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조선 시대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Ⅰ. 민중세력의 성장3. 민중운동의 사상적 기반1) 성리학에 대한 사상적 도전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1. 신분제의 이완과 민중사회의 성장
          • 1) 사족지배구조의 정착과 신분구조의 변화
          • 2) 17세기 위기 이후 대민 지배정책의 전환
            • (1) 국가의 대민 지배방식의 전환과 ‘여민휴식’정책의 철회
            • (2) 공동납체제로의 전환과 18∼19세기 호적 운영의 변화
          • 3) 사족지배질서의 동요와 민중의 성장
        • 2. 민중의 사회적 결속
          • 1) 공동체 질서와 민중
          • 2) 18세기 향촌공동체의 변화와 민중조직의 활성화
            • (1) 면리제의 강화와 민
            • (2) 동계의 변화와 분동
            • (3) 민중조직의 활성화
          • 3) 19세기 민중의 사회적 결속
            • (1) 향회의 활용
            • (2) 민중조직과 농민항쟁
        • 3. 민중운동의 사상적 기반
          • 1) 성리학에 대한 사상적 도전
            • (1) 성리학의 교조화
            • (2) 민중사상의 확산
          • 2) 민중운동의 사상적 특성
            • (1) 민중운동 속의 사상경향
            • (2) 민중사상 전파의 주체
            • (3) 정부의 대응책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1. 사회경제적 배경과 정치적 과제
          • 1) 민중세계의 각성
          • 2) 유대관계의 강화
          • 3) 향권의 추이
          • 4) 사회세력의 동향
        • 2. 유민과 명화적
          • 1) 유민
            • (1) 유민발생의 배경
            • (2) 유민의 실태와 유입처
            • (3) 정부의 유민대책
          • 2) 명화적
            • (1) 명화적 발생의 배경과 조직체계
            • (2) 활동양상과 그 성격
            • (3) 정부의 대책
        • 3. 여러 지역의 항쟁과 ‘무신란’
          • 1) 18세기 초 민중의 동향과 변산군도
          • 2) 무신란의 발단과 전개
            • (1) 18세기 초 정치정세와 ‘무신당’의 결성
            • (2) 무신당의 반정계획과 지방토호·녹림당의 가세
            • (3) 무신란의 전개와 향촌사회의 동향
            • (4) 무신란의 참가계층과 그 성격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1. 서북지방의 민중항쟁
          • 1) 사회경제적 특성과 항쟁의 배경
            • (1) 서북지방의 사회·경제적 특성
            • (2) 매향과 향권의 동향
            • (3) 중앙권력의 구조적 수탈
          • 2) 항쟁의 과정
            • (1) 서북민의 저항과 홍경래 난의 발발
            • (2) 홍경래 난의 전개과정
          • 3) 항쟁의 결과
            • (1) 홍경래 난 전후 향촌지배세력의 변동
            • (2) 반봉기군 ‘의병’의 향권 장악
            • (3) 서북민항쟁의 역사적 의의
        • 2. 삼남지방의 민중항쟁
          • 1) 사회경제적 배경과 정치적 여건
            • (1) 사회경제적 배경
            • (2) 정치적 여건과 지방사회의 운영
          • 2) 항쟁의 과정과 양상
            • (1) 항쟁의 발생 지역
            • (2) 항쟁의 직접적 계기
            • (3) 항쟁의 전개과정
            • (4) 항쟁의 참가층과 주도층
            • (5) 항쟁조직
            • (6) 요구조건
            • (7) 공격대상
          • 3) 정부의 대책과 항쟁의 의미
            • (1) 농민항쟁에 대한 정부의 대응
            • (2) 삼정에 대한 대책
            • (3) 이정책에 대한 반대 논의와 저항
            • (4) 농민항쟁의 평가
        • 3. 변란의 추이와 성격
          • 1) 변란과 민란
          • 2) 변란발생의 배경
            • (1) 사회적 모순의 심화와 ‘저항적 지식인’의 활동
            • (2) ‘양이’의 침공과 ‘이단사상’의 만연
          • 3) 변란의 추이
            • (1) 19세기 전반의 변란
            • (2) 해서, 영남세력의 변란
            • (3) 광양란
            • (4) 이필제란
            • (5) 기타
          • 4) 변란의 성격
            • (1) 변란의 조직과 운동구조
            • (2) 변란의 이념
            • (3) 변란과 19세기 후반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3. 민중운동의 사상적 기반

1) 성리학에 대한 사상적 도전

(1) 성리학의 교조화

 조선 후기의 사회는 농업 생산력의 진전을 기본 동력으로 하여 사회 전분야의 변동이 촉진되었다. 그 결과 봉건체제의 모순이 더욱 드러났고, 이러한 모순을 타파하려는 民衆運動이 두드러졌다.

