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1. 개화사상의 형성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1. 19세기 중반기의 동아시아 정세
          • 1) 한·중·일의 정세
            • (1) 화이사상과 중국의 조공제도
            • (2) 조선왕조와 청조:청한 종속관계
            • (3) 조선왕조와 일본:‘교린’관계
            • (4) 화이질서하의 한국과 일본
          • 2) 서세 동점과 동아시아 제국
            • (1) 서방제국의 동방진출
            • (2)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동방진출
            • (3) 일항 무역:전통적 동서무역 제도
            • (4) 화란과 영국의 진출
            • (5) 중영 무역의 변천:차에서 아편으로
          • 3) 동서 신국제관계의 성립:불평등조약 체제
            • (1) 중영 아편무역 분쟁
            • (2) 중영 개전과 남경조약의 체결
            • (3) 애로우전쟁과 천진조약 및 북경협정
          • 4) 일본의 개항과 미국
        • 2. 구미 열강의 통상요구
          • 1) 러시아의 통상요구
          • 2) 프랑스의 통상요구
          • 3) 영국의 통상요구
          • 4) 미국의 통상요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1. 개화사상의 형성
          • 1) 개화사상의 형성과 배경
          • 2) 개화사상의 형성
          • 3) 1866년 개화사상 비조들의 활동
          • 4) 최초의 개화사상
        • 2. 동학의 창도와 동학사상
          • 1) 동학 창도의 배경
          • 2) 동학의 창도 과정
          • 3) 동학사상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1. 흥선대원군의 집권
        • 2. 대원군의 내정 개혁
          • 1) 대원군의 인재등용
          • 2) 서원 철폐와 경복궁 중건
          • 3) 재정, 군사제도의 개혁
          • 4) 민란 대책
        • 3. 대원군의 대외정책
          • 1) 러시아의 남하 방어책
          • 2) 천주교 탄압:병인사옥
          • 3) 병인양요와 대응책
          • 4) 신미양요와 대응책
          • 5) 대일 강경책
        • 4. 대원군 정치의 성격과 의의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1. 강화도조약과 개항
          • 1) 조약체결 전의 국내외정세
            • (1) 메이지유신과 일본의 조선정책
            • (2) 고종친정과 대외정책
          • 2) 강화도조약의 체결
            • (1) 운요호사건과 조선정부의 대응
            • (2) 조일수호조규의 내용과 성격
          • 3) 개항 이후 조선정부의 대내외정책
            • (1) 수신사파견과 개화정책의 모색
            • (2) 조일수호조규 부록 및 통상장정
        • 2. 개항 초기의 조청관계
          • 1) 청국 북양대신 이홍장의 서양 각국과의 수교권고
          • 2) 제2차 수신사의 파견과 주일청국사절의 연미론
        • 3. 조미조약의 체결
          • 1) 조·청·미 3국의 조미조약 체결 교섭과 속방조관
          • 2) 조미조약의 성립과 속방조회
        • 4. 유럽 각국과의 조약체결
          • 1) 한·영 수호통상조약의 체결
          • 2) 한·독 수호통상조약의 체결
          • 3) 한·러 수호통상조약의 체결
          • 4) 한·불 수호통상조약의 체결
          • 5) 기타 유럽국가들과의 조약체결
        • 5. 개항의 역사적 의의
          • 1) 강화도조약과 자본주의 세계체제
          • 2) 불평등조약체제의 수립과 그 영향
          • 3) 초기 개화정책의 추진배경과 그 성격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1. 개화사상의 형성

1) 개화사상의 형성과 배경

 구미 열강이 18세기 중엽 동아시아에 침투하여 무력으로 위협하면서 불평등조약에 의거하여 중국과 일본을 개항시킨 것은 조선왕조의 선각자들에게도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하였다. 특히 중국(淸)이 영국과의 아편전쟁(1840∼1842)에서 패배하여 굴욕적인 南京條約(1842)을 체결하고 5개 항구를 개항했을 뿐만 아니라, 천문학적 숫자의 배상금을 지불하고 영국인에게 치외법권까지 인정한 사실은 중국의 선각적 지식인들을 위기의식 속에 몰아넣었음은 물론이오, 조선의 선각적 지식인들에게 점차 알려지기 시작하여 중국이 당면한 사태에 우려의 관심을 갖게 하였다. 이에 대한 반응으로 중국의 남방에서는 洪秀全이 1850년에 ‘太平天國 농민혁명운동’을 일으켜 淸왕조 타도의 반란을 전개하기 시작하였는데, 이 소식도 점차 조선왕조의 선각적 지식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1856년 10월에 ‘애로우(Arrow)호 사건’이 일어나, 영국과 프랑스의 동양함대는 연합해서 중국을 공격하여 廣東을 점령하고 天津을 공격하였다. 중국은 이 서양의 무력에 굴복하여 天津條約(1858)을 체결해서 다시 천진을 비롯한 10개 항구와 楊子江을 서양 열강에게 개항하기로 약속하였다. 청국이 이 조약의 비준과 실행을 지연시키려고 하자 영국·프랑스 연합군은 다시 무력 공격을 시작하여 1860년 7월에는 천진을 점령하고, 8월에는 중국의 수도 北京을 점령하여 버렸다. 청국황제는 熱河로 피란을 가고, 청국은 또다시 서양 열강의 무력 침략 앞에 굴복하여, 1860년 9월 ‘北京條約’을 체결하여 영국·프랑스 연합군을 북경에서 겨우 철수시켰다. 북경조약의 주요 내용은 ① 天津의 개항, ② 九龍半島의 할양, ③ 배상금 1,600만 달러의 지불, ④ 서양인들에게 천주교(서학) 포교의 완전한 자유와 교회당 설립 자유의 허용, ⑤ 서양 신부들에게 토지·가옥의 건축 또는 임대차 자유의 허용, ⑥ 서양인에 의한 중국인 노동자(coolies:苦力)의 모집과 해외 송출의 허용 등이었다. 이것은 매우 굴욕적인 패자의 강화조약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 기회를 포착하여 북방으로부터 위협을 가하는 제정 러시아의 요구에 중국(청)은 굴복해서 1858년에는 러시아와 ‘아이훈(愛琿)조약’을 체결하여 黑龍江 이북의 시베리아 영토를 러시아에 할양해 주었으며, 또한 1860년에도 러시아와 또다른 ‘북경조약’을 체결하여 沿海州를 러시아에 할양해 주었다. 그 결과 조선왕국은 1860년부터 이전에 알지 못했던 러시아와 국경을 접한 나라가 되었다.

