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4. 사회신분제의 동요3) 양반 신분의 동향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1. 청의 간섭
          • 1) 청의 주차관 임명
          • 2) 청의 외교 및 내정간섭
          • 3) 청의 경제이권 확장
          • 4) 경제적 영향
        • 2. 조선의 대외관계
          • 1) 조·일관계
          • 2) 조·미관계
          • 3) 조·러관계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1. 통치기구의 재정비
        • 2. 민씨척족정권의 시정
        • 3. 독립외교의 추진
        • 4. 개화정책의 추진과 좌절
        • 5. 외국인 고문의 고빙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1. 개항 후의 국제무역
          • 1) 불평등조약 체계의 성립
            • (1) 일본에 의한 개항과 무관세무역
            • (2) 청의 속방화정책과 불평등조약체계의 성립
          • 2) 국제무역의 추이(1876∼1894)
            • (1) 개항 이전의 국제무역
            • (2) 일본의 독점무역기(1876∼1882)
            • (3) 청·일 경쟁무역기(1883∼1894)
          • 3) 외국 상인의 침투와 조선 상인층의 대응
            • (1) 일본 독점무역기(1876∼1882)
            • (2) 청·일 경쟁무역기(1883∼1894)
            • (3) 조선상인층의 대응과 변모
        • 2. 국내적 상품유통의 변동
        • 3. 방곡령실시의 사례와 원인
          • 1) 제1기(1876∼1884)
          • 2) 제2기(1884∼1894)
          • 3) 제3기(1895∼1904)
        • 4. 사회신분제의 동요
          • 1) 노비제의 변화
            • (1) 제도적 변화
            • (2) 노비 호구의 변화
          • 2) 중간신분층의 동향
          • 3) 양반 신분의 동향
            • (1) 양반 호구의 변화
            • (2) 양반 신분의 동요와 분화
        • 5. 개항기 지주제와 농업경영
          • 1) 개항 후 농업변동의 요인
            • (1) 통상무역의 확대와 농촌사회
            • (2) 정부 지배층의 농업문제 인식과 농업정책
          • 2) 지주제의 유형과 동향
          • 3) 농업생산과 지대의 변화
          • 4) 1894년 이후 지주제 전망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1. 동학농민전쟁의 사회경제적 배경
          • 1) 개항 이후 미곡수출의 증대와 지주경영의 강화
          • 2) 일·청상의 침투와 제국주의적 상품유통구조의 창출
          • 3) 부세운영의 변화와 농민몰락의 심화
          • 4) 향촌사회의 변동과 농민항쟁의 고양
        • 2. 동학교조 신원운동
          • 1) 동학교단의 조직과 운영
          • 2) 교조신원운동의 전개
            • (1) 공주취회
            • (2) 삼례취회
            • (3) 광화문복소와 척왜양방문 게시운동
            • (4) 보은취회와 금구취당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1. 동학농민군의 봉기
          • 1) 고부민란
            • (1) 고부민란의 배경
            • (2) ‘사발통문’ 거사계획
            • (3) 고부민란의 전개
            • (4) 관권의 대응
            • (5) 고부민란의 농민전쟁으로의 발전
          • 2) 전봉준의 기병과 격문
            • (1) 무장기포
            • (2) 고부점령
            • (3) 백산대회
        • 2. 동학농민군의 격전
          • 1) 관군의 남하와 황토현·장성전투
            • (1) 농민군의 진군과 감영군의 출동
            • (2) 황토현전투
            • (3) 경군의 남하와 농민군의 남행
            • (4) 장성전투
          • 2) 전주성의 점령과 화약
            • (1) 전주성 점령
            • (2) 완산전투
            • (3) 전주화약
        • 3. 동학농민군의 폐정개혁 요구
          • 1) 조세수취체제에 대하여
            • (1) 조세수취제도 전반에 관하여
            • (2) 전정에 관한 요구조항
            • (3) 군정에 관한 요구조항
            • (4) 환곡에 관한 요구조항
            • (5) 잡세·잡역에 관한 요구조항
            • (6) 전운영에 관한 조항
            • (7) 탐관오리에 관한 요구조항
          • 2) 무역·상업 문제에 대하여
            • (1) 일본의 경제적 침투에 대하여
            • (2) 국내상업문제에 대하여
          • 3) 기타 정치적 요구조항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1. 집강소의 설치
          • 1) 휴전과 집강소의 설치(5월 8일∼6월 15일경)
          • 2) 집강소 설치의 전면화(6월 15일경∼7월 5일)
          • 3) 집강소의 공인 (7월 6일∼10월)
        • 2. 집강소의 구성과 조직
        • 3. 집강소의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1. 동학농민군의 재기
          • 1) 남접농민군의 재기
          • 2) 북접농민군의 기포
        • 2. 반일투쟁의 전개
          • 1) 반일투쟁의 발발
          • 2) 남·북접 연합과 봉기의 확산
          • 3) 관군 및 일본군의 남하
          • 4) 농민군의 북상과 공주전투
          • 5) 항일연합전선의 추진
          • 6) 농민군의 후퇴와 농민전쟁의 좌절
        • 3. 동학농민전쟁의 역사적 의의
          • 1) 결합의 유대
          • 2) 경제적 지향
          • 3) 국가·민족·국민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양반 신분의 동요와 분화

