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4. 사회신분제의 동요3) 양반 신분의 동향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1. 청의 간섭
          • 1) 청의 주차관 임명
          • 2) 청의 외교 및 내정간섭
          • 3) 청의 경제이권 확장
          • 4) 경제적 영향
        • 2. 조선의 대외관계
          • 1) 조·일관계
          • 2) 조·미관계
          • 3) 조·러관계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1. 통치기구의 재정비
        • 2. 민씨척족정권의 시정
        • 3. 독립외교의 추진
        • 4. 개화정책의 추진과 좌절
        • 5. 외국인 고문의 고빙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1. 개항 후의 국제무역
          • 1) 불평등조약 체계의 성립
            • (1) 일본에 의한 개항과 무관세무역
            • (2) 청의 속방화정책과 불평등조약체계의 성립
          • 2) 국제무역의 추이(1876∼1894)
            • (1) 개항 이전의 국제무역
            • (2) 일본의 독점무역기(1876∼1882)
            • (3) 청·일 경쟁무역기(1883∼1894)
          • 3) 외국 상인의 침투와 조선 상인층의 대응
            • (1) 일본 독점무역기(1876∼1882)
            • (2) 청·일 경쟁무역기(1883∼1894)
            • (3) 조선상인층의 대응과 변모
        • 2. 국내적 상품유통의 변동
        • 3. 방곡령실시의 사례와 원인
          • 1) 제1기(1876∼1884)
          • 2) 제2기(1884∼1894)
          • 3) 제3기(1895∼1904)
        • 4. 사회신분제의 동요
          • 1) 노비제의 변화
            • (1) 제도적 변화
            • (2) 노비 호구의 변화
          • 2) 중간신분층의 동향
          • 3) 양반 신분의 동향
            • (1) 양반 호구의 변화
            • (2) 양반 신분의 동요와 분화
        • 5. 개항기 지주제와 농업경영
          • 1) 개항 후 농업변동의 요인
            • (1) 통상무역의 확대와 농촌사회
            • (2) 정부 지배층의 농업문제 인식과 농업정책
          • 2) 지주제의 유형과 동향
          • 3) 농업생산과 지대의 변화
          • 4) 1894년 이후 지주제 전망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1. 동학농민전쟁의 사회경제적 배경
          • 1) 개항 이후 미곡수출의 증대와 지주경영의 강화
          • 2) 일·청상의 침투와 제국주의적 상품유통구조의 창출
          • 3) 부세운영의 변화와 농민몰락의 심화
          • 4) 향촌사회의 변동과 농민항쟁의 고양
        • 2. 동학교조 신원운동
          • 1) 동학교단의 조직과 운영
          • 2) 교조신원운동의 전개
            • (1) 공주취회
            • (2) 삼례취회
            • (3) 광화문복소와 척왜양방문 게시운동
            • (4) 보은취회와 금구취당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1. 동학농민군의 봉기
          • 1) 고부민란
            • (1) 고부민란의 배경
            • (2) ‘사발통문’ 거사계획
            • (3) 고부민란의 전개
            • (4) 관권의 대응
            • (5) 고부민란의 농민전쟁으로의 발전
          • 2) 전봉준의 기병과 격문
            • (1) 무장기포
            • (2) 고부점령
            • (3) 백산대회
        • 2. 동학농민군의 격전
          • 1) 관군의 남하와 황토현·장성전투
            • (1) 농민군의 진군과 감영군의 출동
            • (2) 황토현전투
            • (3) 경군의 남하와 농민군의 남행
            • (4) 장성전투
          • 2) 전주성의 점령과 화약
            • (1) 전주성 점령
            • (2) 완산전투
            • (3) 전주화약
        • 3. 동학농민군의 폐정개혁 요구
          • 1) 조세수취체제에 대하여
            • (1) 조세수취제도 전반에 관하여
            • (2) 전정에 관한 요구조항
            • (3) 군정에 관한 요구조항
            • (4) 환곡에 관한 요구조항
            • (5) 잡세·잡역에 관한 요구조항
            • (6) 전운영에 관한 조항
            • (7) 탐관오리에 관한 요구조항
          • 2) 무역·상업 문제에 대하여
            • (1) 일본의 경제적 침투에 대하여
            • (2) 국내상업문제에 대하여
          • 3) 기타 정치적 요구조항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1. 집강소의 설치
          • 1) 휴전과 집강소의 설치(5월 8일∼6월 15일경)
          • 2) 집강소 설치의 전면화(6월 15일경∼7월 5일)
          • 3) 집강소의 공인 (7월 6일∼10월)
        • 2. 집강소의 구성과 조직
        • 3. 집강소의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1. 동학농민군의 재기
          • 1) 남접농민군의 재기
          • 2) 북접농민군의 기포
        • 2. 반일투쟁의 전개
          • 1) 반일투쟁의 발발
          • 2) 남·북접 연합과 봉기의 확산
          • 3) 관군 및 일본군의 남하
          • 4) 농민군의 북상과 공주전투
          • 5) 항일연합전선의 추진
          • 6) 농민군의 후퇴와 농민전쟁의 좌절
        • 3. 동학농민전쟁의 역사적 의의
          • 1) 결합의 유대
          • 2) 경제적 지향
          • 3) 국가·민족·국민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3) 양반 신분의 동향

