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Ⅴ. 갑신정변3. 갑신정변의 전개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1. 개화파의 형성과 활동
          • 1) 개화파의 형성
          • 2) 개화파의 분화
          • 3) 개화파의 활동
            • (1) 통리기무아문의 설치(1880)
            • (2) 일본국정시찰단(신사유람단)의 파견(1881)
            • (3) 영선사(병기학습 유학생사절단)파견(1881)
            • (4) 신식 육군(별기군)의 창설(1881)
            • (5) 기무처의 설치(1882)
            • (6) 감생청의 설치(1882)
            • (7) 대외적 균세정책의 실시(1882)
            • (8) 해관의 설치(1882∼1883)
            • (9) 근대학교의 설립(1883)
            • (10) 근대신문의 발간(1883)
            • (11) 근대적 산업시설의 대두와 고취
        • 2. 개화사상의 발전
          • 1) 동도서기론의 대두
          • 2) 온건개화파의 개화사상
          • 3) 급진개화파의 개화사상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1. 개화정책의 추진세력
          • 1) 고종의 개화의지
          • 2) 개화파의 형성과 활동
          • 3) 개화추진세력의 분화
        • 2. 신문명의 도입
          • 1) 일본시찰단의 파견
            • (1) 파견계획의 수립
            • (2) 고종의 밀명
            • (3) 어떤 인물들인가
            • (4) 일본시찰 활동
            • (5) 일본견문 보고서
            • (6) 일본을 보는 두 개의 눈-엇갈리는 진단과 평가
          • 2) 청국유학생(영선사)의 파견
            • (1) 사행의 교섭
            • (2) 사행준비와 출발
            • (3) 학습상황
            • (4) 유학생의 철수
          • 3) 미국시찰단의 파견
            • (1) 조미조약의 체결
            • (2) 조선보빙사의 미국파견 및 일정
            • (3) 조선보빙사 파견의 성과
        • 3. 제도의 개혁
          • 1) 정치·군사부문
            • (1) 정부기구의 개편
            • (2) 군사제도의 개혁
          • 2) 경제부문
            • (1) 농업기술의 도입과 상업적 농업의 진흥
            • (2) 상업의 보호와 수세정책
            • (3) 전환국의 설립과 신식 화폐주조
          • 3) 문화·교육·사회부문
            • (1) 박문국의 설치와≪한성순보≫·≪한성주보≫의 간행
            • (2) 서구식 근대교육의 수용
            • (3) 근대적 우정·전신·전기시설
            • (4) 근대 의료시설
      • Ⅲ. 위정척사운동
        • 1. 위정척사사상의 대두
          • 1) 위정척사사상의 대두
          • 2) 위정척사사상의 보급
            • (1) 위정척사사상의 정립
            • (2) 위정척사사상의 심화와 확산
        • 2. 위정척사운동의 전개
          • 1) 병자년의 위정척사운동
          • 2) 신사년의 위정척사운동과 척사·개화논쟁
        • 3. 위정척사운동의 영향과 의의
          • 1) 위정척사운동의 영향
          • 2) 위정척사운동의 의미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1. 임오군란
          • 1) 임오군란의 배경
            • (1) 서울의 사회경제 구조와 하층민
            • (2) 하급 군병의 성격과 군제개편
            • (3) 하층민의 저항운동
          • 2) 임오군란의 전개과정
            • (1) 운동의 발생과 확산
            • (2) 정치적 차원에서의 운동의 실현
            • (3) 외세의 개입과 운동의 좌절
          • 3) 임오군란의 영향
            • (1) 일본의 국내 사정과 대조선정책의 변화
            • (2) 청의 대조선정책의 변화와 영향력 확대
            • (3) 국내 상황의 변화
          • 4) 임오군란의 구조와 성격
            • (1) 참가층의 구성과 동원조직
            • (2) 공격 목표와 요구의 한계
            • (3) 정부 및 지배층의 대응
        • 2. 조선중국상민수륙무역장정과 조·청관계의 변질
          • 1) 조선정부의 대청통상정책
          • 2) 조선중국상민수륙무역장정 체결과 조·청관계의 변질
            • (1) 조·청통상협의
            • (2)<조선중국상민수륙무역장정>체결과 조·청관계의 변질
      • Ⅴ. 갑신정변
        • 1. 갑신정변의 배경
          • 1) 구미열강과의 외교
          • 2) 차관교섭
          • 3) 집권파와의 대립과 위기의식
        • 2. 갑신정변의 주도세력
          • 1) 정변의 핵심세력
          • 2) 정변의 행동대원
        • 3. 갑신정변의 전개
          • 1) 정변 주도세력의 목표
          • 2) 갑신정변의 준비
            • (1) 개화당의 정변 무력문제
            • (2) 정변 단행의 결정
            • (3) 북청군대의 상경과 일부 유경
            • (4) 일본공사관 호위용 일본군의 차병
            • (5) 국왕의 밀칙 획득
            • (6) 행동계획의 최종 정리
          • 3) 개화정권의 수립
            • (1) 1884년 10월 17일 밤의 거사
            • (2) 신정부의 수립
            • (3) 개화파 신정부의 혁신정강 공포
          • 4) 청국 및 일본의 개입과 정변의 실패
          • 5) 갑신정변 실패의 요인
        • 4. 갑신정변의 영향과 의의
          • 1) 갑신정변의 영향
            • (1) 수구파정권의 재수립
            • (2) 개화당의 몰락과 숙청
            • (3) 조선·일본의 교섭과<한성조약>의 체결
            • (4) 청국·일본의 교섭과<천진조약>의 체결
          • 2) 갑신정변의 역사적 의의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3. 갑신정변의 전개

