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사회신분제의 동요
조선시대 신분구조는 良·賤과 班·常의 二元的 對立構造를 바탕으로 양반·상민·노비의 3대 주요 신분이 신분구조의 기축을 이루면서, 중인·서얼·향리 등 반·상의 사이에 위치하는 중간신분층 성격의 신분들과 백정·재인 등 양·천의 사이에 위치하는 身良役賤 성격의 신분들이 폭넓게 존재하는 다소 복잡한 내부구성을 지니고 있었다. 크게 볼 때 이러한 신분구성은 15·16세기에 대개 형성·확립된 후 17세기의 조정기를 거쳐 18세기 이후 동요와 해체의 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신분제 폐지는 1894년 동학농민전쟁의 주요 역사적 지향 가운데 하나였다. 이는 조선 후기 동안 진행되어 온 역사 과정에도 불구하고 신분제가 이 시기까지 현실 속에서 작동하고 있었음을 반증한다. 또한 동학농민전쟁의 성격을 정확히 밝히기 위해서는 당시의 신분제의 상태를 포함하는 ‘신분의 역사’에 대한 일정한 해명이 선행되어야 함을 말해준다.0444) 이러한 관점에서 19세기 후반 신분제의 동태에 관하여 조선 후기 전체를 시야에 넣으면서 각 신분별로 살펴 보기로 한다.0445)
0444) | 다만 개항으로부터 농민전쟁에 이르는 시기의 신분제 내지 신분구조의 구체적 상태에 대해서 우리는 아직 충분한 지식을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 농민전쟁의 발상지인 古阜의 경우를 보더라도, 이 지역 士族들의 官界와의 오랜 단절로 인한 殘班化 현상 정도를 추정의 수준에서 거론하는 데 그치며, 여타 신분층의 동향이나 고부군 전체의 신분구성 등에 대해서는 아직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李羲權,<19世紀 後半 古阜의 社會組織構造>(≪全羅文化論叢≫7, 19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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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45) | 조선 후기 신분제의 변화에 관한 각 신분별 상세한 설명은≪한국사≫34(국사편찬위원회, 1995)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