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국사교과서Ⅱ. 삼국의 성립과 발전3. 신라의 삼국 통일[1] 고구려가 수⋅당의 침략을 막아 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삼국의 대외 관계

삼국은 국가 발전 과정에서 각 나라의 이익과 한반도의 세력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서로 대립하거나 연합하였다. 삼국의 대외 관계는, 삼국은 물론, 중국을 비롯한 동북 아시아의 국제 정세와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당시 중국은 위⋅진⋅남북조 시대로서 오랜 분열을 겪고 있었는데, 삼국은 이를 외교적으로 잘 활용하였다.

삼국은 중국과 평화적인 교섭을 벌이기도 하고, 중국의 침략에 과감히 맞서 싸우기도 하였다. 그 밖에 북방 민족이나 왜 등과 교류하였다. 그리고 자기 나라의 발전에 필요한 중국의 선진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정치적, 문화적 이익을 얻었다.

6세기 중엽에 신라는 한강 유역을 차지하였으나, 고구려와 백제의 협공으로 고립되었다. 고구려는 빼앗긴 한강 유역을 되찾기 위해, 백제는 전사한 성왕의 원수를 갚기 위해 신라를 협공하였다. 두 나라는 중국 교류의 관문인 신라의 당항성을 맹렬히 공격하였다.

이 무렵, 오랜 분열과 혼란을 거듭해 온 중국이 수에 의해 통일되었다. 이에, 국가적인 위기에 빠져 있던 신라는 수에 도움을 청하였다. 한편, 수의 등장에 위협을 느낀 고구려는 같은 처지에 놓인 유목 민족인 돌궐과 연합하여 수에 대항하였다. 그리고 신라와 적대관계에 있던 백제는 고구려와 힘을 합쳐 신라에 맞섰다. 이리하여 6세기 말 동북 아시아의 국제 정세는 고구려, 백제, 왜, 돌궐을 연결하는 남북 세력과 신라, 수(당)를 연결하는 동서 세력 간 다툼의 양상을 띠었다.

오회분 4호 묘 벽화 야철신 | 중국 길림성 집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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