 정치적으로는 숙종 때의 환국 정치기를 거쳐 영조·정조 때의 탕평기로 접어들었다고 하나, 정치집단 내부의 대립과 갈등은 상존하였다. 사회경제적으로는 농업 생산력의 향상으로 농민층 분화가 촉진되었으며, 상품화폐경제가 발달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신분제의 동요로 이어지면서 여러 사회세력이 성장할 수 있는 토대로 작용하였다. 사상적으로는 성리학의 지배이념이 강화되는 가운데서도 實學을 표방한 새로운 움직임이 활발해졌고, 아울러 鄭鑑錄이나 彌勒信仰 등 民衆思想이 확산되었다.

 이러한 사회변동의 여러 모습은, 중세봉건체제를 유지, 강화하려는 지배층의 움직임으로 나타났고, 반면에 이같은 모순구조를 극복하고 타파하려는 민의 저항, 즉 민중운동을 수반하였다. 이러한 민중운동은 정치·경제·사회·사상의 여러 변동 양상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일어났다.

 조선 후기의 민중운동은 크게 두 갈래의 형태로 전개되었다. 하나는 향촌사회에 근거하여 일어난 民亂, 즉 농민항쟁이며, 다른 하나는 정감록과 같은 민중사상을 기반으로 일어난 變亂이다. 이 때 민란 형태의 민중운동에서는 민중사상과의 관련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를테면 민란 형태 민중운동의 정형으로 일컫는 ‘1862년 농민항쟁’의 경우에도 민중사상과의 연관성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반면에 변란 형태 민중운동의 가장 큰 특징은 민중사상을 그 저항운동의 기반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요컨대 민중운동의 사상적 기반이나 특성이라고 했을 때, 그것은 대부분의 경우에 ‘민중운동=변란’이라는 등식에서 파악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조선 후기 민중사상에 대한 이해 없이는 민중운동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

 조선 후기의 민중사상은 단순히 민중 속에 널리 퍼져 있는 사상이 아니라, 민중의 이익을 옹호하려는 사상이다. 민중사상은 곧 성리학의 지배이념에 반대하여 민중의 입장을 대변하는 논리체계이다. 그러므로 이 때의 민중사상은 민중운동을 논리적으로 받쳐주고 나아가 그 저항을 이끌어가는 적극적 의미로서, 정체되어 있는 개념이 아니라 민중의 변혁욕구를 수렴하여 그들의 저항의지를 북돋아주는 동적인 개념이다.

 조선 후기의 민중사상에 대한 이해는 조선사회의 지배이념인 성리학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한다. 성리학은 조선왕조가 공식으로 채택한 유일한 종교요, 사상이다. 그러므로 성리학은 정치·경제·사회 등 국정 전반의 지배질서를 구축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지배층은 공식적 활동은 물론이고 개인적 생활까지 성리학의 틀 속에서 수행하려 했다. 더욱이 정부에서는 일반 민중의 생활까지도 성리학의 틀 속에서 아우르려고 했다.

 조선시대의 성리학은 학자들의 연구와 자체의 여러 논쟁과정을 거치면서 더욱 발전하였으며, ‘正學’으로 자리잡았다. 그 가운데에서도 李滉과 李珥 등의 이른바 ‘四端七情’ 논쟁은 성리학의 수준을 한 차원 끌어올렸으며, 이후 성리학 연구를 더욱 심화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조선 후기에 들어와 사회변동이 촉진되면서 18세기 이후에는 성리학도 뚜렷한 변화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18세기의 성리학은 16세기 이래의 사단칠정 논쟁을 계속하면서 이와 함께 인간과 사물의 본성이 같은가 다른가 하는 이른바 ‘人物性同異論’을 놓고 보다 발전된 형태의 철학적 논쟁을 벌였다. 이는 조선 후기 성리학자들이 주자의 이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아니하고, 이를 비판적으로 재검토하여 독자적 철학체계로 발전시켜 나가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논쟁에는 중세적 인간상이 형태를 달리하여 강조되고 있었을 뿐, 근대적 세계관에 대한 이해는 없었다.076) 더욱이 이러한 유형의 논쟁은 성리학의 사변적·관념적 경향을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성리학의 주체로서 정부 당로자를 포함한 지배층은 사회변동이 촉진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물적 토대를 비롯한 기존의 여러 특권을 지켜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들이 기득권을 지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중세적 지배질서를 유지, 강화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교화라는 이름으로 성리학적 지배이념, 즉 성리학의 사회윤리를 민중에게까지 보급하고 이를 통하여 중세적 지배질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려고 하였다. 성리학적 사회윤리의 내용은 성리학의 인성론과 명분론에 근거를 둔 三綱五倫, 곧 人倫으로 요약된다. 조선사회의 지배층은 삼강오륜의 인륜을 불변의 진리, 곧 하늘의 이치에 따라 분수를 다하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따라서 인륜은 실천도덕으로 생활화되고 관념화되어 오히려 법조항보다 앞서는 보편적 질서의 기틀이 된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회윤리의 보급이야말로 민중을 가장 효율적으로 아우를 수 있는 수단이었다.