1) 정변 주도세력의 목표

초기 개화파 중에서 1884년(고종 21) ‘갑신정변’을 일으킨 급진파 개화당의 목표는 당시 세계대세에 뒤떨어져서 열강의 위협을 받고 있는 조선왕국을 자주 부강한 근대국가로 건설하는 것이었다.789) 갑신정변 주도세력의 핵심인물의 하나였던 徐載弼은 갑신정변의 지도자 金玉均의 목표는 ‘조선도 힘있는 현대적 국가’로 만드는 것이었다고 다음과 같이 회고하였다.

金玉均은 현대적 교육을 받지 못하였으나 시대의 추이를 통찰하고 朝鮮도 힘있는 現代的 國家로 만들려고 절실히 바랐었다. 그리하여 신지식을 주입하고 신기술을 채용함으로써 정부나 일반사회의 奮鬪因習을 一變시켜야 할 필요를 확고히 깨달았다(徐載弼,<回顧甲申政變>, 閔泰瑗 著≪甲申政變과 金玉均≫, 1947, 82쪽).

갑신정변의 주도세력의 하나로 김옥균이 일본에 유학시킨 사관생도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김옥균은 사관생도들에게 “일본이 동방의 영국노릇을 하려 하니 우리는 우리 나라를 아시아의 불란서로 만들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서재필은 다음과 같이 회고하였다.

매 일요일이면 우리는 반드시 金玉均을 築地 寓居로 심방하였다. 그러는 때마다 그는 우리를 친동생과 같이 대접하고 숨김없고 남김없는 폐·간 속의 말을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祖國刷新에 대한 우리의 중차대한 임무를 말하는 동시에 나라에 돌아가 우리가 빛나는 대공훈을 세울 것을 믿어 마지아니하였다. 그리고 그는 늘 우리에게 말하기를, 日本이 東方의 英國노릇을 하려 하니 우리는 우리 나라를 亞細亞의 佛蘭西로 만들어야 한다고 하였다. 이것이 그의 꿈이었고 또 유일한 야심이었다. 우리는 김씨의 말을 신뢰하고 우리의 전도에 무엇이 닥쳐오던지 우리의 책임을 이행하고야 말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였던 것이다(윗점-인용자)(徐載弼,<回顧甲申政變>, 앞의 책, 84∼85쪽).

