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국사교과서Ⅲ. 통치 구조와 정치 활동2. 중세의 정치[5] 대외 관계의 전개

몽골과의 전쟁

13세기 초, 오랫동안 부족 단위로 유목 생활을 하던 몽골족이 통일된 국가를 형성하면서 동북아 정세가 급격히 변하였다. 몽골이 금을 공격하고 북중국을 점령하자, 고려와 몽골의 접촉도 시작되었다. 고려에 대해 무리한 요구를 일삼던 몽골은, 고려를 방문했던 몽골 사신이 귀국길에 피살된 사건을 구실로 대군을 이끌고 침략하였다. 이로부터 고려는 40년 동안 몽골과 전쟁을 벌였다(1231~1270).

무신 정권은 수도를 강화도로 옮기고, 주민을 산성과 섬으로 피난시킨 뒤 항전과 외교를 병행하면서 저항하였다. 이 기간에 김윤후가 이끈 민병과 승군이 처인성(경기 용인)에서 몽골 장수 살리타(撒禮塔)의 군대를 물리치는 등 일반 민중의 항쟁이 이어졌다. 특히, 사회적으로 천대받던 노비와 부곡 지역의 주민까지도 몽골에 대항하여 싸웠다.

고려 조정에서 몽골과 강화를 맺자는 주화파가 득세하고, 최씨 정권이 무너지면서 전쟁은 끝났다. 몽골은 고려를 완전 정복하겠다는 처음의 계획을 포기하고, 고려의 주권과 고유한 풍속을 인정하였다. 이것은 고려의 끈질긴 저항이 안겨 준 결과였다.

고려 정부가 개경으로 환도하자, 대몽 항쟁에 앞장섰던 삼별초는 배중손의 지휘 아래 반기를 들었다. 이들은 장기 항전을 계획하고 진도와 제주도로 근거지를 옮기면서 대몽 항쟁을 계속하였다. 장기간에 걸친 이들의 항쟁은 몽골에 굴복하는 것에 반발하는 민중의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읽기자료

몽골과의 전쟁 때 활약한 백성

처음 충주 부사 우종주가 매양 장부와 문서로 인하여 판관 유홍익과 틈이 있었는데, 몽골병이 장차 쳐들어온다는 말을 듣고 성 지킬 일을 의논하였다. 그런데 의견상 차이가 있어서 우종주는 양반 별초(兩班別抄)를 거느리고, 유홍익은 노군(奴軍)과 잡류 별초(雜類別抄)를 거느리고 서로 시기하였다. 몽골병이 오자, 우종주와 유홍익은 양반 등과 함께 다 성을 버리고 도주하고, 오직 노군과 잡류만이 힘을 합하여 쳐서 이를 쫓았다. 〈고려사〉
창닫기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