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2. 봉오동승첩과 청산리대첩1) 봉오동승첩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1. 문화정치의 실상
          • 1) 경찰기구의 강화
            • (1) 보통경찰제의 확립
            • (2) 신간부의 선정과 보통경찰의 기능
          • 2) 지방제도의 개편
            • (1) 동화정책하의 참정권 문제
            • (2) 지방제도의 개편과 자문기구의 설치
            • (3) 면제의 운영과 촌락정책의 실상
          • 3) 친일세력의 양성
            • (1) 친일과 협력이란 개념
            • (2) 친일파의 육성과 이용책
            • (3) 친일단체의 조직
        • 2. 수탈체제의 강화
          • 1) 총독부 산업정책의 전환
          • 2) 농업―산미증식계획
          • 3) 공업
            • (1) 식민지 공업구조의 형성
            • (2) ‘민족자본’과 조선인 자본
          • 4) 재정·금융
            • (1) 재정
            • (2) 금융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1. 임시정부의 수립과 초기 활동
          • 1) 임시정부 수립의 배경
            • (1) 세계대전의 종전과 민족자결주의
            • (2) 정부수립운동과<대동단결선언>
          • 2) 임시정부의 수립과 통합
            • (1) ‘국민대회’와 국내 정부수립운동
            • (2) 상해 임시정부의 성립
            • (3) ‘통합’ 임시정부의 출범
          • 3) 임시정부의 초기활동
            • (1) 외교·선전활동
            • (2) 국내조직과 활동
            • (3) 군사외교와 독립전쟁 준비
        • 2. 임시정부와 국민대표회의
          • 1) 국민대표회의 소집론과 ‘정부옹호파’의 반대운동
            • (1) 국민대표회의 소집배경과 참가세력
            • (2) 정부옹호파의 국민대표회 반대운동
            • (3) 제10회 임시의정원
          • 2) 국민대표회의의 전개 과정
            • (1) ‘비공식회의’와 제11회 임시의정원
            • (2) ‘삼방회의’와 국민대표회의의 결렬
          • 3) 국민대표회의에서의 쟁점
            • (1) 국민대표회의의 적법·부적법 문제
            • (2) ‘임정존폐’ 문제와 ‘임정법통론’
        • 3. 임시정부와 유일당운동
          • 1) 유일당운동의 배경과 계기
          • 2) 유일당운동의 추진과 임시정부의 개헌
            • (1) 임시정부 중심의 대당결성 주장
            • (2) 대독립당조직북경촉성회 결성
            • (3) 임시정부 개헌과 한국유일독립당상해촉성회 결성
            • (4) 의열단의 선언과 광동·무한·남경촉성회 결성
          • 3) 유일당운동의 발전과 임시정부 참여
            • (1) 한국독립당관내촉성회연합회의 결성
            • (2) 전위조직 중국본부한인청년동맹의 성립
          • 4) 유일당운동의 중단과 임시정부의 여당 결성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1. 독립군의 편성과 국내진입작전
          • 1) 시대적 배경
          • 2) 독립군의 편성
            • (1) 북간도지역
            • (2) 서간도지역
          • 3) 국내진입작전의 전개
            • (1) 독립군의 전력강화
            • (2) 국내진입작전
        • 2. 봉오동승첩과 청산리대첩
          • 1) 봉오동승첩
            • (1) 삼둔자전투
            • (2) 봉오동승첩
          • 2) 청산리대첩
            • (1) 일본군의 간도 침공
            • (2) 독립군의 근거지 이동
            • (3) 독립군의 전투준비
            • (4) 청산리대첩
            • (5) 청산리대첩의 전과와 의의
        • 3. 경신참변과 자유시사변
          • 1) 독립군의 북정
          • 2) 경신참변
          • 3) 자유시사변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1. 통의부의 결성과 활동
          • 1) 통군부의 성립과 남만한족통일회의
          • 2) 통의부의 결성과 활동
        • 2. 3부의 성립과 활동
          • 1) 참의부의 성립과 활동
          • 2) 정의부의 성립과 활동
          • 3) 신민부의 성립과 활동
        • 3. 재만 독립운동단체의 민족유일당운동
          • 1) 민족통일전선운동의 대두
          • 2) 3부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1. 의열투쟁의 의미맥락
        • 2. 의열투쟁 본격화의 배경과 계기
        • 3. 3·1운동 직후와 1920년대의 의열투쟁
          • 1) 3·1운동 직후와 1920년의 의열투쟁
          • 2) 1921년 이후의 의열투쟁 양상과 추이
            • (1) 의열단의 국내외 투쟁
            • (2) 재만 독립군의 국내외 의열투쟁
            • (3) 병인의용대의 의열투쟁
            • (4) 개인 단독의거의 흐름과 사례들
        • 4. 1930년대와 일제말의 의열투쟁
          • 1) 한인애국단의 의열투쟁
            • (1) 이봉창의 동경의거
            • (2) 상해거사의 추진과 윤봉길 의거
            • (3) 국내·만주거사 계획의 추진
          • 2) 재중국 아나키스트들의 의열투쟁
          • 3) 한국혁명당총동맹과 남자현의 의열투쟁
          • 4) 상해와 북경에서의 밀정·친일배 처단 활동
          • 5) 한국독립당과 민족혁명당의 의열투쟁
          • 6) 국내 의열투쟁의 불연속성과 지구성
        • 5. 일제 강점기 의열투쟁의 특징과 역사적 의의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봉오동승첩