조국인 조선왕국을 ‘힘있는 현대적 국가’로 쇄신하고, 조선을 ‘아시아의 불란서와 같은 나라’로 만들어서 ‘외국의 침략’790)을 막아내려는 김옥균 등 개화당의 목표는 ‘임오군란’ 후 조선에 진주한 청군의 간섭과 방해로 달성이 어렵게 되었다. 임오군란 직후 청국은 3,000명의 군대를 조선에 파병하여 서울에 주둔시키고 집권자이며 국왕의 부친인 흥선대원군을 군함에 초청해 놓고는 그대로 납치하여 청국에 실어다가 保定府에 유폐해 버리는 만행을 자행하였다. 청국은 민비정권을 재수립해 놓은 다음에도 철군하지 아니하고 청군을 서울에 장기 주둔시킨 채 이 무력을 배경으로 허구의 종주권을 주장하면서 조선을 屬邦化하기 위한 적극 간섭정책을 자행하여 조선의 자주독립을 크게 침해하였다. 조선에 주둔한 청국 장수 吳長慶과 袁世凱는 병권을 장악하고 총판조선각국통상사무(재정고문)로 파견된 陳樹棠은 재정권을 장악했으며, 李鴻章이 파견한 묄렌도르프(Paul Georg von Möllendorff)는 해관을 장악했을 뿐아니라 외교까지 장악하려 하였다.

청국은 뿐만 아니라 김옥균을 중심으로 한 개화당의 개화운동이 궁극적으로 청국으로부터의 조선의 자주독립을 추구하는 운동이라고 보고 온갖 방법으로 개화당을 탄압하고 개화운동을 저해하였다. 그러므로 임오군란 이후의 개화정책은 청군의 탄압과 방해를 받아 가면서 추진된 것이었으며, 개화당으로서는 매우 불만족스러운 것이었다.

당시 임오군란에 의하여 정권이 한 번 붕괴되었다가 청국의 구원으로 재집권하게 된 閔妃守舊派들은 청국의 속방화정책에 순종하여, 나라의 독립이 크게 침해되고 자주근대화가 저지되는 것은 전혀 돌아보지 않고 일가일문의 사리사욕을 채우기에 급급하였다.

당시 청국이 조선의 독립을 얼마나 침해했는가의 몇 가지 사례를 들면, 청국은 임오군란 직후 민비정권에 압력을 가하여, 그 동안 조선왕조가 각국과 체결한 불평등조약들 중에서도 가장 불평등하고 청국의 특권을 일방적으로 허여한<朝中商民水陸貿易章程>을 1882년 8월 23일 체결하고, 그 前文에 조선을 청국의 ‘屬邦’이라고 문자로 써넣었다. 진수당은 방자하게도 ‘조선은 중국의 屬國’이라는 문귀를 넣은 방문을 공공연히 남대문에 써붙이기까지 하였다.791) 그는 강제로 한국인의 집을 사들이고자 하여 이에 항의한 正言 李範晋을 청군의 군영에 잡아다가 어지러이 매를 때리는 만행까지 자행하였다.792)

또한 청국조정은 조선조정에 대해 “무릇 外憂에 관한 일은 일체를 청국에 문의하라”793)고 지시했다. 청국 장수 오장경은 조선국왕에게 맞대놓고 “내가 3천 군대를 거느리고 여기에 와 있으므로 매사에 皇朝(청국)를 배반해서는 안된다”794)고 협박하였다. 그는 조선국왕에게 “내년 봄에는 청국의 군대가 증파될 것이라”795)고 위협하였다.