(1) 양반 호구의 변화

 영조 26년(1750) 知敦寧府事 李宗城은 왕에게 올린 글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 있다.

서울이나 외방의 士庶는 큰 부자나 녹을 먹는 사람 이외에는 대체로 궁핍한 사람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양반이 가장 많고 또 가장 가난합니다. 士夫의 公卿 자손과 鄕人의 校生 이상을 통칭 양반이라고 하는데, 그 수효는 거의 모든 백성의 반절이 넘습니다.0475)

 이처럼 지배신분인 양반의 수효가 여타 신분보다 많아지는 이른바 역계층화 현상은 조선 후기 신분구조의 주요 특징 가운데 하나이며 신분제 동요 현상에 관한 주된 근거로서 흔히 설정된다. 양반 신분에 해당하는 호구의 수가 조선 후기 동안 계속 증가하였다는 사실은 호적 연구에 의해 구체적으로 밝혀졌다.<표 4>는 각 지역별 호적 연구에 의해 양반 신분으로 파악된 호구의 전체에 대한 구성비를 개관할 수 있도록 한 데 모아 정리한 것이다.

  年 度 人 口 地 域 硏 究 者 備 考
1606   13.75 山 陰 盧 鎭 英
1606 48.33 18.15 丹 城 韓 基 範
1609   2.5 蔚 山 韓 榮 國
1630   15.85 山 陰 盧 鎭 英
1663 16.6   서 울 Wagner
1672 14.2   金 化 Shin
1678   5.6 丹 城 金 泳 謨 職·準
1678 13.6   丹 城 李 俊 九
1684 5.1   蔚 山 金 泳 謨 職·準
1690 9.2 7.4 大 邱 四 方 博
1711 29.1   彦 陽 朴 容 淑 形·準
1717 19.9 12.8 丹 城 朴 容 淑
1717 19.1   丹 城 李 俊 九
1720   8.0 丹 城 金 泳 謨 職·準
1729 26.29 19.39 蔚 山 鄭 奭 鍾
(16) 1729 14.48   蔚 山 Somerville 職·鄕班
(17) 1732   10.0 丹 城 金 泳 謨 職·準
(18) 1732 18.7 14.8 大 邱 四 方 博
(19) 1738 30.1   尙 州 金 容 燮
(20) 1753 19.79   蔚 山 Somerville 職·鄕班
(21) 1759   9.7 丹 城 金 泳 謨 職·準
(22) 1759 24.4   丹 城 李 俊 九
(23) 1765 23.45   蔚 山 Somerville 職·鄕班
(24) 1765 40.98 32.11 蔚 山 鄭 奭 鍾
(25) 1771 16.4   蔚 山 金 泳 謨 職·準
(26) 1783 37.5 31.9 大 邱 四 方 博
(27) 1786 32.2 23.4 丹 城 朴 容 淑
(28) 1786   14.3 丹 城 金 泳 謨 職·準
(29) 1786 31.4   丹 城 李 俊 九
(30) 1798 68.3   彦 陽 朴 容 淑 形·準
(31) 1804 35.8   蔚 山 Somerville 職·鄕班
(32) 1804 53.47 43.67 蔚 山 鄭 奭 鍾
(33) 1825   38.6 鎭 海 武田幸男 職·準·男丁
(34) 1825   32.6 鎭 海 武田幸男 職·準·男丁 東面
(35) 1825 57.1 42.1 丹 城 井上和枝 職·準·男丁
(36) 1858 70.3 48.6 大 邱 四 方 博
(37) 1861 84.4   彦 陽 朴 容 淑 形·準
(38) 1867 65.48 67.07 蔚 山 鄭 奭 鍾
(39) 1876   36.9 鎭 海 武田幸男 職·準·男丁 東面
(40) 1882 83.4 65.8 丹 城 井上和枝 職·男丁
(41) 1885 38.6   蔚 山 金 泳 謨 職·準

