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국사교과서Ⅴ. 조선의 성립과 발전3. 왜란과 호란의 극복[2] 광해군은 왜 중립 외교 정책을 폈는가?

동아시아의 정세

금이 몽골의 침입을 받아 멸망한 후 여진족은 만주 일대에 흩어져 살고 있었다. 통일된 세력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던 여진족은 명과 조선에 대하여 이중적인 종속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러다가 임진왜란을 계기로 명이 쇠약해지자 다시 성장하게 되었다. 누르하치는 서서히 여진족을 규합하기 시작하여 16세기 말에 이르러 여진족을 통일하였다. 그러나 누르하치는 명을 자극하지 않기 위하여 조공을 바치는 등 명에 대해 순종적인 정책을 취하였다. 그러나 17세기 초가 되면서 명의 국력이 날로 쇠퇴해 가는 데 비해 여진족은 나날이 강성해져, 누르하치는 ‘대금’이라는 국호로 후금을 건국(1616)하고 명에 대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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