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1. 1920년대 국내 민족주의 세력의 동향1) 1920년대 전반의 ‘문화운동’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1. 1920년대 국내 민족주의 세력의 동향
          • 1) 1920년대 전반의 ‘문화운동’
            • (1) 신문화건설, 실력양성론의 대두
            • (2) 청년회 운동
            • (3) 학교설립운동
            • (4) 물산장려운동
          • 2) 1920년대 중후반 자치운동의 전개와 민족주의 세력의 분화
            • (1) 자치운동론 대두의 배경
            • (2) 자치운동의 전개
            • (3) 자치론과 반자치론
        • 2. 조선공산당의 성립과 활동
          • 1) 사회주의사상의 도입
            • (1) 사회주의사상의 국내 도입과 수용
            • (2) 국외 전위정당의 결성과 활동
          • 2) 국내 무산계급 운동의 성장
            • (1) 사회주의 분파의 형성
            • (2) 꼬르뷰로 국내부와 화요파의 성립
            • (3) 오르그뷰로와 ‘13인회’
            • (4) 화요파와 민중운동자대회
          • 3) 조선공산당의 창건
            • (1) 조선공산당 1차당대회
            • (2) 조선공산당의 활동과 코민테른의<1925년 9월 15일 결정>
            • (3) ‘1·2차 조선공산당사건’과 조선공산당 2차당대회
            • (4) 조선공산당 3차당대회와 정치노선
          • 4) 조선공산당의 해체와 당재건운동
            • (1) 조선공산당의 해체와<12월테제>·<9월테제>
            • (2) 1920년대 말 당재건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1. 6·10만세운동
          • 1) 융희황제의 승하와 6·10만세운동의 태동
          • 2) 해외의 6·10만세운동 계획과 추진
          • 3) 국내의 6·10만세운동 추진과 발각
          • 4) 학생들의 만세시위 추진
          • 5) 만세시위의 전개와 성격
            • (1) 서울의 만세운동
            • (2) 지방의 움직임과 만세시위
          • 6) 6·10만세운동의 이념
          • 7) 6·10만세운동과 그 영향
        • 2. 신간회운동
          • 1) 창립 배경
          • 2) 신간회의 창립
            • (1) 사회주의자들의 신간회운동론
          • 3) 복대표대회와 신간회의 정비
            • (1) 복대표대회 개최와 규약 개정
            • (2) 복대표대회 선출 간부진의 성격
          • 4) 지회의 설립과 활동
            • (1) 지회의 설립
            • (2) 지회의 성격과 활동
          • 5) 신간회의 해소
            • (1) 신간회 해소론
            • (2) 신간회지회의 해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1. 농민운동
          • 1) 일제시기 농민운동의 성격
          • 2) 일제의 농업정책과 한국 농민의 처지
          • 3) 농민운동 조직의 발전
          • 4) 농민운동의 전개
            • (1) 1920년대 전반기
            • (2)1920년대 후반기
          • 5) 1920년대 농민운동의 특징
        • 2. 노동운동
          • 1) 노동운동 전개의 배경
            • (1) 노동자계급의 상태
            • (2) 사회주의의 보급
          • 2) 노동조합의 조직
            • (1) 전국적 노동조합
            • (2) 지방 노동조합의 조직
            • (3) 산업별 노동조합의 조직
          • 3) 노동조합의 조직 내 사업과 공장 내 활동
          • 4) 노동조합의 후생복지 사업 및 소비자운동
          • 5) 노동조합의 작업부와 생산조합의 조직
          • 6) 노동조합의 문화활동
            • (1) 노동자 교육활동
            • (2) 언론·출판 활동
            • (3) 연예·체육 활동
            • (4) 봉건적 사회제도·문화 타파운동
          • 7) 노동조합의 국내적·국제적 연대
            • (1) 국내에서의 민족·민중 연대
            • (2) 세계 노동자계급과의 동지적 연대
          • 8) 노동자들의 파업투쟁
            • (1) 1920년대 전반기 파업투쟁
            • (2) 1920년대 후반기 파업투쟁
            • (3) 1929년의 원산총파업
        • 3. 여성운동
          • 1) 국내외 항일여성운동
            • (1) 국내 항일여성운동
            • (2) 해외 항일여성운동
          • 2) 한국여성운동의 확대와 발전
            • (1) 서울의 여성계몽교육운동
            • (2) 지방의 여성계몽교육운동
            • (3) 기독교 여성의 여성운동:조선여자기독교청년회와 조선여자
          • 3) 여성 경제의식 성장과 경제자립운동
            • (1) 부녀들의 조선물산장려운동
            • (2) 여성의 경제적 자립활동
          • 4) 사회주의 여성운동의 대두와 확대
            • (1) 조선여성동우회의 조직과 활동
            • (2) 사회주의 여성운동의 분파적 확대
            • (3) 사회주의 여성운동의 지방 확대
          • 5) 근우회의 조직과 활동
            • (1) 근우회 조직의 배경
            • (2) 근우회의 창립과 이념
            • (3) 근우회 활동과 그 성격
            • (4) 근우회의 해소
        • 4. 형평운동
          • 1) 형평사의 창립배경
          • 2) 형평사의 창립
            • (1) 형평사의 창립 과정
            • (2) 형평사 창립에 대한 사회의 반응
          • 3) 형평사의 분열과 그 극복
            • (1) 형평혁신동맹의 창립
            • (2) 조선형평사중앙총본부로의 합동
          • 4) 형평사의 조직
            • (1) 중앙본부의 조직
            • (2) 지분사의 조직
            • (3) 형평사 조직의 확대
            • (4) 하위단체의 조직과 활동
          • 5) 형평사의 활동
            • (1) 차별철폐와 인권신장운동
            • (2) 생활생존권 수호운동
            • (3) 형평사원의 교육과 계몽활동
            • (4) 지방순회 활동
            • (5) 상호부조활동
          • 6) 형평사의 해소
            • (1) 사회주의운동계의 방향전환론
            • (2) 형평사내 급진·온건파의 갈등
            • (3) 형평사 해소론의 대두
            • (4) 형평청년전위동맹사건과 형평사의 종언
        • 5. 청년운동
          • 1) 청년운동의 발생배경
            • (1) 청년의 역사적 등장
            • (2) 청년단체의 출현
            • (3) 조선청년의 현실
          • 2) 조선청년회연합회와 초기 청년단체의 활동
            • (1) 조선청년회연합회의 결성과 ‘문화운동’
            • (2) 초기 청년단체의 주요 활동
          • 3) 조선청년총동맹과 청년운동의 조직적 진출
            • (1) 전조선청년당대회와 청년운동의 분화
            • (2) 조선청년총동맹의 결성과 ‘무산계급 청년단체’의 확산
            • (3) 청년단체의 주요 활동
          • 4) 청년운동의 방향전환과 민족협동전선
            • (1) 조선청년총동맹의 ‘신운동방침’
            • (2) 청년단체의 주요 활동
          • 5) 고려공산청년회와 사회주의 청년운동
            • (1) 사회주의 청년운동의 출현
            • (2) 고려공산청년회의 결성과 조직 변화
            • (3) 고려공산청년회의 청년운동 방침과 주요 활동
          • 6) 조선총독부의 청년단체에 대한 대책
            • (1) 조선총독부의 청년단체 지도방침
            • (2) ‘중견청년’의 양성
        • 6. 학생운동
          • 1) 일제하 학생운동의 배경
            • (1) 근대학생운동의 본질
            • (2) 일제하 한국학생운동의 성격
          • 2) 1920년대 이전의 학생운동
            • (1) 개화·애국계몽운동기의 학생운동
            • (2) 2·8학생운동
            • (3) 3·1운동과 3·5학생운동
          • 3) 1920년대 학생운동의 기저
            • (1) 학생단체
            • (2) 동맹휴학
          • 4) 6·10학생운동
            • (1) 6·10학생운동의 사회적 배경
            • (2) 6·10학생운동의 추진
            • (3) 6·10학생운동의 전개
          • 5) 광주학생운동
            • (1) 광주학생운동의 사회적 배경
            • (2) 광주학생운동의 전개
            • (3) 광주학생운동의 전국적 확대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1. 1920년대 국내 민족주의 세력의 동향