 두만강 변경지대에서 전개한 독립군의 연이은 국내진입작전에 충격을 받은 일제는 북간도의 독립군 근거지를 수색, 탄압하기 위해 대병력을 동원하기에 이르렀다. 이른바 越江追擊大隊의 편성이 그것이다. 즉 함북 경성군 羅南에 사령부를 두고 두만강을 ‘수비’하던 일본군 제19사단은 三屯子에서의 참패를 설욕하고 독립군을 ‘토벌’하기 위해 ‘월강추격대대’를 편성, 불법으로 중국령 북간도를 침범하고자 하였다. 安川 소좌가 인솔하던 월강추격대대의 편성 내역은 다음과 같다.447)

보병 제73연대 제10중대(神谷 대위 휘하 70명의 혼성중대)

     기관총 1소대(紫山 준위 이하 27명)

보병 제75연대 제2중대(森 대위 이하 123명)

헌병대(小原 대위 이하 11명)

경찰대(葛城 경시 이하 11명)

 여기에는 또한 삼둔자전투에서 참패를 당한 新美 중대도 합류함으로써 대부대로 편성되어 있었다. 6월 7일 새벽 온성군 下灘洞에서 도강을 완료한 일본군은 독립군의 주요 근거지인 鳳梧洞을 향하면서 작전을 개시하였다.

 봉오동은 지금의 도문시에서 서북쪽으로 15리 떨어져 있으며 동북방으로 뻗은 25리에 달하는 긴 골짜기이다. 봉오동 계곡으로는 실개천이 흐르고 있으며, 골짜기 어구로부터 8리 떨어진 곳에 초모자 형의 높은 산이 있어 중국인은 이곳을 草帽頂子라 불렀다. 1920년 당시 봉오동에는 하촌·중촌·상촌 등 3개 한인마을이 자리잡고 있었다. 하촌에는 최진동 일가를 중심으로 15호, 중촌은 80여 호, 북골과 남골로 된 상촌은 60여 호의 인가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러한 봉오동은 지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모두 독립군의 근거지로서 적합한 곳이었다. 봉오동의 남쪽으로는 고려촌·安山村·恢幕洞(도문)·삼둔자 등의 마을들과 연계되어 있었으며, 서북쪽으로 40여 리 북상하면 대한군정서 소재지인 西大坡가 나오고, 서남쪽으로 16리 지점에 대한신민단의 근거지인 石峴이 있고, 북쪽으로 40여리 지점에 대한광복단의 근거지인 大坎子가 있었다. 봉오동은 동·서·북 삼면이 모두 산으로 둘러싸여 난공불락의 천연요새와도 같았다.448)

 홍범도를 총지휘관으로 하는 대한독립군과 신민단, 그리고 군무도독부 연합부대는 일본군의 침공에 대비해 주민들을 미리 산중으로 대피시켜 놓고 만반의 임전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곧 홍범도는 험준한 사방 고지에 독립군 각 중대를 매복시켜 놓은 다음 일본군을 포위망 속으로 유인해 섬멸시킨다는 작전을 세웠던 것이다.

 미리 세워놓은 작전계획에 따라 李化日이 인솔하는 독립군 소부대는 이날 새벽 미리 봉오동 밖의 고려령 북편 고지로 출동하여 유인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심야에 이화일 부대의 기습을 받은 일본군은 전열이 흐트러지는 등 제대로 응전치 못하고 고전하였다. 날이 밝아서야 전열을 재정비한 일본군은 부상병을 柔遠鎭으로 후송시키는 한편 부근 촌락을 수색하면서 오전에 봉오동 입구로 들어왔다.

 봉오동 하촌으로 들어온 일본군은 최진동의 집을 비롯한 마을 전체를 유린하여 미처 피난하지 못한 노약자를 살륙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들은 다시 중촌을 지나 오후 1시 경 상촌을 향해 진입하기 시작하였다. 일본군 전위부대가 사방 고지로 둘러싸여 있는 상촌 남쪽 300m 지점의 琵琶洞 방면으로 가는 갈림길까지 진입함으로써 독립군의 포위망 속으로 들어왔으나 매복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곧이어 주력부대도 기관총대를 앞세우고 역시 독립군의 포위망 속으로 깊숙히 들어오게 되었다.

