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국사교과서1. 우리 민족과 국가의 발전(2) 나라를 지킨 조상들

[2] 강감찬

고려 시대에 우리 조상들은 북방 민족들의 침입을 어떻게 막아 냈는지 알아보자.

고려는 고구려의 옛 땅을 되찾기 위하여 북쪽으로 세력을 넓히려 하였다. 그런데 북방 민족들도 살기 좋은 고려 땅을 탐내어 남쪽으로 진출하려고 하였기 때문에 서로 맞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고려의 북쪽에 있는 거란족과 여진족은 자주 국경을 넘어와서 노략질을 하였다. 고려는 야만적인 거란보다는 송나라와 친교를 맺었다.

발해를 멸망시켰던 거란은 고려마저도 그들의 땅으로 만들려고 세 번에 걸쳐 침략하였다.

첫 번째 침략에서는 서희가 능숙한 외교 솜씨를 발휘하여 거란 장군과 담판을 지어 싸우지 않고 돌려 보냈을 뿐만 아니라, 강동 6주를 도로 찾았다. 거란의 두 번째 침략에서 고려는 많은 피해를 입었지만, 강화를 맺고 돌아가는 거란군의 길을 막아 크게 무찔렀다.

몇 년 후, 거란이 세 번째로 침략하였을 때, 고려의 강감찬 장군은 귀주(지금의 평안 북도 구성)에서 적을 크게 무찔렀다. 싸움에 진 거란 장군은 이렇게 감탄하였다고 한다. “한평생 싸움터에서 살았지만 이번같이 비참한 꼴을 당하기는 처음이다. 강감찬이 이렇게 전략에 밝은 명장인 줄은 몰랐다.”

세 차례에 걸친 거란의 침략을 무찌른 고려는, 외적의 침략을 막기 위해 성을 튼튼히 하고 힘을 더욱 기르려고 노력하였다. 천리 장성은 바로 이 때 만들어진 것이다.

낙성대(서울 관악구)   
강감찬 장군이 태어날 때 별이 떨어졌다는 곳이다.

고려는 그 후에도 여러 차례에 걸친 외척의 침략에 굴하지 않고, 온 겨레가 하나로 단결하여 그들과 맞섰다. 그 중에서도 특히 삼별초의 활약이 컸다. 삼별초는 원래 도적을 지키기 위하여 만든 특별 부대와 몽고군에 잡혀 갔다가 탈출한 병사들을 합쳐 만든 부대였다.

북쪽의 몽고가 고려까지 그 세력을 뻗치자, 이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수도를 강화도로 옮겼던 고려는 몽고군의 계속되는 침략을 막아 내기 힘들다고 판단하여 마침내 개경으로 돌아갔다. 이에 대하여 삼별초는 강화도를 포기하는 것은 굴욕적인 항복이라고 주장하여 끝까지 싸울 것을 다짐하였다.

강화도에서 진도로 근거지를 옮겨 세력을 키운 삼별초는, 전라도와 경상도 남쪽 해안에서 몽고군에게 계속 대항하였다. 백성들도 삼별초를 도와 몽고군을 몰아 내는 데에 힘썼다.

그러자 몽고군은 대규모의 군대를 동원하여 진도를 공격해 왔다. 삼별초는 용감히 맞섰으나, 힘이 모자라 제주도로 옮겨 싸우다 끝내 무너지고 말았다.

몽고군의 침입과 삼별초의 항쟁   

삼별초의 이러한 항쟁은 우리 민족의 꿋꿋한 기상을 잘 보여 준 본보기라 할 수 있다.

삼별초의 항쟁에서 우리가 본받을 점은 무엇인지 토의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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