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국사교과서Ⅳ. 경제 구조와 경제 생활5. 근⋅현대의 경제[1] 외세의 경제 침략과 국민 경제의 모색

자주적 근대화의 좌절

러⋅일 전쟁 중에 일제는 일본인을 재정 고문으로 임명하도록 강요하였다. 이후 일제는 국가의 모든 수입과 지출 과정을 장악하였으며,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세를 늘려 나갔다. 나아가, 황실의 수입을 국유화함으로써 황실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또, 일본의 제일은행이 중앙 은행 기능을 맡도록 하여 대한제국의 금융 정책을 지배하였으며, 1905년에는 그 동안 사용하던 화폐를 새 화폐로 교환하게 하였다. 이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국내의 상공업자나 금융 기관은 크게 위축되었다.

한편, 일제는 러⋅일 전쟁 중에 철도 부지와 군용지 확보를 구실로 국유지나 황실 소유의 토지를 빼앗았다. 이후 여러 가지 구실로 많은 토지를 국유지로 편입시키고, 동양 척식 주식회사를 내세워 일본인이 토지를 늘릴 수 있도록 지원하였다.

러⋅일 전쟁 이후에 일제의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대한제국의 근대화 노력은 좌절되었다. 반면에, 일제는 식민지화를 위한 경제적 토대를 갖추어 갔다.

도움글

화폐 교환과 한국인의 피해

일제의 화폐 정리 사업에 의해 화폐 교환이 이뤄지던 1905년 당시, 한국인은 상평통보(엽전)와 백동화를 사용하였다. 백동화는 갑오개혁 이후에 사용되던 화폐였다. 그런데 일제는 백동화의 화폐 가치가 일정하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교환에 불이익을 크게 주었다. 즉, 백동화를 질에 따라 갑, 을, 병으로 나눈 다음, 병종은 교환에서 제외하였다. 한국 상인이 소유한 백동화의 상당수가 을종이나 병종으로 판정받았다. 게다가 소액을 가진 농민은 교환하기도 어려웠다. 한국 사람은 앉은 자리에서 막대한 화폐 자산을 상실당하였으나, 이러한 정보를 미리 알고 있던 일본 상인들은 병종 백동화를 이용하여 물건을 구입함으로써 부당 이익을 챙기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경제적 어려움에 빠졌던 많은 회사가 이 때 일본인에게 넘어가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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