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조선 시대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Ⅲ. 19세기의 민중운동1. 서북지방의 민중항쟁1) 사회경제적 특성과 항쟁의 배경(1) 서북지방의 사회·경제적 특성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1. 신분제의 이완과 민중사회의 성장
          • 1) 사족지배구조의 정착과 신분구조의 변화
          • 2) 17세기 위기 이후 대민 지배정책의 전환
            • (1) 국가의 대민 지배방식의 전환과 ‘여민휴식’정책의 철회
            • (2) 공동납체제로의 전환과 18∼19세기 호적 운영의 변화
          • 3) 사족지배질서의 동요와 민중의 성장
        • 2. 민중의 사회적 결속
          • 1) 공동체 질서와 민중
          • 2) 18세기 향촌공동체의 변화와 민중조직의 활성화
            • (1) 면리제의 강화와 민
            • (2) 동계의 변화와 분동
            • (3) 민중조직의 활성화
          • 3) 19세기 민중의 사회적 결속
            • (1) 향회의 활용
            • (2) 민중조직과 농민항쟁
        • 3. 민중운동의 사상적 기반
          • 1) 성리학에 대한 사상적 도전
            • (1) 성리학의 교조화
            • (2) 민중사상의 확산
          • 2) 민중운동의 사상적 특성
            • (1) 민중운동 속의 사상경향
            • (2) 민중사상 전파의 주체
            • (3) 정부의 대응책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1. 사회경제적 배경과 정치적 과제
          • 1) 민중세계의 각성
          • 2) 유대관계의 강화
          • 3) 향권의 추이
          • 4) 사회세력의 동향
        • 2. 유민과 명화적
          • 1) 유민
            • (1) 유민발생의 배경
            • (2) 유민의 실태와 유입처
            • (3) 정부의 유민대책
          • 2) 명화적
            • (1) 명화적 발생의 배경과 조직체계
            • (2) 활동양상과 그 성격
            • (3) 정부의 대책
        • 3. 여러 지역의 항쟁과 ‘무신란’
          • 1) 18세기 초 민중의 동향과 변산군도
          • 2) 무신란의 발단과 전개
            • (1) 18세기 초 정치정세와 ‘무신당’의 결성
            • (2) 무신당의 반정계획과 지방토호·녹림당의 가세
            • (3) 무신란의 전개와 향촌사회의 동향
            • (4) 무신란의 참가계층과 그 성격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1. 서북지방의 민중항쟁
          • 1) 사회경제적 특성과 항쟁의 배경
            • (1) 서북지방의 사회·경제적 특성
            • (2) 매향과 향권의 동향
            • (3) 중앙권력의 구조적 수탈
          • 2) 항쟁의 과정
            • (1) 서북민의 저항과 홍경래 난의 발발
            • (2) 홍경래 난의 전개과정
          • 3) 항쟁의 결과
            • (1) 홍경래 난 전후 향촌지배세력의 변동
            • (2) 반봉기군 ‘의병’의 향권 장악
            • (3) 서북민항쟁의 역사적 의의
        • 2. 삼남지방의 민중항쟁
          • 1) 사회경제적 배경과 정치적 여건
            • (1) 사회경제적 배경
            • (2) 정치적 여건과 지방사회의 운영
          • 2) 항쟁의 과정과 양상
            • (1) 항쟁의 발생 지역
            • (2) 항쟁의 직접적 계기
            • (3) 항쟁의 전개과정
            • (4) 항쟁의 참가층과 주도층
            • (5) 항쟁조직
            • (6) 요구조건
            • (7) 공격대상
          • 3) 정부의 대책과 항쟁의 의미
            • (1) 농민항쟁에 대한 정부의 대응
            • (2) 삼정에 대한 대책
            • (3) 이정책에 대한 반대 논의와 저항
            • (4) 농민항쟁의 평가
        • 3. 변란의 추이와 성격
          • 1) 변란과 민란
          • 2) 변란발생의 배경
            • (1) 사회적 모순의 심화와 ‘저항적 지식인’의 활동
            • (2) ‘양이’의 침공과 ‘이단사상’의 만연
          • 3) 변란의 추이
            • (1) 19세기 전반의 변란
            • (2) 해서, 영남세력의 변란
            • (3) 광양란
            • (4) 이필제란
            • (5) 기타
          • 4) 변란의 성격
            • (1) 변란의 조직과 운동구조
            • (2) 변란의 이념
            • (3) 변란과 19세기 후반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1. 서북지방의 민중항쟁

1) 사회경제적 특성과 항쟁의 배경

(1) 서북지방의 사회·경제적 특성
가. 서북지방의 사회사정

 星湖 李瀷은 “關西는 우리 나라 인민이 처음 시작된 곳이나, 聖朝에서 殷頑과 같이 여겨 물리쳐버렸으므로 인재가 꺾였다”443)고 하였고, 李重煥도 서북지방에 사대부, 즉 사족이 없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태조가) 나라를 창건하고는 ‘서북지방 사람은 높은 벼슬에 임용하지 말라’는 명을 내렸다. 그런 까닭으로 평안·함경 두 도에는 삼백 년 이래로 높은 벼슬을 한 사람이 없다. 혹 과거에 오른 자가 있다 하여도 벼슬이 수령 정도였고, 가끔 臺諫과 侍從 망단자에 오른 자가 있었으나 또한 드물었다. … 또 나라 습속이 문벌을 중하게 여겨서 서울 사대부는 서북지방 사람과 혼인하거나 벗하지 않았다. 서북 사람도 또한 감히 서울 사대부와 더불어 동등으로 여기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서북 양도에는 드디어 사대부가 없게 되었다(李重煥,≪擇里志≫八道總論 咸鏡道).

