쪽.
0009)≪靑丘全圖≫軍國總目表에 나타나는 순조 28년도(1828) 평안도의 인구수는 781,200명으로 집계된다. 순조 7년도보다 40%가 감소한 수치이다.
0010) 方東仁, 앞의 글에 의거함. 각 도의 면적이 후대의 자료(朝鮮總督府,≪朝鮮地誌資料≫, 1918)를 바탕으로 산출한 것이어서 다소의 차이가 상정되고, 또 부정확한 정부 집계 인구수에 따른 것이어서 실제와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으리라 여겨지지만, 우선 대체적인 양상을 파악하는 데는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0011) 1910년의 통계(≪民籍統計表≫)이기는 하지만, 경기도는 직업별 인구수에 있어서 상업과 공업·日稼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나타내고 있다. 상업에서는 전국 상업인구의 17%를, 공업에서는 22.3%를, 일가에서는 22.7%를 점유하여 首位를 보이고 있다. 李憲昶,<『民籍統計表』의 檢討>(≪古文書硏究≫9·10, 1996) 참조.
0012) 孫禎睦의 연구(≪朝鮮時代都市社會硏究≫, 一志社, 1977)에는 18세기말에 118개의 도시가 각 지역에 산재했던 것(경기 9, 충청 15, 전라 19, 경상 30, 황해 11, 강원 4, 평안 30, 함경 18개)으로 나타나고, 김두섭의 연구(<조선 후기 도시에 대한 인구학적 접근>,≪韓國社會學≫24, 1990)에는 같은 시기에 전국 주요 도시로 57개(경기 3, 충청 6, 전라 10, 경상 12, 황해 5, 평안 16, 함경 4)가 선정되고 있다.
0013) 方東仁, 앞의 글에 의거함.
0014)≪萬機要覽≫財用編 5, 鄕市.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