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국사교과서Ⅴ. 사회 구조와 사회 생활4. 근대 태동기의 사회[3] 사회 변혁의 움직임

천주교의 전파

천주교는 17세기에 중국 베이징의 천주당을 방문한 우리 나라 사신들에 의하여 서학으로 소개되었다. 천주교가 신앙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18세기 후반이었다. 당시 정치와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고자 고심하던 남인 계열의 일부 실학자들이 천주교 서적을 읽고 신앙 생활을 하게 되었으며, 이승훈이 베이징에서 서양인 신부에게서 영세를 받고 돌아온 이후로 신앙 활동이 더욱 활발해졌다.

정부는 천주교가 유포되는 것에 대하여, 내버려 두면 저절로 사라질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점차 교세가 확장되고 천주교가 조상에 대한 유교의 제사 의식을 거부하자, 양반 중심의 신분 질서 부정과 국왕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 사교로 규정하기에 이르렀다.

정조 때에는 천주교에 대하여 비교적 관대하였으나, 순조가 즉위한 직후에 대탄압이 가해졌다(1801). 이 사건으로 천주교 전래에 앞장섰던 실학자 및 많은 수의 양반 계층이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 천주교는 안동 김씨의 세도 정치기에 탄압이 완화되면서 백성에게 활발히 전파되었다. 조선 교구가 설정되고, 서양인 신부가 몰래 들어와 포교하면서 교세가 확장되어 갔다.

천주교의 교세가 커진 것은 세도 정치로 말미암은 사회 불안과 어려운 현실에 대한 불만, 그리고 신 앞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논리, 내세 신앙 등의 교리가 일부 백성에게 공감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천주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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