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국사교과서Ⅱ. 삼국의 성립과 발전2. 삼국의 발전[3] 신라가 한강 유역을 차지한 의미는 무엇인가?

신라의 발전

신라는 지증왕을 거쳐 법흥왕, 진흥왕에 이르면서 크게 발전하여 삼국을 통일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지증왕 때에는 나라의 면모가 날로 새로워지는 것에 맞추어 나라 이름을 ‘신라’로 정하고, 왕호를 마립간에서 중국식 칭호인 ‘왕’으로 바꾸어 왕권을 강화하였다.

지증왕 때에는 지금의 울릉도우산국을 정복하였으며, 정치 제도를 더욱 갖추어 나갔다. 이 밖에 전국적인 지방 제도인 주⋅군 제도를 정하고 관리를 파견하여 다스렸다. 이것은 신라가 선진 중국 문화와 정치 제도를 받아들여 중앙 집권을 강화하겠다는 의도를 나타낸 것으로, 신라 사회의 한층 발전된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다. 법흥왕 때에는 나라의 법령인 율령을 반포하고, 17관등과 모든 관리들이 입는 공복을 정하였다. 이것은 다양한 세력을 국왕의 통제 아래에 통합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또, 병부를 설치하여 군사 지휘권을 장악하였으며, 골품제를 정비하고 진골 귀족 회의의 대표자인 상대등을 두어 중앙 집권 국가의 모습을 갖추었다.

이 때 ‘건원’이라는 연호를 사용하였는데, 이것은 중국과 대등한 나라라는 자주 의식을 나타낸 것이다. 또, 귀족 세력의 반대를 물리치고 불교를 공인하여 국민의 정신적 통일을 꾀하였으며, 김해의 금관가야를 정복하여 낙동강 유역의 가야 땅으로 진출하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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