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45권 신문화 운동ⅠⅠ. 근대 교육운동1. 근대 교육의 성립1) 근대 교육 성립의 역사적 배경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1. 근대 교육의 성립
          • 1) 근대 교육 성립의 역사적 배경
            • (1) 개화정책의 추진과 신교육 수용론 대두
            • (2) 동도서기주의적 신교육 수용의 실패
            • (3) 선교사의 교육활동과 교육평등의식 계몽
            • (4) 변법개화파의 국민교육론 전개
          • 2) 근대적 국민교육제도의 성립
            • (1) 교육제도와 관리등용제도의 개혁
            • (2) 근대적 국민교육제도 정립
        • 2. 근대 교육의 발전
          • 1) 근대 교육의 이념
            • (1) 실용주의 교육 지향
            • (2) 자강주의 교육
          • 2) 근대 학교의 설립
            • 가. 정부의 근대학교 설립
            • 나. 전·현직관료 및 황제 측근세력들의 사립학교 설립
            • 다. 개항장 상인 및 유지 신사들의 사립학교 설립
            • 라. 요호·부민·유생 층의 학교 설립
            • 마. 선교사들의 학교 설립
            • 바. 구국계몽단체·학회 및 관련인사들의 학교 설립
            • 사. 불교와 천도교 종단의 사립학교 설립
          • 3) 근대 학교의 교육내용
        • 3. 근대 교육의 확대
          • 1) 통감부의 교육 침략
            • (1) 우민화교육 방침
            • (2) 동화정책의 방법으로서의 보통학교 확장
            • (3) 일본어 보급
            • (4) 교과를 통한 친일교육
            • (5) 일본인 교원배치
          • 2) 민족사학의 발전과 설립 이념
            • (1) 민족사학의 발전
            • (2) 민족사학의 설립이념
          • 3) 여자 교육의 발전
            • (1) 미션여학교의 설립과 교육
            • (2) 관립여학교의 설립과 교육
            • (3) 민간인 사립여학교의 설립과 교육
          • 4) 고등교육의 성립
            • (1) 민립대학의 설치운동과 경성제국대학의 설립
            • (2) 기독교계 전문학교의 대학승격운동
          • 5) 교육내용의 추이
            • (1) 애국교과와 훈화를 중심으로 한 교육내용
            • (2) 창가와 체육을 중심으로 한 교육내용
        • 4. 교육구국운동의 추진
          • 1) 근대 교육의 성격
            • (1) 근대 교육의 성격
            • (2) 근대 민족 교육의 확대
          • 2) 구국교육운동의 실태
            • (1) 사립학교의 설립
            • (2) 설학취지문의 검토
            • (3) 간도지역의 민족교육운동
            • (4) 역사교육의 확대
            • (5) 체육교육의 보급과 운동회의 개최
            • (6) 애국가와 독립가의 보급
        • 5. 근대적 교과서의 편찬
          • 1) 근대 교육 성립기의 교과서
          • 2) 근대 교육의 발전과 교과서
            • (1) 근대학교의 교육내용<교과목>
            • (2) 정부의 교과서 편찬
            • (3) 민간인에 의한 교과서 편찬과 실태
            • (4) 교과서의 내용
          • 3) 통감부하의 교과서
            • (1) 일제의 교육침략정책
            • (2) 학제의 개편
            • (3) 통감부의 교과서 통제
            • (4) 구국교육운동과 민간의 교과서 편찬
            • (5) 교과서의 실태
            • (6) 교과서 사용 실태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1. 근대 학문의 수용
          • 1) 서양 근대 학문의 세 수용통로
          • 2) 서양철학의 수용
          • 3) 사회진화론의 수용
          • 4) 사회과학의 수용
          • 5) 서양 인문사회과학 수용의 특징과 문제점
        • 2. 한국어 연구
          • 1) 언문일치의 첫걸음
            • (1) 두 문체의 대립
            • (2) 국한문체
            • (3) 국문체
          • 2) 초기의 국문 연구
            • (1) 지석영의<국문론>과<신정국문>
            • (2) 리(이)봉운의≪국문졍리≫(국문정리)
            • (3) 주시경의<국문론>과 그 뒤의 연구
            • (4) 이능화의<국문일정의견>
          • 3) 국문연구소의 업적
            • (1) 국문연구소에 관한 자료
            • (2) 개설의 동기와 목적
            • (3) 직원과 운영
            • (4) 사업의 경과
            • (5)<국문연구 의정안>
            • (6) 각 위원의 연구안
          • 4) 문법의 연구
            • (1) 서양인의 연구
            • (2) 유길준의≪대한문전≫
            • (3) 주시경의≪국어문법≫
            • (4) 어윤적의 연구
            • (5) 김희상의≪초등국어어전≫
          • 5) 주시경의 국어 연구
        • 3. 한국사 연구
          • 1) 연구의 필요성
          • 2) 근대 한국사 인식의 추이
            • (1) 실학시대 후기에서 개항기의 역사학
            • (2) 개화기 계몽주의 역사학
          • 3) 민족주의 사학의 성립
            • (1) 일제 식민주의 사학의 침투
            • (2) 근대민족주의 사학의 성립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1. 근대 문학의 발전
          • 1) 개화기의 시대적 과제와 문체, 문학장르의 관련
            • (1) 위정척사파
            • (2) 온건보수파
            • (3) 개화자강파
            • (4) 일본체험파
            • (5) 민중계몽파
            • (6) 친기독교 개화파
          • 2) 개화기의 시가 장르
            • (1) 애국·독립가
            • (2) ‘사회등’ 가사를 비롯한 우국가
            • (3) 민요 개작
            • (4) 개화기의 시조와 가사
            • (5) 신체시
          • 3) 개화기의 서사 장르
            • (1) 신소설
            • (2) 역사·전기 소설
            • (3) 토론체 소설
        • 2. 근대 예술의 발전
          • 1) 음악
            • (1) 한국음악사회 구성
            • (2) 근대음악사의 전개
            • (3) 새로운 과제
          • 2) 미술
          • 3) 연극과 영화
          • 4) 무용
            • (1) 무도의 등장
            • (2) 권번춤의 무대화와 가무극의 번성
          • 5) 체육
            • (1) 학교체육의 전개양상
            • (2) 근대 스포츠의 소개
            • (3) 체육단체 결성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1) 개화정책의 추진과 신교육 수용론 대두

