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43권 국권회복운동Ⅰ. 외교활동1. 한반도 중립화 운동1) 한반도 중립화론의 대두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1. 한반도 중립화 운동
          • 1) 한반도 중립화론의 대두
            • (1) 임오군란 후 일본에서의 한반도 중립화론
            • (2) 거문도사건 전후기의 한반도 중립화론
            • (3) 청일전쟁 전후기의 한반도 중립화론
          • 2) 대한제국의 영세중립화 시도
          • 3) 러·일 개전기 대한제국의 전시국외중립 선언
            • (1) 전시국외중립 외교
            • (2) 전시국외중립 선언
        • 2. 보호국화 저지 외교
          • 1) 한국의 일본보호국화 과정
          • 2) 정부 주도의 보호국화 저지 외교
            • (1) 반침략 자주 외교의 전개
            • (2) 을사조약 무효화 외교
          • 3) 민간인의 보호국화 저지 외교
            • (1) 대영·대미 보호국화 저지 외교
            • (2) 대일 보호국화 저지 외교
        • 3. 특사의 헤이그 평화회의 파견
          • 1) 제2차 헤이그 평화회의
          • 2) 고종의 3특사
          • 3) 특사의 장외 언론활동
          • 4) 특사 파견의 파문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1. 유생의 상소 투쟁
          • 1) 을사조약 체결 이전의 상소운동
          • 2) 을사조약 반대 상소운동
        • 2. 시민의 투쟁
          • 1) 지방세제의 시행과 시장세 징수
          • 2) 순천·용천 양시의 시장세 반대운동
          • 3) 시장세 반대운동의 전국적 확산
        • 3. 황무지개척권 반대운동
          • 1) 황무지개척권 요구의 배경
          • 2) 황무지개척권의 요구
          • 3) 한국민의 반대운동
            • (1) 언론·상소 투쟁
            • (2) 농광회사의 설립
            • (3) 보안회의 투쟁
          • 4) 황무지개척권 요구의 철회
        • 4. 국채보상운동
          • 1) 국채보상운동의 발단
            • (1) 일본의 차관공세
            • (2) 국채보상운동의 발단
          • 2) 국채보상운동의 전개
            • (1) 국채보상운동의 확산
            • (2) 여성의 국채보상운동 참여
          • 3) 국채보상운동의 좌절
        • 5. 의사·열사의 항쟁
          • 1) 장인환·전명운의 스티븐스 사살
            • (1) 스티븐스의 친일 외교활동
            • (2) 장인환·전명운의 스티븐스 사살
            • (3) 장인환·전명운 의거의 영향과 의의
          • 2)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사살
            • (1) 이토 히로부미 사살 배경
            • (2) 이토 히로부미의 사살과 그 역사적 의의
          • 3) 이재명의 이완용 척살 미수
      • Ⅲ. 애국계몽운동
        • 1. 애국계몽단체
          • 1) 초기의 계몽단체들
            • (1) 보안회
            • (2) 공진회
            • (3) 국민교육회
            • (4) 헌정연구회
          • 2) 대한자강회
            • (1) 대한자강회의 설립과 조직
            • (2) 대한자강회의 계몽사상
            • (3) 대한자강회의 자강독립운동
          • 3) 신민회
            • (1) 신민회의 창건과 목적
            • (2) 신민회의 국권회복운동
          • 4) 대한협회, 기타 학회들
            • (1) 대한협회
            • (2) 계몽학회들
          • 5) 애국계몽단체 활동의 역사적 의의와 그 한계
        • 2. 애국계몽사상
          • 1) 애국계몽사상의 개념과 형성
            • (1) 애국계몽사상의 개념
            • (2) 애국계몽사상의 형성
          • 2) 국권회복의 논리
            • (1) 자강독립론
            • (2) 실력양성론과 독립전쟁론
          • 3) 국민국가건설의 논리
            • (1) 국민국가론
            • (2) 입헌군주정체론과 공화정체론
        • 3. 애국계몽운동의 전개
          • 1) 민중계몽운동
            • (1) 신문 발간을 통한 민중계몽운동
            • (2) 회지·잡지 발간을 통한 민중계몽운동
            • (3) 강연회·토론회를 통한 민중계몽운동
          • 2) 교육구국운동
            • (1) 근대학교 설립운동
            • (2) 교과서 편찬운동
            • (3) 의무교육 실시운동
            • (4) 실업·상무교육 실시운동
          • 3) 경제구국운동
            • (1) 황무지개간권 반대운동
            • (2) 국채보상운동
            • (3) 부동산침탈 반대운동
            • (4) 민족경제 건설운동
          • 4) 정치구국운동
            • (1) 을사조약 반대운동
            • (2) 고종양위 반대운동
            • (3) 한일합방 반대운동
          • 5) 민족문화운동
            • (1) 국어국문 진흥운동
            • (2) 국사교육 강화운동
            • (3) 민족적 종교운동
          • 6) 독립군기지 건설운동
            • (1) 독립전쟁론의 대두
            • (2) 독립군기지 건설준비
            • (3) 독립운동기지의 건설
        • 4. 105인사건
          • 1) 사건조작 배경
          • 2) 사건조작 경위와 사건 개요
          • 3) 재판 경위와 사건의 허구성
          • 4) 사건 연루자의 수난과 사회경제적 성향
      • Ⅳ. 항일의병전쟁
        • 1. 갑오·을미의병
          • 1) 갑오·을미의병의 배경
          • 2) 갑오의병의 전개
          • 3) 을미의병의 전개
            • (1) 을미사변과 을미의병의 개시
            • (2) 단발령 공포와 을미의병의 확대
          • 4) 갑오·을미의병의 사회적 기반과 성격
        • 2. 을사의병
          • 1) 을사의병의 재기
          • 2) 전국 의병의 활동
            • (1) 경기·강원도
            • (2) 영남지방
            • (3) 호서지방
            • (4) 호남지방
            • (5) 양서지방
          • 3) 을사의병의 의의
        • 3. 정미의병
          • 1) 군대해산
            • (1) 정미7조약
            • (2) 서울 시위대의 해산
            • (3) 남대문 전투
            • (4) 지방진위대의 항전
          • 2) 중부지역의 의병전황
            • (1) 중부지역의 의병전환
            • (2) 남부·북부지역으로의 확전
            • (3) 의병장들의 의병활동
          • 3) 이강년의 의병활동
            • (1) 이강년의 활동
            • (2) 무기와 전술
            • (3) 의병의 조직과 군율
        • 4. 의병전쟁의 발전
          • 1) 서울진공작전의 실패와 근거지문제
            • (1) 13도 의병부대의 서울진공작전
            • (2) 유인석의 지구전론과 근거지 문제
            • (3) 근거지 구상에 나타난 유인석 사상
            • (4) 서울 진공 실패 후의 분산활동
          • 2) 의병전쟁의 새로운 앙양과 평민 의병장들
            • (1) 스티븐스의 저격과 의병전쟁
            • (2) 평민 의병장들의 활동
            • (3) 한국합방안의 결정과 이토 히로부미의 저격
          • 3) 호남지방의 의병전쟁과 남한대토벌작전
            • (1) 호남지방의 의병전쟁
            • (2) 일본군의 남한대토벌작전
          • 4) 합방 전후의 의병활동
          • 5) 독립군 운동을 위한 근거지 창설
            • (1) 동만·남만의 한인사회
            • (2) 신민회의 근거지 창설
        • 5. 의병전쟁의 특징과 의의
          • 1) ‘전쟁’이라 하는 이유
          • 2) 의병전쟁사의 시기구분 문제
          • 3) 이념상의 특징
          • 4) 조직상의 특징
          • 5) 활동상의 특징
          • 6) 의병전쟁의 의의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1) 임오군란 후 일본에서의 한반도 중립화론