 조선 후기 양반신분의 동요를 초래한 배경은 비양반층의 신분적 상향 이동의 결과라는 관점에서 조명될 수 있다. 비양반층은 과거라는 좁은 통로를 거쳐 양반으로 상향 이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동 방식은 양반층의 신분적 지위 자체에는 거의 타격을 주지 않는 성격의 것이며, 양반 신분으로의 充員의 의미를 띠는 班常制의 제도적 과정의 하나일 뿐이다. 그러므로 양반 신분의 동요는 과거 이외의 다양한 합법적·불법적 수단들을 통한 상향 이동에 의해 초래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반상제의 제도적 과정을 벗어난 수단들을 통하여 새로이 양반 신분층에 대량으로 진출함으로써 양반 호구가 그만큼 늘어나고 그로 인한 양반 신분의 동요가 야기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합법적 상향 이동 수단이 곧 納粟授職이다. 납속수직은 米穀으로 대표되는 일정 財貨를 국가에 헌납한 자에게 그 대가로 官爵을 수여하는, 말하자면 賣官과 다를 바 없는0480) 재정염출책이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부유한 상민들은 정상적인 경로를 통해서는 접근할 수 없는 관직이나 품계를 납속수직의 방법을 통하여 획득함으로써 자신의 신분적 지위를 향상시킬 수 있었고 국가는 그러한 신분 상승의 열망을 이용하여 부족한 재원을 메꿀 수 있었다. 조선 후기에 들어와 賑恤·軍糧確保·軍器補修·宮闕營建·築城 등을 위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납속수직이 빈번하게 행해졌다. 납속에 의해 획득할 수 있는 관직은 대개 老職·贈職·影職·加設職 등으로서 職事가 없는 명예직이 주류를 이루었다. 納粟品官은 군역이 면제되지 않는 등 일반 사대부와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구별되어 그 신분적 지위는 양반과 상민의 중간에 위치하는 정도였던 것으로 추정되지만,0481) 제도상의 규정과는 달리 시일이 흐름에 따라 본래의 양반층과 마찬가지로 양반 행세도 할 수 있게 되었다.0482)

 납속수직 이외에도 각종의 冒稱·冒屬·冒錄 등 다양한 불법적 방법을 동원하여 양반으로의 신분 상승을 도모하였다. 비교적 부유한 상민들은 籍吏와 결탁하여 호적에 幼學으로 冒錄함으로써 避役을 꾀하였으며 이러한 冒稱幼學은 상민 가운데 약간의 식견과 재력이 있는 자는 쉽게 넘볼 수 있었다.0483) 또한 재력있는 상민들은 璿派·勳族을 모칭하고 관작을 거짓 기재하여 僞譜를 만들거나, 빈궁한 양반의 족보를 사서 후손으로 冒錄하는 방법 등을 사용하였다.0484) 이와 함께 忠義衛·業儒·業武·校生·院生·軍官·將校 등의 신분직역을 모칭하거나 거기에 모속함으로써 피역을 위한 신분 상승을 도모하였다.