 이와 같이 서북지방은 중앙정부의 정치적 차별로 인하여 관직 진출이 어려웠기 때문에 사족층은 형성될 수 없었고 설사 사족이 있다 하더라도 지배세력을 형성할 만한 양적 수준을 이룰 수는 없었다. 따라서 “西土는 진정으로 토착적 기반이 있는 士夫가 없고 다만 군포를 납부하는 자와 불납하는 자 사이에 약간의 구별이 있을 뿐이다”444)라고 하듯 사족적 기반이 뚜렷하지 않았다.

 한편 ‘儒’와 ‘鄕’ 즉 士族과 鄕品의 구분은 사족지배체제 내의 지배계층의 존재양태를 설명하는 주요한 기준이 되고 양자의 향권을 둘러싼 갈등은 체제의 유지와 동요를 결정하는 계기로 설명되고 있다.445) 그런데 이와 같은 유향의 분기도 서북지방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다.≪龍城誌≫에 따르면 유임을 지낸 자는 향임에 나갈 수 있으나 향임을 지낸 자가 유임에 들어오는 것은 격례에 크게 어긋난다고 하여 경계를 정해야 한다고는 하였지만, 그것은 다만 이상적인 원칙일 뿐 실제로 儒와 鄕은 나누어지지 않았고 그것이 이 지역의 옛부터의 풍속이라고 지적되고 있었다.446)

 이처럼 서북지방에는 사족의 존재가 뚜렷하지 않았다. 따라서 지배세력의 구성이 삼남지방의 사족지배체제와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사족이 없었던 서북지방에서 향권을 장악하고 있던 최고의 지배계층은 향인층이었다. 향권이란 궁극적으로 경제적 지배를 의미하고 향권의 행사는 부세운영권의 장악을 통해 실현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지역의 부세운영을 주도하던 계층은 향인층이었다. 따라서 향인층이 이 지역 최고의 지배계층인 셈이다. 그러면 향인층이 지배하는 서북지방 향권의 모습은 어떠한가. 이제 부세운영의 내용을 통해 향권의 성격을 살펴보기로 하자.

 평안도 지역의 부세운영의 특징은 ‘邊邑無王稅’447)란 표현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이는≪大典會通≫에 “서북의 稅穀은 본도에 놓아두고 함부로 옮기지 못하도록 한다”448)라는 규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즉 이 지역이 국가수세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는 뜻은 아니고 다만 그 수세의 최종적 주체가 중앙정부가 아니고 지방관아였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서북지방은 세는 거두지만 그 양이 적을 뿐 아니라 그것이 중앙정부로까지 올라오지 않고 자체 처리되고 있었다. 중앙재정과의 관계에서 상대적인 독립성이 국가수세의 집중적 대상이었던 삼남지방에 비하여 서북지방의 부세운영을 근본적으로 다르게 한 일차적 원인이었다.449) 더구나 앞서 보았듯이 이 지역에는 사대부가 살지 않기 때문에 사대부가 사적으로 운송하는 것도 거의 없었다.450) 따라서 사족의 향권에 대한 간섭은 본래부터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지역에서의 부세운영권 즉 향권은 향임층이 잡고 있었으며 향임층은 이서층과는 부세운영에서 상하의 수직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부세행정에서 향임층의 역할은 거의 절대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향임층 곧 향인층이 어떻게 부세조직을 장악하여 운영하고 있었는가는 江界府의 功曺所 운영에 잘 나타나 있다. 숙종 18년(1692) 부사 裵正徽 때 작성된 규정에 따르면 공조소의 임원 및 그 담당업무는 다음과 같았다.

座首 1인은 禁蔘都監을 겸하고 各倉·軍器·常平·六房 및 제반 邑事를 관장한다. 別監 3인 중 1인은 官廳·禮房 등을, 1인은 府倉·兵房·刑房·司獄 등을, 1인은 營繕·工房·田案 등을 각각 담당한다. 다만 지금은 전안의 경우 例兼을 罷하고, 都監을 따로 정하되 좌수를 거친 부류 가운데에서 擬望하여 差出한다(≪七郡圖經≫江界誌 功曺所(≪朝鮮時代私撰邑誌≫55, 平安道篇 11, 62쪽).