한반도 중립화문제가 맨처음 제기된 곳은 일본에서였다. 일본은 조선과 이미 ‘江華島條約’(1876. 2. 27)을 성사시켜 조선진출에 적극성을 보여 왔으나 壬午軍亂(1882. 7. 23)이라는 뜻하지 않은 돌출변수로 淸에게 우위를 빼앗겨 위기를 맞게 되자 임오군란의 사후처리에 정치적 관심을 집중시켜 東京에서 청과의 회담을 가졌다. 이 때의 쟁점은 다름아닌 淸韓宗屬關係였다. 주일청국공사 黎庶昌은 “일본공사관이 우리의 屬邦 때문에 暴擧를 받았으므로 청국이 파병하여 공사관을 보호할 것이다”라고 하면서 파병과 정치개입의 명분으로 屬邦論을 주장하였고 일본의 外務大輔 요시다 키오나리(吉田淸成)는 “조선과 조약을 체결하여 該國을 대함에 자주국으로서 함으로, 사후처리도 조약에 바탕을 두어 행하고 공사관 보호도 자국에 의함이 당연하다”고 하면서 獨立論을 제기하였다.0001) 조선을 둘러싼 이러한 양국간의 상반된 주장은 급기야 日本朝野의 초미의 관심사로 부각되었고, 이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청의 속방론을 부정하는 하나의 방편으로 일본이 제기한 것이 한반도 중립화구상이었다.

