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함남 영흥 사립 문명학교 애국창가교육투쟁
함남 영흥군 홍인면 소재 사립 문명학교 교사인 李學龍은 경성의 보성학교에서 학업을 마친 후 이 학교에 적을 두었다. 이학용은 학생들에게 애국심과 민족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그 일환으로 1915년 10월부터 매주 토요일마다 학생들에게 창가를 가르쳤다. 이학용은 보성학교시절 얻었던≪애국창가집≫을 사용하였는데, 민족적인 내용이 담긴 창가가 많은 책이어서 이를 사용하여 애국사상을 고취시키는 데 주력하였던 것이다. 이후 車南奎 등 문명학교 학생 수명이 창가를 필기해 학교에서 함께 부르곤 했다. 1916년 말에 발각되어 피체되었다.
문명학교 창가집에 실린<독립군가>중에는 “요코하마·오사카를 攻陷하고 동경으로 공격해 들어가 동서남북 적을 쳐부수고 국권을 회복할 우리독립군, 凱歌와 만세의 소리는 천지를 흔든다”라는 가사의 곡도 있다.281) 이처럼 직접적으로 일본 본토를 공략해 일제를 단 한번에 멸망시켜 조국의 해방을 도모하려는 결의에 찬 의지를 다지려는 의도를 담은 경우가 당시 독립군가의 일반적인 특징이었다. 1910년대에 이르러 독립전쟁론이 확고한 독립운동방략으로 정립되면서 이를 민족운동가 뿐 아니라 민족구성원 모두에게 심어주려는 의도가 독립군가로 표현되었던 것이다. 또한 이런 의지의 표현인 독립군가가 학생들에게 교수됨으로써 민족교육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었다고 하겠다.
281) | 姜德相,≪現代史資料≫25, 18∼1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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