서울에 주둔한 청군의 행패도 극심하였다. 하나의 예만 들면, 청군이 광통교 부근의 한 약국에서 무료로 약품을 빼앗으려 하다가 약값을 요구하는 주인 최씨의 아들을 사살하고 최씨에게도 총을 쏘아 중상을 입혔다.796) 개화당 신문인≪漢城旬報≫가 이를 보도하자, 청군은 이를 보도했다는 이유로≪한성순보≫를 발행하는 통리기무아문의 博文局을 습격하기까지 하였다.797) 그러나 민비 수구파정권은 청군의 이러한 만행에 대해 항의조차 제대로 한 번 하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개화당은 임오군란 후의 청국의 이러한 속방화정책 및 만행과 개화정책에 대한 탄압에 대해 단호하게 저항하고 조선을 서양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자주부강한 근대국가로 만들고자 하였다. 서재필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그 때 김옥균의 생각은 무엇보다도 淸나라 세력을 꺾어버리는 동시에 그에 추종하는 귀족들의 세력을 빼앗은 후에 우리 나라의 完全自主獨立政治를 수립하자는 것이 그의 이상이었고 실현의 최고 목적이었다.

더욱이 淸나라에서 大院君을 납치했다는 것은 우리로서 참을 수 없는 수치라 하여 분개함을 참을 수 없어 그 세력구축과 귀족타파의 깃발을 둘러메고 나서려 한 것이다(金道泰 編,≪徐載弼博士自敍傳≫, 首善社, 1949, 86∼87쪽).

또한 사관생도로서 갑신정변에 참가했다가 후에 심문을 받은 申重模는 김옥균의 목표에 대해 당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따라서 김옥균으로부터 들은 바에 의하면, ‘서양 각국은 모두 독립국가이다. 어떠한 국가든지 독립한 연후에야 비로소 타국과 화친할 수 있는 것이다. 조선은 오직 청국의 속국이 되어 있는 바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朝鮮도 언젠가는 독립국가가 되어서 西洋諸國과 同列에 서야 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推案及鞫案≫324책, 大逆不道罪人喜貞等鞫案 중 申重模의 供述, 亞細亞文化社 영인판 30책, 588쪽).

서재필도 당시 김옥균의 사상과 목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동일한 내용을 증언하여 기록하였다.

김옥균은 조국이 청국의 종주권하에 있는 굴욕감을 참지 못하여 어찌하면 이 수치를 벗어나 조선도 세계 각국 중에 평등과 자유의 일원이 될까 주주야야로 노심초사했던 것이다(<回顧甲申政變>, 앞의 책, 82쪽).

갑신정변 주도세력의 영수인 김옥균은 정변 직전에 일본인 정치가에 보낸 편지에서도, 조선이 振作의 희망이 없는 것은 청국이 조선을 속국으로 멍에를 씌우는데 원인이 있으므로 조선이 “첫째로 해야 할 일은 멍에를 철폐하고 특히 獨全自主之國을 수립하는 일이다”798)라고 명료하게 밝히었다. 갑신정변 주도세력의 목표는 임오군란 이후의 청국의 조선 ‘속방화정책’의 멍에를 철폐하고, 자주부강한 근대국가를 건설하여 세계 각국과 어깨를 나란히 동열에 서도록 나라를 발전시키려 한 것이었다.

이러한 목표를 가진 개화당에 대하여 청국측과 민비 수구파는 결탁하여 탄압하고 개화당 요인들을 기회 있을 때마다 정계에서 제거시켜 나갔다. 김옥균은 갑신정변 직전에 박영효의 집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들은 수년래 평화적 수단에 의하여 각고진력해 왔으나, 그 공효가 없었을 뿐 아니라 금일 이미 死地에 들어가게 되었다. 앉아서 죽음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먼저 人을 制하여 策을 취하지 않으면 안될 정세에 이르렀다. 따라서 우리들의 결심에는 하나의 길이 있을 뿐이다(伊藤博文 編,≪秘書類纂 朝鮮交涉資料≫상, 朴泳孝邸ニ於テ洪英植·金玉均·徐光範ト島村久談話筆記要略, 271쪽).

개화당은 결국 임오군란 후 청국의 ‘조선속방화’정책을 정변의 방법으로 집권하여 물리치고, 위로부터의 급속한 자주 근대화정책을 실시해서 조선을 자주부강한 근대국가로 건설하여 세계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완전 자주독립국가로 발전시킬 것을 목표로 정변을 추진하게 된 것이었다.799)

789) 다음과 같은 글들이 관련하여 참고가 된다.