1) 1920년대 전반의 ‘문화운동’

(1) 신문화건설, 실력양성론의 대두

 3·1운동의 열기가 파도처럼 한차례 지나가고, 총독부 당국은 소위 ‘문화정치’를 표방하면서 최소한의 출판의 자유를 허용하였다. 이에 따라 간행되기 시작한 여러 잡지와 신문의 초기 지면은 이른바 ‘개조론’과 ‘신문화건설론’으로 장식되었다.

 개조론이란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전 세계는 정의와 인도, 자유와 평등, 민중본위와 노동본위의 세계로 개조되고 있으니, 이 개조의 시대를 맞이하여 조선민족도 개조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 그 골자였다. 개조론자들은 조선의 문화는 너무나 시대에 뒤떨어져 있으며, 따라서 조선민족이 세계개조의 시대적 기운에 부응하여 살아남기 위해서는 ‘조선사회의 개조’가 필요하다고 보았던 것이다.001) 그리고 이같은 개조를 위해 신문화의 건설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신문화건설론 내부에는 이같은 정의와 인도, 민중본위와 노동본위의 세계를 지향하는 개조론의 입장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수의 조선 지식인들은 제1차 세계대전의 종전 이후 일시나마 정의·인도의 세계가 올 것을 기대했으나 그 기대는 곧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여기서 낙관론적인 입장에서의 개조론은 후퇴하고, 대신 실력양성을 주장하는 신문화건설론이나 반자본주의를 지향하는 사회주의운동론이 나오게 되었다.