 이러한 방안 가운데서도 각종 성리학 윤리서의 간행, 보급은 그 대표적 예이다. 정부에서는≪朱子家禮≫와≪小學≫을 비롯하여≪孝經≫·≪五倫行實圖≫·≪東國新續三綱行實圖≫등 인륜과 관련된 서적들을 간행하고 보급하였다. 더욱이 이 때는 이미≪小學諺解≫·≪家禮諺解≫등 諺解本 윤리서가 보급되어 있었다. 이러한 작업은 민중을 성리학 사회윤리의 틀 속으로 끌어들이는 효율적 방안으로 기능했다. 또한 정부에서 충신·효자·열녀 등을 기리는 旌閭를 시행하고 있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요컨대 정부의 이러한 정책은 민인들에게까지 성리학적 통치질서의 수용을 강제한 것으로, 정부의 대민 통제책의 일환이다.

 이와 같이 정부에서는 성리학적 사회윤리의 보급과 같은 방법으로 지배체제의 강화를 시도하였으나 향촌사회는 결코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없었다. 이는 정부의 정책이 사회변동의 가속성을 따라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생산력의 총체적 수치는 증가되었다고 하나 그 혜택의 대부분은 지주들에게 돌아갔을 뿐이고, 부농으로 성장한 자영농은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이에 많은 농민들은 토지로부터 이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결과 숙종 37년(1711)에는 전라도에서 대량의 유민이 발생하였는데, 무안에서만도 5천호 가운데 2천호가 유민화할 정도였다.077) 숙종 43년에는 충청도에서 10만 명이 유민이 발생하였고,078) 경상도에서도 영조 9년(1733)에 약 17만 명의 유민이 발생하였다.079) 이처럼 피폐한 향촌사회의 현실에서 성리학적 지배체제를 강화하려는 시도는 적지 않은 부작용을 낳았다. 지배층은 사회윤리의 보급을 표방하였지만, 그 이면의 목적은 민중에 대한 경제수탈을 효율적으로 해내려는데 있었다. 따라서 정부의 지배체제 강화 시도는 향촌사회 안팎에서 민중의 저항을 불러왔다.

 아울러 성리학은 공리공담과 형식에 치우치는 경향이 심해져 점차 관념화, 사변화되어 갔을 뿐 아니라, 교조주의로 흐르고 있었다. 그리하여 오로지 성리학만을 ‘正學’으로 내세우고 그 나머지는 어떠한 사상이나 이념과 종교도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에서는 西學, 즉 天主敎는 물론이고 기존의 佛敎, 道敎, 圖讖을 左道나 邪學·異端 등으로 배격하였을 뿐 아니라, 유교의 일파인 陽明學까지도 이단으로 파악하며 성리학의 유일화에 힘을 쏟았다. 이러한 현상은 필연적으로 사상의 停滯를 가져왔다.

 이에 성리학의 정체성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사상체계가 요구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사회변동의 가속화’라는 현실문제와 연결되면서 그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졌다. 이미 교조화의 경향을 띠고 있던 성리학의 사상체계로는 이러한 여러 변화를 수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현실개혁에 필요한 사상체계가 요구되었고, 이것이 곧 ‘實學’이다.

 실학사상은 정치권력에서 배제된 근기지방의 남인들을 중심으로 형성되기 시작하여 그 수용 범위가 넓어져 갔다. 그들은 기존의 성리학 연구를 답습하는 것에서 벗어나 그것을 비판하고 개혁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先秦儒學에서 그 대안을 찾고자 하였다. 이러한 사상적 경향이 현실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와 연결됨으로써 ‘실학=개혁사상’의 논리가 성립할 수 있었다.

 실학은 성리학이 조선왕조 지배이념으로서의 한계가 더욱 분명해지고 있던 상황에서, 체제 속에서 현실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실학자들의 현실문제의 해결 의지와 방법론은 이른바 ‘체제 속의 개혁’이었다. 이것은 실학사상이 유학적 틀 속에서 이루어졌으며, 탈성리학을 표방하였으나 성리학을 부정하지 못한 사상적 제약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요컨대 실학자들은 성리학을 비판하고 그 틀에서 벗어나려 했을 뿐이고, 그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실학사상은 처음부터 ‘민중사상’으로 부를 수 없는 한계를 그 자체로 갖고 있었다. 실학은 민중의 이익을 대변했다고는 하나 그것은 단편적이었다. 따라서 사회변동이 촉진되는 과정에서 보다 민중의 정서에 맞는 민중사상의 확산은 불가피하였다.

076)趙 珖,<朝鮮後期 思想界의 轉換期的 特性-正學·實學·邪學의 對立構圖->(≪韓國史 轉換期의 문제들≫, 지식산업사, 1993), 155∼156쪽.
077)≪備邊司謄錄≫611책, 숙종 37년 2월 20일.
078)≪肅宗實錄≫권 59, 숙종 43년 3월 계해.
079)≪英祖實錄≫권 34, 영조 9년 10월 신묘.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