 일본군 본대가 포위망 속으로 완전히 들어왔을 때 사령관 홍범도는 총 공격을 알리는 신호탄을 발사하였다. 삼면 고지에 매복하고 있던 독립군은 동시에 집중사격을 개시하였다. 불의의 기습공격을 받은 일본군은 필사적으로 포위망 탈출을 시도하는 한편 응전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유리한 지형을 차지한 독립군의 맹렬한 공격에 예봉이 꺾인 일본군은 시간이 흐를수록 사상자만 속출할 뿐이었다. 독립군의 완전한 포위망 속에서 3시간을 버틴 일본군은 드디어 퇴각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독립군의 제2중대장 姜尙模는 부하들을 이끌고 패퇴하는 일본군을 추격해 다시 큰 타격을 가하였다.449) 이것이 유명한 봉오동승첩의 전말이다.

 봉오동에서 독립군이 일방적 압승을 거둔 사실은 한·중·일의 여러 관련 자료나 정황으로 보아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전과에 대해서는 자료마다 큰 차이를 보여 그 실상을 명확히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상해 임시정부의 군무부는 독립군측의 전과를 일본군 사살 157명, 중상 200여 명, 경상 1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그리고 독립군측의 피해는 전사 4명, 중상 2명으로 확인하고 있다. 이 전과는 압승 사실을 내외에 과시하는 과정에서 다소 과장된 것으로 보인다.450) 그렇지만 승첩 직후에 보도된≪독립신문≫이나 중국≪上海時報≫의 기사를 통해서 볼 때 일본군 150여 명을 사살한 공전의 대승을 거둔 것은 사실로 확인된다.451) 이에 반해 일제의 전투보고서에서는 참패 사실을 철저하게 은폐하였을 뿐만 아니라, 독립군 30여 명을 ‘사살’하고 일본군측의 전사자와 부상자가 각각 1명에 불과한 것으로 실상을 철저히 왜곡시켜 기술하고 있다.452)

 봉오동승첩은 독립군과 일제 양측 모두에게 큰 충격과 영향을 주었다. 독립군측은 임시정부 군무부가 이 승첩을 ‘독립전쟁의 제1회전’이라 선언하였을 만큼 이를 계기로 사기가 크게 진작될 수 있었다. 이로써 독립전쟁에서의 승리 가능성을 확신한 독립군은 지속적인 독립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여러 독립군단간의 군사통일 노력을 더욱 경주하는 한편, 병력보충과 군비확충에 더욱 박차를 가하였다. 이와 같은 사기앙양과 전력증강은 장차 벌어질 일제 침략군과의 대규모 접전에서 승리를 담보하는 것이었다.

 한편 일제는 봉오동참패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일제는 그동안 독립군의 국내진입작전에 시달리면서도 정규군대를 투입하면 독립군을 쉽게 ‘진압’할 수 있는 민병 정도로 판단하고 있었다. 하지만 봉오동참패를 계기로 일제는 정예화된 독립군의 강력한 전력을 실감하고, 장차 독립군이 국내진입작전을 대규모로 결행하게 되면 식민지 통치에 심각한 위협 요인이 될 것으로 판단하기에 이르렀다.453) 결국 막강한 화력를 보유한 정규군대를 투입하고도 ‘예상밖으로’ 당한 봉오동의 충격적 참패는 독립군의 전력을 재평가하고 독립군 ‘초토화’를 위한 근본적 대책을 강구케 한 계기로 작용하였다. 봉오동승첩에 이어 벌어진 청산리대첩은 봉오동전투를 계기로 독립군과 일제 양측이 받은 영향과 충격의 소산이기도 하다.

447)<安川追擊隊ノ鳳梧洞附近戰鬪詳報>(독립기념관 소장), 三. 彼我兵力.
448)金春善,<1920年代 韓民族反日武裝鬪爭硏究에 관한 再照明>(≪韓民族獨立運動史論叢≫, 朴永錫敎授華甲紀念論叢刊行委員會, 1992), 566∼567쪽.
449)≪獨立新聞≫, 1920년 12월 25일,<北墾島에 在한 我獨立軍의 戰鬪情報>.
450)위와 같음.
451)≪獨立新聞≫, 1920년 6월 22일,<獨立軍勝捷>.

趙中孚 외 2인 編,≪近代中韓關係史資料彙編 5≫(國史館, 1967), 433∼434쪽.
452)<安川追擊隊ノ鳳梧洞附近戰鬪詳報>, 八. 彼我의 損害.
453)신용하,<봉오동전투와 청산리독립전쟁>(국사편찬위원회 편,≪한민족독립운동사≫4, 1988), 101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