 중상주의와 산업혁명을 통해 그 부를 축적해 온 서구 자본주의 열강의 끊임없는 통상요구를 거절하던 조선은 1876년 서구와의 교역을 먼저 시작하여 힘을 기른 일본의 강압적 요구를 수용, 강화도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새로운 국제질서에 편입되었다. 조선은 이후 서구 여러 나라와 수호조약을 체결하고 통상교역을 계속 확대하게 되었고, 영토의 확장과 식민지 개척을 도모하고 있던 제국주의 세력의 침략 위협에 직면하였다.

 농업중심의 자급 자족적 경제와 유교적 가치관에 기초한 사대교린의 국제질서에 자족하던 조선사회는 근대 자본주의와 국민·민족국가들간에 전개되고 있던 약육강식의 새로운 국제질서에 대응하여 자강을 통한 국가와 민족의 독립을 지켜야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었다.

 조선이 부강한 국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서구의 선진기술을 배워들여 근대 산업을 발전시키고 새로운 무기로 무장된 군대를 양성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따라서 조선정부는 서구문물을 먼저 수용한 일본과 청나라의 실상을 파악하는 한편, 이들 나라들이 서구문물을 수용했던 방식에 따라 서구의 새로운 문물을 수용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조선정부는 이른 바 개화정책을 추진하게 되었다.