閔泰瑗,≪甲申政變과 金玉均≫(國際文化協會, 1947).

姜在彦,<開化思想·開化派·甲申政變>(≪朝鮮近代史硏究≫, 1970).

Harold F. Cook. The Korea’s 1884 Incident, 1972.

李光麟,<金玉均의 ‘甲申日錄’에 대하여>(≪震檀學報≫33, 1972).

―――,<숨은 開化思想家 劉大致>(≪開化黨硏究≫, 一潮閣, 1973).

―――,<甲申政變에 대한 一考察>(위의 책, 1973).

金榮作,<初期開化派의 民族主義思想과 甲申政變의 現代的 意義>(≪思想과 政策≫1-4, 1984).

愼鏞廈,<甲申政變에 社會經濟的 背景과 開化思想>(≪思想과 政策≫1-4, 1984).

―――,<甲申政變의 改革思想>(≪韓國學報≫36, 1984).

―――,<金玉均의 開化思想>(≪東方學志≫46·47·48, 1985).

―――,<19세기 한국의 近代國家 형성문제와 立憲共和國 수립운동>(≪韓國社會史硏究會論文集≫1, 1986).

―――,<甲申政變의 主體勢力과 開化黨의 北靑·廣州養兵>(≪韓國學報≫95, 1999).

韓國政治外交史學會,≪甲申政變硏究≫, 1985.

安秉珆,<1884年 甲申政變の社會經濟的基礎>(≪朝鮮近代經濟史硏究≫, 1975).

裵成東,<朝鮮末期의 政治體制>(≪韓國政治學會報≫10, 1976).

金達中,<1880年代 韓國國內政治와 外交政策>(≪韓國政治學會報≫ 10, 1976).

吳世昌,<開化思想과 開化黨의 形成>(≪韓國史學≫ 1, 1980).

山邊健太郎,<甲申事變について>(≪歷史學硏究≫ 244·247, 1960).

朴宗根,<朝鮮における近代的改革の推移-1884(甲申)年と1894年の改革をめぐって->(≪歷史學硏究≫300, 1965).

糟谷憲一,<甲申政變·開化派硏究の課題>(≪朝鮮史硏究會論文集≫22, 1985).

朴明圭,<開化派와 討幕派의 社會經濟的背景과 近代指向性에 관한 비교연구>(≪韓國社會史硏究會論文集≫42, 1994).

康珍子,<甲申政變の問題點-甲申日錄の檢討を通じて->(≪朝鮮史硏究會論文集≫22, 1985).

Shin Yong-Ha, The Coup dˊÉtat of 1884 and Pukchong Army of the Progressive Party, Korea Journal 33-2, 1993.

姜昌一,<初期開化派의 近代化구상-甲申政變에 대한 비판적 검토->(≪韓國文化≫15, 1994).

金雲泰,<韓末開化思想과 그 運動의 展開>(≪朝鮮政治思想硏究≫, 1985).

崔震植,<甲申政變을 전후한 開化派의 外交인식>(≪釜山史學≫32, 1997).
790) 金玉均,<池運永事件糾彈上疏文>(≪金玉均全集≫, 亞細亞文化社版, 146쪽). 이하

≪金玉均全集≫은 全集으로 생략 표기하기로 함.
791)≪尹致昊日記≫, 1883년 (음력) 10월 3일·5일.
792)≪尹致昊日記≫, 1884년 5월 28일.
793)≪尹致昊日記≫, 1883년 10월 3일.
794) 위와 같음.
795)≪尹致昊日記≫, 1883년 12월 4일.
796)≪尹致昊日記≫, 1884년 1월 3일.
797)≪漢城旬報≫10호, 1884년 1월 3일,<革兵犯罪>.
798) 金玉均,<朝鮮改革意見書>(≪金玉均全集≫, 亞細亞文化社版, 110∼111쪽).
799) 愼鏞廈, 앞의 글(앞의 책, 1985;≪韓國近代社會思想史硏究≫, 一志社, 1987) 참조.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