 비양반층의 상향 이동이 활발해지고 이들이 양반 신분층에 대량으로 진출함에 따라 양반 신분은 크게 동요되었고 이는 양반 신분의 분화 현상을 촉진하였다. 본래의 양반 신분은 李重煥(1690∼1756)이 지적한 바와 같이 士大夫와 鄕曲品官의 구별이 있었고, 사대부 간에도 大家·名家의 경계가 있었다.0485) 또한 柳壽垣(1694∼1755)이 素門平族과 高門大族을 나눈 것과 같이0486) 家世와 門地에 따라 한미한 가문과 문벌 가문을 구분하는 풍토가 있었다. 경제적으로도 대지주로부터 “사는 꼴이 걸인을 방불케 하는”0487) 빈곤층에 이르기까지 분화되고 있었다. 지역적으로도 18세기 이후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數十家의 양반 권세가에 정권이 집중되어 간 이면에는 지방 사족(특히 영남 사족)의 향족화 현상이 자리잡고 있었다.0488)

 그런데 비양반층의 대량 진출에 의해 촉진된 양반층의 분화 현상은 이러한 전국적 수준에서 상·하를 구분하는 형태와는 다소 다른 방향에서 진행된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분화의 새로운 형태는 주로 양반 신분의 하부에 해당하는 재지사족 내지 향반의 수준에서 향촌사회를 공간적 배경으로 하여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그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것은 ‘儒鄕分岐’ 즉 士族과 鄕族·鄕品의 분리 현상이었다.0489) 영남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거의 전국적 수준에서 진행된 유향분기는 사족지배체제에서 守令-吏·鄕支配體制로의 변화에 따른 재지사족의 鄕權 상실 경향과도 관련된다. 관 주도의 향촌사회 통제책 시행에 따라 향임이 고역으로 전락하자 본래의 사족층은 이를 기피하였고, 향임을 담당하는 향족·향품층은 이들과 구분되는 하나의 계층으로 형성되어 갔다. 18세기 후반 이후 향임은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부민층이 대거 참여하는 현상이 일반화되었다. 지역에 따라 향임·서얼·이서 등으로 구성된 ‘新鄕’의 향안 입록을 둘러싸고 기존 입록자인 ‘舊鄕’과의 사이에 전개된 ‘鄕戰’과 이를 배경으로 한 향안 파치 현상도 같은 맥락에서 재지사족층의 분화를 보여 주는 한 예로 삼을 수 있다.

 다른 한편, 1832년경 晉州 지역에서 나타난 元儒와 別儒의 구분과 차별 양상도 재지사족 수준에서 진행된 분화 현상과 관련하여 음미되어야 할 사례이다.0490) 원유와 별유는 다같이 幼學을 직역으로 하면서도 원유는 토착·전통적인 지배신분층, 별유는 신분상승 혹은 後來移住로서 지배신분층의 하부에 첨입된 존재로 파악된다. 원유와 별유의 구분은 급증된 兩班戶의 자체 구별의 양상을 띠고 있으며 분명한 신분적 상하 관계를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 양반층의 증대에 따른 기존 사족층의 자기 방어 차원의 대응 양상을 잘 보여 준다.