 서구와의 교역을 확대하고 새 문물을 수용하기 위한 개화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그에 적응할 수 있는 새로운 의식과 많은 인재가 필요하였다. 그러나 재래의 성리학적 가치관과 교육으로 길러진 인재들은 오히려 개화정책의 추진에 장해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따라서 개화정책을 효과적으로 추진해야하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은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교육개혁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1876년 일본과 근대적 수호조약을 맺은 조선정부는 같은 해 4월 金綺秀를 정사로 하는 제1차 수신사를 일본에 파견하였다. 김기수는 각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던 근대 일본의 많은 지도자와 교류하고 또 여러 시설을 시찰한 뒤 그 견문을 상세히 기록한≪日東記游≫를 국왕 고종에게 제출하였다. 여기에서 김기수는 같은 시기의 일본교육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보고하였다.003)

 이른바 학교에서 사람을 가르치는 방법은 사대부의 자제로부터 민의 준수한 자에 이르기까지 7, 8세 때부터 가르치는 데, 書를 배우고 글자를 익히게 한다. 먼저 일본 글자를 가르치고 다음에 한자를 가르친다. 16세가 되면 다시는 경전을 읽히지 않으며, 크게는 天文, 地理, 句股(數學)의 學, 작게는 農器, 軍器 도형의 說을 눈으로 조사하고 손으로 점검하며 잠시도 그치지 않는다. 또한 여자에 이르기까지도 학교가 있어서 크게는 天·地·兵·農, 작게는 詩·文·書·畵에 대하여 모두 한 가지 재주를 오로지 한다. 美日和親條約 체결 이후 일본은 이미 의무교육제를 실시하고 있었는데 이를 김기수가 견학한 것이었다.

 제1차 수신사에 이어 1880년 金弘集을 정사로 하는 제2차 수신사가 일본을 방문하여 일본의 새로운 문물을 시찰하고 귀국하였다. 김홍집은 일본방문 길에 중국의 사상가 鄭觀應이 쓴≪易言≫을 얻어 돌아왔다. 이는 개화와 자강에 관한 저술로 복간본과 번역본까지 간행되어 국민들에게 보급됨으로써 상당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조선정부는 이 해 말(1880. 12) 새로운 정세에 부응하기 위하여 관제개혁에 착수하였고, 다음해에는 청나라에 金允植을 領選使로 하여 38명의 학도와 工匠을 파견하여 군기제조를 학습케 하였다. 한편 일본에도 紳士遊覽團을 파견하여 일본의 새로운 문물을 시찰하게 하였다.004) 일본과 청이 받아들인 서구의 새로운 문물을 배워 국가자강을 이루려는 의도에서였다. 개화사상의 鼻祖인 朴珪壽로부터 일찍이 청나라가 서양문물을 받아들여 실리를 얻고 있음을 보고 받은 고종은 이들 나라로부터 서양의 문물을 배워들이려 하였다.005) 그리하여 고종은 개화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개항 이후 국왕과 개화파 정부의 개화정책에 불안을 느낀 유생들은 김홍집이 가지고 들어온≪朝鮮策略≫을 구실로 위정척사운동을 강렬하게 전개하였다. 서구사상과 자본주의세력의 위협에 대항하여 성리학적 가치와 그에 기초한 조선왕조를 지키려 했던 보수 유생들은 정부의 통상·개화정책이 국가와 민족을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고 주장하며, 구미제국과의 수호·통상에 반대하는 상소운동을 전개하였다. 이와 더불어 개화정책의 추진과정에서 소외된 구식군인들이 민씨 척족들의 부정부패를 계기로 이른바 壬午軍亂을 일으켜 대원군을 옹립하고 개화정책에 반항하였다.

 그러나 청나라의 무력지원으로 임오군란을 평정한 고종은 개화정책의 계속적 추진을 다음과 같이 천명하였다.