이 당시 일본에서 제기된 한반도 중립화론의 대표적인 경우는 이노우에 코와시(井上毅)의 案이다. 그는 임오군란 발발 직후인 1882년 9월 17일에<朝鮮政略>0002)을 저술하고 10월 29일에<擬與馬觀察書>0003)를 저술하여 자신의 중립화론을 비교적 자세히 소개하였다. 이를테면, 청이 비록 조선의 上國이고 조선은 淸의 貢國이지만 屬國은 아니며 하나의 독립국이므로 淸·日·美·英·獨 5개국이 공동보호하는 벨기에·스위스 형의 중립국을 만들 것을 회의로서 정할 것을 제안하였다. 그의 이러한 제안은 청·한종속관계의 부정에서 출발한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시기적으로 베트남문제의 재연이라는 좋은 기회를 틈타 한반도의 중립화를 거론함으로써 琉球문제를 해결해보겠다는 저의에서 비롯된 것이기도하였다.0004)

한편 프랑스의 법학자로서 1873년에 渡日하여 일본의 국가자문역으로 활약하고 있던 보아쏘나드(Gustave Emil Boissonade de Fontarable)가 임오군란 후 한반도 중립화론을 제기하였음이 이노우에 코와시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에게 보낸 서간을 비롯한 몇몇 사료에서 확인되고 있다. 보아쏘나드는 원래 조선에 대한 청의 종주권보다도 러시아의 조선침략을 더욱 우려하여 朝·淸·日 3국동맹론을 주장한 바 있지만,0005) 1882년 9월 22일에 쓴<영구중립에 관한 의견서>0006)와 10월 29일에 쓴<恒守局外中立新論>0007)이라는 글에서, 특히 러시아를 경계하여 청·러시아·일본 3국을 중심으로 한 관련국가들의 인정에 따라 한반도가 영세중립화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

이와 같은 이노우에 코와시와 보아쏘나드로 대표되는 일본정가의 한반도중립화론이 어느 정도 국제외교에 반영되었을까 하는 문제는 결과론적 측면에서 볼 때 부정적인 대답 밖에 없겠지만 국제간의 현안타결과정에서 외교실무진들의 고려대상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증거는 이 당시 일본에서 대조선정책을 직접 담당하고 있던 이노우에 카오루(井上馨) 외무경과 다케조에 신이치로(竹添進一郞) 주조선일본공사의 저간의 외교행각에서 찾을 수 있다. 다케조에는 1884년 10월 30일자로 재부임하면서 “나는 조선을 장차 영구 국외중립국으로 할 것이다. 조선으로 하여금 스위스·벨기에와 같은 하나의 영구 국외중립국으로 하려는 것은 이노우에 외무경이 항상 희망하는 바였다”0008)라고 하는가 하면, 같은 해 11월 2일 고종을 알현한 자리에서 淸佛戰爭(1884∼1885)의 대요를 설명하면서 “만약 조선이 프랑스에 기울어지면 청국과 싸우지 않으면 안되고 청국에 기울어지면 프랑스와 싸우게되므로 서양의 예를 본받아 국외중립을 해야한다”0009)고 설득한 일이 있다.

이노우에 카오루가 한반도 중립화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는 기록은 없으나 주일 영·독 외교관들의 본국 보고서를 보면 임오군란 직후에 한반도 중립화를 염두에 둔 적이 있고,0010) 특히 갑신정변(1884. 12. 4) 후 일본특명전권으로 조선에 왔을 때 ‘조선이 일방적으로 중립화를 선언한 다음 관계열국이 승인하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거나 ‘此法甚妙’라는 등의 언급을 하였음이 주조선 독일영사 부들러(Hermann Budler)와의 대화에서 확인되고 있다.0011)

임오군란 후 일본 정가에 한반도 중립화론이 한창 일고 있던 시점에 언론계에서도 이와 유사한 논의가 잇따랐다.

