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국사교과서1. 우리 민족과 국가의 발전(3) 역사를 빛낸 조상들

[1] 세종 대왕과 장영실

우리 문화 발전에 공이 큰 조상들에 대하여 조사해 보고, 그분들의 업적을 알아보자.

우리 민족은 옛날부터 우리말은 쓰고 있었으나, 오랫동안 우리 글자가 없었다. 그래서 중국의 한자를 사용하여 왔다. 그런데 한자는 그 수가 너무 많고 쓰기가 어려워, 배우기가 힘들었다. 또, 우리말을 표현하기도 어려웠다.

이러한 어려움에 대하여 우리 조상들은 우리말을 쉽게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신라 시대의 설총은 유학과 한문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하였다. 그러나 한자가 너무 어려워 백성들이 유학의 가르침이나 한문을 배우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이두를 만들었다.

이두는 한자의 소리와 뜻을 따서 우리말을 기록한 글자이다. 이두는 비록 한자를 이용한 것이기는 하였으나 비로소 우리말을 표현하여 적을 수 있게 되었다.

이두로 쓰인 글   
한자의 소리와 뜻을 따서 우리말을 기록한 글자로, 삼국 시대에 널리 사용되었다.

조선 시대에 이르러 세종 대왕은, 백성들이 어려운 한자를 쓰는 것을 늘 안타깝게 생각하였다.

‘우리말에 알맞고, 백성들이 쉽게 배울 수 있는 글자를 만들 수는 없을까?’

세종 대왕은 이런 생각 끝에, 궁중에서 학문을 연구하는 기관인 집현전에 유능한 학자들을 모았다. 그리고 그 학자들과 함께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구하며 우리글 훈민정음을 만들었다.

훈민정음 언해본(좌)과 용비어천가(우)   
훈민정음 언해본(좌)은 백성들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으로, 세종 대왕이 한글을 창제하고 붙인 이름이다. 용비어천가(우)는 훈민정음으로 쓴 최초의 글로, 왕실 조상의 역사를 노래한 글이다.
세종 대왕과 집현전 학자   
세종 대왕은 왕이 된 후에도 책을 열심히 읽었으며, 집현전 학자들이 근심 없이 학문을 연구할 수 있도록 돌보아 주었다.

세종 대왕은 훈민정음을 만들어 바로 세상에 알리지 않고, 3년 동안 용비어천가를 실제로 사용하는 모범을 보인 다음에, 세상에 널리 알렸다.

세종 대왕은 학문을 장려하고 보급하기 위해 나무 활자, 구리 활자를 만들어 여러 가지 책도 편찬하였다.

이 때 나온 책으로는 부처의 공덕을 기린 노래책, 농사짓는 방법에 관한 책, 예절에 관한 책, 역사, 지리, 의학에 관한 책 등이 있다.

또, 세종 대왕은 여러 가지 과학 기구에도 큰 관심을 가져, 장영실, 이천 등에게 과학 기구를 발명하도록 장려하였다.

장영실은 다른 신하들과 함께 여러 가지 과학 기구를 발명하였다. 이들은 농사짓는 데 이용하기 위해, 비가 온 양을 재는 측우기를 발명하였다. 이 측우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560년 전 세계 최초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백성들이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해시계와 물시계도 발명하였고, 천체의 움직임을 관측함으로써 시간을 알 수 있는 혼천의도 발명하였다.

세종 대왕은 장영실에게 시간에 따라 태양이 움직이고 계절에 따라 자연이 변화하는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치를 만들 수 있도록 경복궁 내에 연구실을 만들고 그 책임을 맡겼다.

장영실은 경복궁에 천문 기상의 변화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간의대를 설치하였다.

그는 몇 년 동안이나 연구에 몰두하여, 간의대를 새로운 여러 가지 천문 기구들로 가득 채웠다.

다음 사진들은 세종 대왕이 장영실, 이천 등을 시켜 만든 발명품들이다. 하나를 골라, 그 발명품들을 만든 목적과 쓰임에 대하여 조사해 보자.

측우기, 혼천의, 해시계, 물시계, 세종 대왕 때 만든 금속 활자(갑인자)로 찍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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