저들의 敎는 사특하니 마땅히 음탕한 소리나 치장한 여자를 멀리 하듯이 해야 하지만, 저들의 器는 이로우니 진실로 이용후생을 할 수 있다면 농업·양잠·의약·병기·배·수레의 제도는 무엇을 꺼려서 피하겠는가. 그 교는 배척하되 그 기는 본받는 것이 진실로 병행하여 거스르지 않는 것이다. 하물며 강약의 형세가 이미 크게 차이가 벌어졌는데, 만약 저들의 기를 본받지 않는다면 어떻게 저들에게 모욕당하고 저들이 욕보이는 것을 막을 수 있겠는가(≪高宗實錄≫, 고종 19년 8월 5일;金允植,≪雲養集≫권 5, 綸音布諭·曉諭國內大小民人 임오).

 즉 고종은 김윤식 등의 도움을 얻어 東道西器論의 입장에서 서구의 문물을 배워들여 국가자강을 이루려 하였다.

 일찍이 박규수의 문하에 출입하면서 개화사상에 눈을 떴던 김윤식은 1881년에는 영선사로 청나라에 건너가 새로운 무기 제조술을 배워들이는데 진력하고 있었다. 김윤식은 영선사로 청나라의 天津에 파견되어 양무파 인사들과의 접촉을 통해 그의 생각을 더욱 가다듬게 되었다. 김윤식은 許其光과의 필담에서 富民 위주로 추진되는 일본의 개화자강정책에 의문을 품고 서양과 사정이 다른 우리 동양은 서양과 같은 법을 수용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일본의 부는 國債로 채워졌다는 劉含芳의 지적을 듣고006) 일본의 개화자강방식을 따르려는 金玉均·朴泳孝 등과는 생각을 달리하게 되었다. 즉 김윤식은 청나라의 양무론적 개화방식이 조선에 적합하다고 보아 김옥균 등과는 달리 점진적 개화노선을 선택하게 되었다.

 김윤식 등을 중심으로 하는 양무론적 개화파는 기존의 전통적 지배질서와 이해관계를 온존시키면서 외형적 부국강병을 이룩하려 하였다. 즉 군주전제권을 강화하고 양반지주와 봉건적 특권상인층을 근대적 자본가로 전환시켜 농업증산과 상업발전을 촉진함으로써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에 대응하고 독립을 지킬 수 있는 부강한 근대국가를 이룩하려 하였다. 그리하여 이들은 서구의 사상과 사회체제의 수용은 거부하고 서양기술의 수용과 시설의 도입만을 추진하였다. 즉 동양의 사상과 사회체제는 유지하면서 서양의 기술만을 도입하자는 주장이었으므로 이를 東道西器論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동도서기론의 입장에서 개화를 추진하고자 한 대표적 인물 중의 하나인 김윤식은 서양의 부강이 학교교육이 성한데 있다고 보고 먼저 時務의 학으로 인재를 양성한 뒤 이들을 관인으로 등용하여 국가 부강을 이룩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007)

 이와 같은 입장은 고종에게 올려진 개화파 유생과 전·현직관료들의 상소에 의해 더욱 뒷받침되었다.

 충주 幼學 池錫永은 1882년 8월 서양의 과학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그것을 연구하고 교육시키는 연구기관의 설치를 주장하였다. 그는≪萬國公法≫을 비롯하여≪朝鮮策略≫·≪博物新編≫등 개화에 필요한 모든 서적들을 여러 사람에게 열람시키고, 또 수차 농기구·직조기·화륜기·무기 등을 사들여 각 도의 모든 고을로부터 유생과 관리들을 각각 1명씩 선출하여 개화관계 서적과 기계를 연구케 하자고 상소하였다.008) 또 典籍 卞鋈은 국왕에게 기독교는 엄금하되 서양의 학문과 기술은 수용하여야 한다고 상소하였다.009) 出身 尹善學도 군신·부자·부부·붕우·장유의 도는 지키고 舟·車·軍·農·器械와 관계되는 富國之術은 받아들이자고 상소하고 있다.010)

 즉 이와 같이 일부 개화파 유생과 전·현직관료들은 동도서기론적 입장에서 정부가 하루 빨리 서구의 기술과 교육 등을 받아들여 개화자강을 이루어야 한다고 상소하였다. 이들은 개화관계 서적의 간행에서부터 외국어의 교수, 외국인 기사의 채용, 훈련원의 설치, 상회소와 국립은행의 설치, 탄광의 채굴, 화륜선의 건조, 군항의 설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부국강병을 위한 정책을 상소하였다.

