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국사교과서Ⅲ. 통치 구조와 정치 활동3. 근세의 정치[5] 조선 초기의 대외 관계

여진과 관계

조선은 영토의 확보와 국경 지방의 안정을 위하여 여진에 대하여 적극적인 외교 정책을 펴 나갔다. 우선 태조에 의하여 일찍부터 두만강 지역이 개척되었다. 이어 세종 때에는 4군6진을 설치하여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하는, 오늘날과 같은 국경선을 확정하였다.

이후 여진에 대하여 조선은 회유와 토벌의 양면 정책을 취하였다. 조선은 여진족의 귀순을 장려하기 위하여 관직을 주거나 정착을 위한 토지와 주택을 주어 우리 주민으로 동화시켰다. 또, 사절의 왕래를 통한 무역을 허용하였고, 국경 지방인 경성과 경원에 무역소를 두고 국경 무역을 허락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교린 정책에도 불구하고 여진족은 자주 국경을 침입하여 약탈을 자행하였고, 이 때마다 조선에서는 군대를 동원하여 이들을 정벌하였다.

이와 함께 조선은 삼남 지방의 일부 주민을 대거 북방으로 이주시켜 압록강과 두만강 이남 지역을 개발하는 사민 정책을 실시하였고, 토착민을 토관으로 임명하여 민심을 수습하려 하였다.

야연사준도(夜宴射樽圖)
창닫기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