 한편 일본은 18세기에 들어온 이래 서양 열강으로부터 통상조약체결과 개국 압력을 받으면서 이를 거절해 오다가 1853년 7월 미국의 페리(M. C. Perry)가 지휘하는 군함 4척의 함포위협을 받고 결국 굴복하여 1854년 3월 미국과 제1차 화친조약을 체결하고 2개 항구의 개항을 시작하였다. 뒤이어 1856년 8월에는 미국과 불평등조약의 내용을 가진 ‘미·일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함으로써 6개 항구를 추가 개항하고 전면적 개국 단계에 들어갔다. 일본은 1854∼56년의 기간에 서양각국과의 통상무역에서 무역적자가 대규모로 누적되자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1830∼1859)을 중심으로 한 사무라이 일부에서 “서양과의 무역에서 손실받은 것은 조선을 정복하여 조선의 금·은·물산의 이익을 취하여 메꾸자”는 ‘征韓論’이 대두하여 교육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조선왕조의 지식인들과 관료들은 조선과 중국의 이웃관계를 이와 입술의 관계로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입술인 중국의 몰락이나 멸망은 이빨인 조선의 이를 시리게 만든다고 보고 있었다. 조선의 조정과 일부 관료들이 세계에서 가장 강대한 나라라고 생각했던 중국이 서양 열강의 총력도 아닌 두 나라 동양함대의 공격 앞에 수도 北京을 점령당하고 청국 황제가 熱河로 피란가는 형편을 보고, 조선 조정은 경악하여 1861년 1월에 위문사절단을 파견하는 형편이었다.066)

 중국이 서양의 무력 앞에 무력하게 굴복하여 수도 북경이 점령당했다는 사실은 곧 서양의 무력이 조선에도 닥쳐와 공격을 시작할 것이고, 이어서 이윤축적을 위한 불평등통상조약의 체결이 강요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또한 조선왕조와 한국민족이 만일 이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실패하는 경우에는 열강의 강대한 침략의 힘에 의해서 나라가 식민지 또는 반식민지로 떨어지게 되는 ‘민족적 위기’를 바로 맞게 되었음을 예고해 주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 시기에 조선왕조의 전근대 사회체제는 안으로도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양반관료들은 자기들이 제정한 국가의 법률과 제도도 준수하지 않고 농민들에 대한 가렴주구를 강화하여 이른바 ‘三政의 문란’이 극도에 달해 있었다. 이에 대항하여 농민들과 양인·천민의 하위신분층은 가렴주구 폐지와 양반신분제도 폐지를 요구하면서, 19세기에 들어와서는 연이어 ‘민란’까지 일으켰다. 예컨대, 1811년 ‘홍경래란’을 하나의 전환점으로 하여 그후 해마다 끊임없이 대소 규모의 ‘민란’이 일어나서 조선왕조의 북부지방에 대한 통치가 근저에서부터 흔들리게 되었다. 또한 예컨대, 1862년에는 ‘진주민란’을 비롯하여 전국 30여 개 군에서 ‘민란’이 일어나 조선왕조의 남부지방에 대한 통치가 근저에서부터 흔들리게 되었다. 그리하여 19세기는 가히 ‘민란의 세기’067)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민란들이 일어나면서 양반신분 사회체제의 개혁을 요구하게 되었다.

 만일 조선 조정과 한국민족이 내부에서 나온 이러한 아래로부터의 양반신분사회 개혁 요구를 흡수하여 실현하지 못할 때에는 서양 열강의 도전 앞에서 민족공동체가 분열될 위험이 내포되어 있었다. 조선왕조의 전근대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의하여 조성된 이 위기는 한국민족이 18세기 중엽에 맞은 전근대사회의 ‘체제적 위기’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었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18세기 중엽에 한국민족은 이러한 ‘민족적 위기’와 전근대사회의 ‘체제적 위기’를 중첩하여 맞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한국민족은 자기 나라의 자주독립을 지키면서 세계의 다른 나라 사람들과 대등하게 공존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민족적 위기’와 ‘체제적 위기’를 동시에 중첩하여 해결해야 할 과제에 직면하게 된 것이었다.

 19세기 중엽 조선왕조 사회에서 선각적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민족적 위기’와 ‘체제적 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서양 열강의 침투 압력 속에서도 이러한 중첩된 위기를 타개하고 도전해 오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새로운 사상들이 형성되었다. 그 대표적인 3대 사상이 널리 아는 바와 같이 ① 개화사상, ② 동학사상, ③ 위정척사사상이었다.

066)≪哲宗實錄≫권 13, 철종 12년 정월 정미.
067)愼鏞廈,<1894년의 社會身分制의 폐지>(≪奎章閣≫9, 서울大, 1985;≪韓國近代社會史硏究≫, 一志社, 1987, 99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