 1920년대 초 실력양성론의 입장에서 신문화건설론을 가장 먼저 제창한 것은≪동아일보≫였다. 1920년 4월 창간된≪동아일보≫는 창간사에서 ‘문화운동’으로서의 민족운동을 제창하고, 그 사회적 방법으로서 ① 조선사람은 한 덩어리가 될 것, ② 널리 세계에 눈을 떠서 문명을 수입하고 완고함을 버릴 것, ③ 경제의 발달을 도모하고, 교육을 확장하며, 악습을 개량할 것 등을 제기하였다.002) 잡지≪개벽≫도 1920년 6월호에 실린 이돈화의 글<朝鮮新文化建設에 대한 圖案>에서 우승열패의 법칙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劣者가 된 조선인이 기사회생의 유일한 방법은 실력을 기르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실력양성을 위한 신문화건설을 제창하였다. 이 글은 신문화건설의 방법으로서 지식열의 제고, 신교육의 보급, 농촌개량, 도시의 발달, 전문가의 육성, 사상의 통일 등을 제시하였다.003) 물론 일부에서는 정의·인도·노동본위의 세상을 지향하는 신문화건설론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현대적 문명’의 수립이라고 막연하게 표현된 ‘근대사회로의 개조’를 지향하는 신문화건설론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리고 그러한 현대적 문명, 신문화의 건설 방법으로서 위에서 본 바와 같은 ① 신사상·신지식의 수용과 보급(신교육의 보급), ② 구습의 개혁, 즉 풍속개량, ③ 산업의 진흥 등이 주로 제기되었다. 결국 신문화건설론의 핵심은 실력양성론이었다. 실력양성론은 이미 한말 자강운동기(계몽운동기)부터 제기되어 1910년대에도 신지식층에 의해 주로 주장되어온 국권회복운동론이었다. 이같은 실력양성론이 1919년 3·1운동을 전후한 시기 일시적으로 잠복하였다가 다시 등장한 것이었다.

 실력양성론을 가장 강력하게 주장한 것은≪동아일보≫였다.≪동아일보≫는 1920년 8월 미국 하원의원단이 방한한 이후 본격적으로 실력양성론을 제기하였다. 미국 하원의원단은 내한하여 “학술과 공업에 노력하여 모든 것을 향상하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는데, 이후 이 신문은 이 말을 받아 “세계가 변화한다 하더라도 실력이 없으면 개인이나 민족이나 그 존재를 유지하기 어렵다”면서 실력양성론을 본격적으로 펼치기 시작하였다. 이어서 1921년 미국에서 열린 워싱턴회의(일명 태평양회의)에서도 한국문제가 전혀 거론되지 않자 “조선독립은 당분간 절망적이므로 우리들 조선인은 힘써 교육·산업과 문화적 시설에 열중하여 실력양성에 주력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하게 되었다.004) 결국 1922년경에 이르러 실력양성론은 더욱 세력을 얻어 나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모든 사람들이 실력양성론을 추종한 것은 아니었다. 워싱턴회의의 결과는 한편으로는 당시 점차 확산되어 가고 있던 사회주의자들의 세력도 강화시켜 주었고, 이는 결국 1921년 말에서 1922년 초 사이의 이른바 ‘사기공산당사건’, ‘김윤식사회장 사건’ 등을 빌미로 한 1922년 4월의 조선청년회연합회의 분열로 이어졌다. 1920년 이래의 문화운동 진영은 이제 그 이념에 따른 분화과정에 들어간 것이다. 이는 기존의 문화운동을 주도해온 민족주의계열에는 큰 충격이었다. 따라서 민족주의자들은 “일면은 내부의 단결을 튼튼히 하여 실력을 양성함에 전력해야 하고, 일면에서는 세계대세의 추향을 경솔히 실패의 편으로 해석하지 말고 더욱 전도의 광명을 기대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005) 즉 민족운동 진영의 단결을 강조하는 한편, 일부 운동가들의 사회주의로의 경사에 대해 경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3·1운동에 참가하여 구속되었다가 출소한 민족주의자들 가운데에서도 실력양성론에 본래부터 관심이 없었거나 혹은 그 한계를 인식한 이들은 실력양성론을 추종하지 않고, 대신 일제에 대한 비타협적 정치투쟁을 고집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러한 이들에 대해 실력양성론자들은 그냥 기회를 기다리거나 혹은 기회가 올 때마다 시위운동을 통하여 독립을 주장하는 것보다는 기회를 만들고 기회를 이용할 수 있도록 실력을 기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주장을 폈다. 즉 직접적인 독립운동보다는 ‘기회에 대비한 준비’로서의 실력양성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는 ‘기회에 대비한 실력양성론’이라 할만한 것이었다.006) 그러면 그들은 그 기회가 어떻게 온다고 생각하였을까. 그 기회는 물론 국제정세의 변화, 특히 미일간의 전쟁으로 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한말 이래 신지식층의 일관된 생각이었다. 물론 워싱턴회의 는 이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지만, 조선의 민족주의자들은 미국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버릴 수는 없었다. 1925년경 宋鎭禹는 “앞으로 4·5년 내에 태평양을 중심으로 한 풍운이 야기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그런데 주목되는 것은 이같이 미일간의 전쟁을 기대하면서도 그들은 “吾人은 외세의 파동보다 他力의 원조보다 중심세력의 확립과 자체세력의 해결을 절규”한다고 말하고 있었던 점이다. 즉 국제정세의 변화에 기대를 하면서도 이에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고 나름대로 자체세력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007)