<표 4>朝鮮後期 兩班身分戶口構成比의 變化:槪觀 (단위:%)

*연도, 지역 및 연구자 배열은<표 1>과 같음.<표 1>에 있는 비고란의 面地域 표시는 대개 동일하므로 여기서는 생략하였음.
**비고란에서 ‘職’은 ‘職役表記’, ‘形’은 ‘記載形式’의 줄임이며 분류기준임. ‘準’은 ‘準兩班’이 포함되어 있다는 뜻임.

 이 표의 형태는 노비 호구에 관한 앞의<표 1>과 동일하지만, 노비의 경우 그 범주의 획정이 단순하고 호적상에도 대개 분명하게 나타나므로 연구자들 간에 상위함이 거의 없음에 비해, 양반 신분에 대한 파악방식은 다양한 견해 차이를 보이고 있다.<표 4>의 비고란을 보아도 대개 짐작할 수 있듯이 호적에서 양반 신분을 판별해 내는 기준이 연구자들 간에 통일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견해 차이는 대략 다음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우선 판별 기준이 기재형식인가 아니면 직역표기인가 또는 이 둘을 혼용할 것인가에 대한 견해 차이가 그 하나이고, 직역표기를 분류기준으로 사용할 경우 양반 직역의 범주에 관한 견해 차이가 그 둘이며, ‘준양반’을 구별되는 하나의 범주로 독립시킬 것인가에 대한 견해 차이가 그 셋이다.<표 4>에 나타나 있는 통계치에는 이러한 연구자 간의 견해 차이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그 단적인 예로서<표 4>의 (27)(28)(29)는 동일 호적대장을 자료로 삼아 양반 호구를 추출한 것이지만 세 연구자가 적용한 기준이 상이하기 때문에 그 구성비가 일치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통계치만 가지고 시기별 추이 분석이나 지역간 비교를 정확히 행하기는 어렵다. 여기에 다시 지역적 특수성이 반영되어 있을 가능성까지 감안한다면 이들 지역별 통계치를 단순 비교하여 어떤 결론을 내리기에는 난점이 있다. 그러므로<표 4>는 이를 통해 양반 호구의 추이에 관한 개략적인 정보를 얻는 정도로 그 의미가 제한된다.

 이러한 전제 아래<표 4>를 보면, ②의 경우와 한 번만 조사된 지역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지역 사례에서 兩班戶 및 兩班人口가 시간이 갈수록 증가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 증가 경향은 大邱(⑩(18)(26)(36))와 彦陽(⑪(30)(37))에서 가장 극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구 지역의 양반호는 17세기 말의 9.2%에서 19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대략 50년마다 倍增하여 1858년에 이르면 전체의 70.3%를 점유하는 것으로 파악되어 있다. 언양의 양반호(준양반 포함)도 1711년과 1798년 사이에 2배 이상 구성비가 높아지고 다시 1861년에 이르면 전체의 84.4%라는 압도적인 구성비를 기록하고 있다.

