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국사교과서Ⅳ. 경제 구조와 경제 생활4. 근대 태동기의 경제[2] 서민 경제의 발전

양반 지주의 경영 변화

양반은 양 난 이후 토지 개간에 주력하는 한편, 농민의 토지를 사들여 농토를 늘렸다. 그리고 토지를 소작 농민에게 빌려 주고 소작료를 받는 지주 전호제로 경영하였는데, 이러한 현상은 18세기 말에 이르러 일반화되었다.

상품 화폐 경제가 발달하면서 지주 전호제도 변화해 갔다. 양반양반과 지주라는 신분적이며 경제적인 지위를 이용하여 소작료와 그 밖의 부담을 마음대로 강요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점차 소작인의 저항이 심해지자, 소작인의 소작권을 인정하고 소작료도 낮추거나 일정액으로 정하는 추세가 나타났다. 지주 전호제가 지주와 전호 사이의 신분적 관계보다 경제적 관계로 바뀌어 갔다.

대체로, 양반은 소작료를 거두어 생활하거나 이 소작료로 받은 미곡을 시장에 팔아 이득을 남겼다. 또, 토지에서 생기는 수입으로 토지 매입에 더욱 열을 올렸다. 그리하여 천석꾼, 만석꾼이라고 불리는 지주도 나타났다.

양반 중에는 물주로서 상인에게 자금을 대거나 고리대를 하여 부를 축적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적 변동 과정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여 몰락하는 양반도 나타났다.

18세기 황씨 가문의 토지 집적과 추수기(충남 부여)
위치 논/밭 원소유주 면적(두락) 면적(평) 수취 방식 계약량 수취량 작인
도장동 송득매 8 1600 도지 4석 4석 주 서방
도장동 자근노음 7 1400 도지 4석 4석 검금
불근보 이풍덕 5 1000 도지 2석 5두 1석 3두 5승 막산
소삼 이풍덕 12 2400 도지 7석 10두 6석 동이
율포 송치선 7 1400 도지 4석 1석 10두 주적
부야 홍 서방 6 1200 도지 3석 5두 2석 10두 주적
잠방평 쾌득 7 1400 도지 4석 2석 1두 명이
석을고지 수양 10 2000 도지 7석 4석 10두 수양
합 계 62 12,400   36석 5두 26석 4두 5승  
창닫기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