조선문제에 대한 구상을 가장 구체적으로 밝혀 준 신문은 立憲改進黨의 기관지인≪郵便報知新聞≫이었다. 이 신문은 조선이 유럽 大國들 사이에서 자주독립을 유지하고 있는 스위스·벨기에와 같은 지위를 가지기를 바라며 이러한 독립자주의 실력을 갖는데 있어서 명의상 貢國 또는 屬邦으로 칭하더라도 朝·淸·日 3국관계에 아무런 영향은 없다고 한 다음,0012) 이를 위한 방책으로써 조선과 청 및 영국·미국·독일·프랑스에 의한 列國會議를 東京에서 개최하여 조선의 ‘虛名所屬實勢獨立’의 위치를 확정할 것을 제시하였다.0013)

역시 입헌개진당계 신문인≪東京橫濱每日新聞≫도 베를린회의(1878)에서 불가리아가 터키의 朝貢國이면서도 내치·외교는 자주권을 가질 것을 명확히 한 것처럼 청·영국·미국이 공동으로 협의하여 조선도 불가리아와 같은 권리를 가질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0014)

이처럼 임오군란 이후 일본의 각계에서 제기된 한반도 중립화론에 대하여 그 성격을 종합 검토해 보면, 한결같이 패권주의를 추구하는 국가가 자력으로 조선을 지배하기가 어렵게 되었을 때 경쟁관계에 있는 세력들과 제휴하여 어느 단일 세력에 의하여 독점지배되는 것을 방지하려고 중립화를 활용하는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일본에서의 한반도 중립화론에 대하여 ‘그것은 오로지 열강의 세력균형으로써 조선의 독립을 실현시키고자 한 일본의 1880년대 대조선 정책의 주류적 위치였다’라는 소수의 반론이 있지만,0015) 실제에 있어서는 침략의도를 대전제로 한 일시적인 제안으로 조선의 안전보장과 독립을 근본적으로 부정하였을 뿐이다.

0001)日本外務省 編,≪日本外交文書≫15(東京:日本國際連合會, 1947∼1954), № 102∼107, 163∼176쪽.
0002)井上毅傳記編纂委員會 編,≪井上毅傳≫-史料編 1(國學院大學圖書館, 1966), 312∼313쪽.
0003)≪梧陰文庫(井上毅文書)≫マイクロフイルム № A-856(원본은 國學院大學圖書館 소장).
0004)≪井上毅傳≫-史料編 4(1971), 617∼619쪽, 明治 15년 7월 7일부 書簡.
0005)≪日本外交文書≫15, № 107, 165∼173쪽.

市川正明 編,≪日韓外交史料(二):壬午事變≫(原書房, 1979), 177∼179쪽.
0006)平塚篤 校訂, 伊藤博文 編,≪秘書類纂-外交篇≫上(秘書類纂刊行會, 1934), 618∼620쪽.

이 문서 자체에는 의견서라는 기록이 없지만 이를 설명하기 위한 별도 문서에 ‘영구중립에 관한 의견서 가운데 미심쩍은 점에 붙이는 응답’(같은 책, 620쪽)이라는 표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문제에 대하여 보아쏘나드가 무언가의 의견을 구하려고 쓴 것임을 알 수 있다(長谷川直子,<壬午軍亂後の日本の朝鮮中立化構想>≪朝鮮史硏究會論文集≫32, 東京:綠蔭書房, 1944, 148쪽의 주 57).
0007)≪秘書類纂-朝鮮交涉資料≫中(1936), 223∼229쪽.
0008)井上角五郞,<漢城之殘夢>(한상일 역·해설,≪서울에 남겨둔 꿈≫, 건국대출판부, 1993), 44쪽.
0009)≪秘書類纂-朝鮮交涉資料≫上, 260쪽.
0010)British Foreign Office, Japan:General Correspondence, 1856∼1905, Microfilm F.O. 46, 288 Vols. (Great Britain Public Record Office), Parkes to Granville, No. 128, Secret, Sep. 12. 1882.

Akten des Auswärtigen Amtes. A. 7168 Pr. 독일외무성문서 1882년 12월 1일.
0011)≪日本外交文書≫18, No. 202 附記. 357∼369쪽.

≪秘書類纂-外交篇≫上, 621∼624쪽.

高麗大學校亞細亞問題硏究所 編,≪舊韓國外交文書≫15:德案 Ⅰ(1966) No. 95, 49∼50쪽, No. 98, 51쪽.
0012)≪郵便報知新聞≫, 1882년 9월 13일 사설<日淸兩國ハ向後如何ニ朝鮮ヲ處置スべキカ 第一>·9월 14일 같은 사설<第二>·9월 19일 같은 사설<第六>.
0013)≪郵便報知新聞≫, 1882년 9월 20일, 위의 사설<第七>.
0014)≪東京橫濱每日新聞≫, 1882년 9월 10일 사설<日韓及ビ淸國ノ關係ヲ論ズ 第二>·9월 17일 같은 사설<第五>.
0015)大澤博明,<朝鮮永世中立化構想と近代日本外交>(≪靑丘學術論集≫12, 東京:韓國文化硏究振興財團, 1998), 179∼229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