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서상파’의 당재건운동
김규열·이동휘는 블라디보스톡에서 김철수·윤자영·김일수·김영만·김영식·안상훈 등과 만나 당재건방침을 협의하고 1929년 3월 만주 吉林省을 중심으로 조선공산당재건설준비위원회 발기회를 조직하였다. 이들은 1929년 6월 20일 길림에서 재건준비회 발기회를 재건준비회로 개조하고 당재건에 박차를 가했다.
이들은 전국열성자대회를 소집하여 열성자대회에서 재건설과정에 있는 정치적·조직적 전국적 중앙을 산출할 것 등을 결의하고 기관지로서≪볼세비키≫를 대중기관지로서≪노력자신문≫을 발행하고 조선공산당 재조직문제, 전략과 전술문제, 토지혁명 등에 관한 기사를 싣고 당재건방침을 밝혔다. 1929년 8월에 김영만을 태평양노동조합대회에 파견하고 1929년 12월 말 김철수를 준비위원회 대표로 국내에 파견했다. 김철수가 국내에 파견됨으로써 준비위원회 대표는 윤자영으로 교체했다. 1929년 12월 말에는 코민테른에 김규열을 파견했다.215)
서울 상해파(서상파)의 조선공산당재건설준비위원회는 1930년 6월에 김일수를 조선에 파견하고 평양·경성·함흥·청진 등 주요 도시 및 산업지대의 공장과 농촌 각 지역에 지역책임자를 파견하여 당과 공산청년회 그리고 적색노동조합의 세포를 조직하려는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코민테른이 1930년 6월 12일 “조선공산당재건설준비회를 해체할 것, 소속 야체이카를 국제당 대표에게 넘길 것, 중국 지방에 있는 단체 및 시설은 전부 중국 당간부에게 넘길 것” 등을 지시한 사실을 알고 1931년 3월 21일 김일수·윤자영·오성세 등은 준비위원회를 해산할 것을 결정하고 조직을 조선좌익노동조합전국평의회준비회로 하여 사실상 당재건운동을 계속할 것을 결의했다.
215) | 최규진,≪코민테른 6차대회와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정치사상연구≫(성균관대 박사학위논문, 1997), 155∼15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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