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국사교과서Ⅴ. 사회 구조와 사회 생활1. 고대의 사회[3] 남북국 시대의 사회

통일 신라 말의 사회 모순

신라 말기가 되면서 귀족들의 정권 다툼과 대토지 소유 확대로 백성의 생활은 더욱 어려워졌고, 지방의 토착 세력과 사원들은 대토지를 소유하면서 유력한 신흥 세력으로 성장해 갔다. 지방의 자영농들은 귀족들의 농장이 확대되면서 몰락해 갔다. 더욱이 중앙 정부의 통치력 약화로 대토지 소유자들은 세금을 부담하지 않는 대신, 농민이 더 많은 조세를 감당하게 되었다.

9세기 이후 자주 발생한 자연 재해는 농민의 처지를 더욱 어렵게 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지방의 유력자를 중심으로 곳곳에서 무장 조직이 결성되었고, 이들을 아우른 큰 세력가가 호족으로 등장하였다.

토지를 상실한 농민은 소작농이 되거나 고향을 버리고 떠돌게 되었다. 걸식을 하거나 산간에서 화전을 일구기도 하였으며, 노비로 전락하기도 하였다.

9세기 말 진성 여왕 때에는 사회 전반에 걸쳐 모순이 증폭되었다. 중앙 정부의 기강이 극도로 문란해졌으며, 지방의 조세 납부 거부로 국가 재정도 바닥이 드러났다. 그리하여 한층 더 강압적으로 조세를 징수하자, 마침내 각지에서 농민들이 봉기하였다. 상주에서 일어난 원종과 애노의 난을 시작으로 농민의 항쟁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중앙 정부는 지방에 대한 통제력을 거의 잃어 갔다.

읽기자료

통일 신라 말기의 전란

진성 여왕 3년(889) 나라 안의 여러 주⋅군에서 공부(貢賦)를 바치지 않으니, 창고가 비고 나라의 쓰임이 궁핍해졌다. 왕이 사신을 보내어 독촉하였지만, 이로 말미암아 곳곳에서 도적이 벌 떼같이 일어났다. 이에, 원종, 애노 등이 사벌주(상주)에 의거하여 반란을 일으키니, 왕이 나마 벼슬의 영기에게 명하여 잡게 하였다. 영기가 적진을 쳐다보고는 두려워하여 나아가지 못하였다. 〈삼국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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