 이는 하루 빨리 서구 문물을 수용하여 부국강병을 이루어야만 국가를 보존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새로운 문물 수용을 위한 개화정책의 추진에는 새로운 의식을 가진 인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였으므로 고종은 1882년 12월 28일(음력) 8道4都에 綸音을 내려 양반도 상업에 종사하고 農工商賈의 자제라도 학교에 입학할 것을 허락하며 출신의 귀천을 논하지 말고 才學의 如何를 보도록 諭하였다.011)

 고종의 개화의지를 지원하는 개화상소가 이어지는 한편에서 보수세력의 척사운동도 강렬하게 일어나고 있었으므로 개화파 인사들은≪漢城旬報≫를 창간하고 개화의 필요성을 계몽하는데 진력하였다.012) 또한 개화파는 교육개혁을 통해서 만이 개화가 가능하다고 믿고 있었으므로≪한성순보≫는 서양의 근대 교육제도와 교육상황을 상세히 소개하였다.013)

 ≪한성순보≫에서는 첫째, 서양의 국민교육제도를 소개하면서 교육사무는 국가에서 장악하고 교육심의기관을 두어 자문을 구하지만 어디까지나 교육문제에 대한 결정은 국가에서 한다고 하며 국가위주의 교육을 소개하고 있다. 서양제국 중에서도 특히 국가의 교육통제가 강한 프랑스의 교육제도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곁들이고 있다. 그리고 영국·프랑스·독일·스페인·오스트리아 등의 학교에 대해 소개하고 소학·중학·대학교의 단계적 진학이 제도화되어 피교육자의 발달정도에 따라 단계별 학습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특히 소학교 교육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서양 여러 나라의 소학교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소학교육이 국민교육의 기초로서 의무교육제도에 의해 뒷받침된다는 것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실업교육기관인 농상공학교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014) 다시 말해서≪한성순보≫의 간행을 관장하게 된 洋務論的 개화파는015) 서구문물의 수용을 통한 부강한 국가의 건설을 추구하면서도 교육에 있어서는 국가위주의 교육을 추구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국민계몽을 통해서 부강한 국가를 건설할 수 있다고 보았으므로 서구 여러 나라의 국민교육을 소개하고 실용주의 교육을 주장하였다.

003)金綺秀,≪日東記游≫권 4, 還朝(≪修信使記錄≫, 國史編纂委員會, 1971, 108쪽).
004)李光麟,<開化思想의 發生과 그 展開>(≪韓國史講座≫Ⅴ, 近代篇, 一潮閣, 1981), 121∼136쪽.
005)姜在彦,<朴珪壽의 思想과 開國問題>(앞의 책), 176∼191쪽.
006)金允植,≪陰晴史≫상, 是日軍機所與劉鄕林談草(≪韓國史料叢書≫6, 國史編纂委員會, 94∼97쪽).
007)金允植,≪續陰晴史≫권 4, 私議 16條, 養才編, 고종 26년 윤2월 8일.
008)≪承政院日記≫, 고종 19년 8월 23일.
009)≪承政院日記≫, 고종 19년 10월 7일.
010)≪承政院日記≫, 고종 19년 12월 22일.
011)≪高宗實錄≫, 고종 19년 12월 28일.
012)李光麟, 앞의 글 참조.
013)≪漢城旬報≫, 1884년 3월 8일,<各國學業所同>.
014)魯仁華,≪大韓帝國時期 官立學校 敎育의 性格 硏究≫(이화여대 박사학위논문, 1988).
015)李光麟,<漢城旬報와 漢城週報에 대한 一考察>(≪韓國開化史硏究≫, 一潮閣, 1969), 60∼102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