 이와 유사한 논리는 李光洙의<민족개조론>에서도 전개되고 있었다. 그는 조선의 독립은 국제회의에서 조선인에게 선물하듯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조선인의 실력양성에 의하여 조선인이 독립할만한 자격을 가지게 된 연후에 국제적으로 승인받는 절차를 통하여 얻어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외교운동만을 통하여 독립을 얻으려는 것은 무모한 일로서 우선은 독립할 수 있는, 다시 말해서 문명한 생활을 경영할만한 실력을 기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주장하였다.008) “외세의존보다는 自力을 기르면서 독립의 기회를 준비한다”는 것이 1922년경 실력양성론자들이 내세운 슬로건이었다.

 이광수의 논리는 실력양성론자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철저하게 ‘先실력양성 後독립’을 주장하는 것이었는데, 이즈음 다른 실력양성론자들의 주장도 그 기본구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선실력양성 후독립론’은 결국 독립운동의 유보와 실력양성을 위한 문화운동의 우선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이는 일제에 대한 저항과 투쟁의 논리는 아니었다. 그것은 결국 일제가 허용한 범위내에서 합법적인 실력양성운동을 펴자는 논리가 되었던 것이다. 또 과연 식민지하에서 실력양성운동이 가능할 것인가 하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독립신문≫의 논설이나 申采浩의 논설 등은 바로 이러한 점들을 지적하면서 문화운동을 격렬히 비판하였다. 신채호는 “강도의 비위에 거스르지 아니할만한 언론이나 주창하여 이것을 문화발전의 과정으로 본다 하면 그 문화발전이 도리어 조선의 불행”이라고 지적하고, 문화운동자를 “강도정치하에서 기생하려는 주의를 가진 자”라고 비판하였다.009)≪독립신문≫에 실린 글은 “금일 한국의 內地에서 어디 가서 한국인 如意의 殖産을 장려할 수 있으며 지금 한국 천지에 어디 가서 한국인 자유적 문화운동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만일 있다 하면 그것은 부스러기뿐이요, 농락적 이해타산적으로 許하는 것일 뿐일 것이다”라고 비판하였다.010) 이들은 일제 지배하의 국내에서 실력양성, 문화향상을 내세우는 문화운동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001) 張道斌,<希望과 批評>(≪서울≫3, 1920. 4), 3∼4쪽.
002)≪동아일보≫, 1920년 4월 7일,<세계개조의 벽두를 당하야 조선의 민족운동을 논하노라>(4).
003) 이돈화,<朝鮮新文化建設에 대한 圖案>(≪개벽≫4, 1920. 9).
004)<太平洋會議ニ對スル金東成所感>(≪朝鮮治安狀況≫, 1922), 333쪽.
005) 이돈화,<人類相對主義와 朝鮮人>(≪開闢≫25, 1922), 6쪽.
006)≪동아일보≫, 1924년 9월 10일, 사설<自覺과 準備-오는 時代에 대하야->.
007)≪동아일보≫, 1925년 8월 26일∼9월 6일, 사설<世界大勢와 朝鮮의 將來>.

古下先生傳記編纂委員會 편,≪古下宋鎭禹先生傳≫(동아일보사, 1965), 190∼212쪽.
008) 李光洙,<民族改造論>(≪開闢≫23, 1922. 5), 46∼47쪽.
009) 申采浩,<朝鮮革命宣言>(≪개정판 丹齋申采浩全集≫下), 38∼40쪽.
010) K. H.,<獨立運動>(≪獨立新聞≫, 1922년 10월 30일).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