 이러한 분화의 제양상은 모든 사회에서 정치적 권력과 경제적 부, 그리고 사회적 위신이 불평등하게 분배된다는 관점에서 보면 당연한 현상일 수 있다. 그러나 조선 후기 양반신분의 분화 과정은 신분제 동요의 결과 또는 징후와 관련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특징이 있다. 상민을 비롯한 여러 신분층의 사회적·경제적 성장과 이를 바탕으로 하는 양반 신분으로의 대량 진출이 양반 호구의 증대를 낳고 그에 대한 사회적 반응으로서 양반 신분의 분화가 촉진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상층 양반이 이러한 사회·경제적 요인에 의하여 동요된 흔적은 발견하기 어렵다. 오히려 전형적인 양반 가문은 이질적 요소나 하층 양반과의 구별을 강조함으로써 스스로를 강화시켜 나갔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양반 신분의 동요와 관련하여 주목하여야 할 부분은 양반 신분의 하부이다. 이 비교적 수심이 얕은 곳에 상민을 비롯한 여타의 신분층이 뛰어들어 휘저어 놓음으로써 반·상의 混淆가 일어나고 호적대장 상의 양반층 증대 현상이 야기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18·19세기에 이르러 다양한 신분층이 幼學 직역에 진출함으로써 이 직역 기재로는 본래의 신분을 구별할 수 없게 된 현상은0491) 충분히 주목될 가치가 있는 것이다.0492)

<池承鍾>

0480)≪英祖實錄≫6, 영조 원년 5월 계묘. 侍讀官 徐宗燮의 말 참조.
0481)李俊九,<朝鮮後期兩班身分移動에 關한 硏究(上)>(≪歷史學報≫97, 1983), 152쪽.
0482)金容燮,<朝鮮後期에 있어서의 身分制의 動搖와 農地所有>(≪朝鮮後期農業史硏究≫, 一潮閣, 1970), 413쪽.
0483)鄭奭鍾,<朝鮮後期 社會身分制의 變化>(≪朝鮮後期社會變動硏究≫, 一潮閣, 1983), 255쪽;金容燮,<朝鮮後期 軍役制의 動搖와 軍役田>(≪東方學志≫32, 1962), 110쪽 참조.
0484)鄭奭鍾, 위의 글, 261∼263쪽;金容燮, 위의 글, 116쪽 참조.
0485)李重煥,≪擇里誌≫總論.
0486)柳壽垣,≪迂書≫2, 論門閥之弊.
0487)宋俊浩,<1750年代 益山地方의 兩班>(≪全北史學≫11, 1983).
0488)韓㳓劤,≪東學亂 起因에 關한 硏究≫(서울대학교출판부, 1971), 42∼45쪽.
0489)이하 儒鄕分岐에 대한 서술은 李俊九, 앞의 글, 36∼38쪽 참조.
0490)李海濬,<朝鮮後期 晉州地方 儒戶의 實態>(≪震檀學報≫60, 1985).
0491)崔承熙, 위의 글, 117쪽.
0492)兩班層 增大와 奴婢戶 激減으로 요약되는 조선 후기 신분제 동요의 추세는 조선시대 신분구조의 구성 원리인 班常制와 良賤制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19세기 후반의 신분제는 幼學 職役의 사례에서 극명히 표출되듯이 신분직역체제가 파탄 국면에 이르게 되면서 국가신분제로서의 성격은 거의 상실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에서 19세기 후반의 계층구조에 대하여 이를 사회적 신분과 경제적 계급을 함께 고려하여 파악하려는 입장, 예컨대 “상층부에는 兩班士族을 모태로 하는 土豪層과 班常을 포괄하는 신분구성을 갖는 饒戶富民層이 있고, 하층부에는 平民·賤民 신분층의 小貧民層이 존재하고 있었다”고 보는 입장은 일정한 타당성을 가질 수 있다. 이영호,<1894년 농민전쟁의 사회경제적 배경과 변혁주체의 성장>(≪1894년 농민전쟁연구 1≫, 역사비평사, 1991), 26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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