 여기서 좌수와 별감이 부세행정 전반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좌수와 별감의 차출 규정을 보면, 좌수는 향사당 執事가 좌수를 望報하는데 鄕先生에게서 추천을 받은 후 時任鄕長 및 都公司員과 상의하여 차출토록 하였다. 별감은 좌수가 망보하는데 역시 鄕執事가 향선생의 추천을 받은 후 향장 및 도공사원이 재결하여 首·副·末·從으로 순서를 정한 망단자를 공조소로 이송하면 공조소는 官家에 轉報하여 차출하도록 규정하였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좌수의 차출은 전적으로 향인층의 자율적 결정에 따르고 있으며, 별감의 경우만 부분적으로 지방관의 통제를 받아 차출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이 좌수와 별감이 일읍의 부세행정을 모두 관장하고 있었다. 이처럼 부세권을 조직적으로 확고히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향인층은 거의 절대적인 향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사족이 거의 없었던 서북지방의 최고의 지배계층은 바로 이 향인층이었다. 丁若鏞이 田政 운영으로 井田九一法에 다음가는 좋은 법으로 들고 있는 이른바 ‘西北之法’451) 역시 이서층보다는 마을의 호걸로 표현되는 향인층에 의한 부세운영방식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더구나 “남쪽지방의 아전들은 교만하고 사치하고 방자하여 아전 자리를 대대로 전하는 일이 드물어서 오히려 북쪽의 아전이 그 자리를 오래 지키는 것만 같지 못하니 역시 아전에게도 복된 일이 아니다”452)라고 하여, 아전 즉 이서층이 향인층의 통제 아래 부세운영에 종속적으로 참여하여야 할 뿐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이서층 스스로에게도 좋다고 하였다. 鄕人-吏胥의 계서적 관계가 서북지방의 부세조직의 특징이며 이는 향촌지배의 바람직한 질서로 이해되고 있었다.

 이러한 지역적 특성을 갖는 서북지방의 지배질서 곧 향인층에 의한 지배질서는 16세기 중반경 율곡향약의 시행을 계기로 서북지방 일대에 자리잡기 시작하였고, 특히 평안북도 지역은 임진왜란 때의 군공을 계기로 그들을 중심으로 확고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그러다가 18세기 중엽을 고비로 그 때까지 약 200여 년간 유지되어 왔던 향인들의 지배질서에 동요가 나타났다. 즉 영조 35년(1759)에 도신 閔百祥이 그 폐단을 지적하여 新鄕의 許錄을 금지시켰다는 것은 그 동요의 증거였다. 新鄕許錄의 금지에 따라 ‘鄕廳’이란 이름도 혁파되었다. 더구나 정조 14년(1790) 정주에서의 新鄕濫錄의 일, 이른바 정주매향사건으로 인하여 용천부의 鄕錄은 벽 속에 넣어 봉해버리고 감히 追錄하지 못하게 하였다.453) 정주의 향사당도 신향들의 紛拏 때문에 營門의 分付에 따라 혁파되었다.454) 다만 그 후 순조 2년(1802)에 의주의 경우, 부윤 任焴에 의해 향사당이 개건되었고, 이와 같은 내용이 기록된 읍지≪龍灣誌≫가 순조 10년에 간행되었으며, 정조 20년(1796)에 간행되는≪龍城誌≫에서는 향록이 봉해진 후 기존의 鄕班들이 ‘留鄕先生案’이란 것을 읍지에 신설하여 향안에 대신하려고도 하였다.455) 이는 기존의 향인층이 신향의 성장에 따라 상실하여 가던 그들의 지배력을 명분적으로나마 만회해보려는 시도들이었다. 그러나 18세기 중엽을 지나면서 신향층에 의한 향촌질서의 재편은 되돌릴 수 없는 추세로 진행되어 나갔다. 다만 신향층의 성장에 따른 향권의 동요는 이들에 의한 지배질서가 정립되는 과정에서 洪景來亂을 일으키게 되었고, 난이 실패로 끝난 결과, 향권의 주도세력이 전면적으로 재편됨에 따라 또 다른 변동을 겪게 되었다.

443)李重煥,≪擇里志≫星湖 李瀷 序.
444)金祖淳,≪楓皐集≫권 10, 書, 上金領相載瓚.
445)金仁杰,<朝鮮後期 鄕權의 추이와 지배층 동향>(≪韓國文化≫2, 1981).
446)≪龍城誌≫(≪朝鮮時代 私撰邑誌≫51, 平安道篇 7, 韓國人文科學院) 古今事蹟, 219쪽.
447)≪正祖實錄≫권 45, 정조 20년 8월 임진.
448)≪大典會通≫戶典 收稅.
449)高錫珪,<18세기 말 19세기 초 평안도지역 鄕勸의 추이>(≪韓國文化≫11, 1990), 346∼347쪽.
450)李重煥,≪擇里志≫ 卜居總論 生利.
451)西北之法에 대해서는 고석규의 앞의 글, 349∼350쪽 참조.
452)≪牧民心書≫戶典 稅法.
453)≪龍城誌≫(≪朝鮮時代私撰邑誌≫51, 平安道篇 7) 留鄕, 158∼160쪽.
454)≪定州邑誌≫(≪朝鮮時代私撰邑誌≫48, 平安道篇 4) 公署, 286쪽.
455)≪龍城誌≫ 留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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