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국사교과서Ⅰ. 고대 사회2. 부족 국가의 성장과 그 문화

(1) 고조선의 성장과 그 문화

단군 신화

우리 나라에는 청동기 문화가 성립되면서부터 우세한 부족들이 대두하였다. 그들은 스스로를 하늘의 아들이라고 믿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아들인 환웅과 곰의 변신인 여인 사이에서 출생한 단군 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는 단군 신화를 가지기에 이르렀다.

단군은 제사장이라는 뜻이며, 왕검은 정치적 군장을 뜻하는 것이므로, 단군 왕검은 곧 제정 일치 시대의 족장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단군 신화에 나타난 토테미즘이라든지, 바람신이니, 구름신이니, 비신이니 하는 것은 이미 신석기 시대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나, 청동기 시대에 들어오면서는 이러한 여러 신들을 통솔하는 하느님(천신) 사상이 성립된 것이었다.

천신의 아들이 내려와 건국하였다고 하는 단군 신화는 우리 나라 최초의 건국 신화로서, 당시 고조선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세계관의 구실을 하였으며, 뒤에 민족 문화 전통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 왔다.

고조선 사회의 발달

우리 나라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 고조선은 주(周)와도 교섭을 가지면서 점차 동방 사회의 중심 세력이 되었다.

고조선 사회에는 8조 법금이 있었다. 그 내용은,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하고, 도둑질한 자는 노비로 만드는 등 엄격한 것이었다. 이러한 것은 원래 씨족 공동체 사회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법이었으나, 당시의 족장들은 그 엄한 법률로 사회 질서를 유지하면서 자기네들의 지배 세력을 강화하였다. 그들은 노비를 소유하였고, 청동기 장식을 단 수레를 타고 다녔다.

청동기 수레 장식품의 일부분   

고조선의 변천

처음에 산뚱 반도와 북중국 방면에 있던 동이족들은, 전국 시대에 중국에서 각 지방의 소국가들을 통합하는 파동이 일어나자, 만주와 한반도로 이동해 왔다. 이 시기에, 땅을 파고 목관을 매장하는 토광묘가 나타났는데, 그 부장품에서 청동기 문화와 철기 문화가 복합되기 시작한 것이 보이고 있다.

그 뒤, 진(秦)⋅한(漢) 교체기에 또 한 차례의 파동이 일어나면서 이주민이 우리 나라에 들어오게 되었다. 기원전 195년경, 고조선 북방에 와서 이주민 세력의 대표가 된 위만은, 고조선의 준왕을 쳐서 나라를 빼앗았다.

위만의 지배 세력은 보다 발달한 문화를 가진 이주민 집단으로, 아직 청동기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한 족장 세력들과 연맹을 맺으면서 성장하였고, 중국과 우리 나라와의 중계 무역으로 강성해졌다. 이 때, 북쪽 압록강 유역에는 예맥의 족장 남여가 일어나 고조선에 대항하였고, 남쪽 한강 이남 지역에 있던 진(辰)은 한과 직접 교통하려고 하였다.

한편, 한(漢)은 고조선이 자기네들의 무역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동방 침략 기지인 요동 지역을 위협하였으므로 대군을 이끌고 침입하였다. 고조선은 이에 대항하여 1년간이나 싸우다가, 왕검성(평양)이 함락되면서 망하고 말았다(B.C. 108).

한 군현의 세력

한은 고조선을 넘어뜨린 후 낙랑, 진번, 임둔, 현도의 4군을 두어 식민지로 만들었다.

그러나, 임둔군과 진번군은 한의 군현을 축출하려는 토착 세력에 견디지 못하여 곧 없어지고, 통구(퉁코우)의 현도군도 요동 방면으로 쫓겨갔다. 다만, 낙랑군과 후한 말기에 옛 진번군 지역에 설치되었던 대방군만이 오래 계속되다가, 고구려와 백제에게 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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