 이리하여 19세기 후반에 이르면 兩班戶의 전체에 대한 구성비가 지역별로 70.3%(大邱), 84.4%(彦陽), 65.48%(蔚山 農所面), 83.4%(丹城 新等·法勿也面)에 달하고 兩班人口도 48.6%(大邱), 67.07%(蔚山 農所面), 65.8%(丹城 新等·法勿也面)에 달하고 있어서 이 사실로만 본다면 양반 신분의 소수 특권지배신분으로서의 성격은 무의미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호적 분석에 의해 파악된 양반층의 급증현상은 ‘幼學’ 직역층의 급증에 의한 것인데, 대구의 경우 幼學戶의 전체 양반호 중 점유율이 1690년의 41.4%에서 1858년의 89.8%로, 언양의 경우 1711년의 54.6%에서 1861년의 98.4%로, 단성의 경우 1678년의 41.5%에서 1825년의 98.8%로 각각 크게 증가하였다.0476) 19세기 후반까지 자료가 밝혀져 있는 단성 新等面과 法勿也面의 사례를<표 5>를 통해서 보면, 1825년 이후에도 양반호 가운데 유학호의 점유율은 최저 96.7%에서 최고 99.6%까지, 양반 인구 가운데 유학 인구의 점유율은 97.0%에서 99.7%까지 매우 높은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2개 면의 경우, 1882년의 유학호 점유율은 新等 96.7% 法勿也 99.0%, 유학 인구 점유율은 新等 97.0% 法勿也 99.3%를 각각 기록하였다.

  新 等 面 法 勿 也 面
戶 數 人 口 戶 數 人 口
幼學 全體 幼學 全體 幼學 全體 幼學 全體
1825 123

(97.6)
126 142

(97.9)
145 166

(99.4)
167 204

(99.5)
205
1846 144

(98.6)
146 148

(97.4)
152 254

(99.6)
255 324

(99.7)
325
1861 187

(97.9)
191 247

(97.2)
254 323

(99.4)
325 365

(99.5)
367
1882 147

(96.7)
152 196

(97.0)
202 301

(99.0)
304 406

(99.3)
409

<표 5>19世紀 丹城縣 新等·法勿也面 幼學戶口의 變化(男丁)

*자료:井上和枝, 위의 글, 15쪽에서 재구성. 이 표에서 ‘全體’는 兩班 全體를 말하며 準兩班으로 분류되는 것은 제외하였음. ( )안은 양반 전체에 대한 幼學 호구의 점유율(%).

 이처럼 18세기 이후부터 幼學 호구가 급증한 배경에는 유학의 자기 재생산 뿐만 아니라 忠義衛에서 유학으로의 직역 이동과 서얼 후손을 비롯한 중간신분층의 유학 호칭, 그리고 有役下層民의 冒稱幼學 등 다양한 신분층의 유학 호칭이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특히 유역 하층민의 모칭유학은 18세기를 거쳐 19세기로 오면서 유학층 증가의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여 군역제의 동요와 함께 신분제의 동요를 가속화하였다.0477) 유학은 16·17세기까지는 대개 양반의 직역에 해당하였으나, 18·19세기로 오면서 하위신분층에 의하여 모칭되었고 호적상 모칭유학의 추세는 관에서도 제어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0478) 그러므로 호적대장 상에 幼學 직역으로 기재된 호구의 급증 현상을 곧바로 양반 신분층의 급증으로 해석하는 데는 일정한 한계가 따르며, 오히려 이를 신분과 직역 간의 불일치 현상으로 해석하고 신분직역제의 해체 문제와 관련지울 수도 있는 것이다.0479)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호적 분석에서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는 兩班戶口의 증가 현상은 양반 신분층의 동요 현상을 설명하는 지표로서의 가능성을 여전히 보유하고 있다. 다양한 신분층, 특히 유역 하층민이 19세기로 오면서 양반의 직역인 유학을 모칭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입증될수록 양반 신분층의 폐쇄성 약화 내지 권위 하강에 관한 증거도 강화될 수 있기 때문이며 그 결과는 중세적 신분질서 해체의 징후로 연결되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0475)≪英祖實錄≫71, 英祖 26년 6월 癸巳.
0476)李俊九,<양반층의 증가와 분화>(≪한국사≫34, 국사편찬위원회, 1995), 16∼17쪽.
0477)李俊九, 위의 글, 17∼21쪽 참조.
0478)崔承熙,<朝鮮後期 幼學·學生의 身分史的 意味>(≪國史館論叢≫1, 1989), 117쪽.
0479)任敏赫,<朝鮮後期의 幼學>(≪淸溪史學≫8, 1991), 158쪽 참조.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