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국사교과서Ⅴ. 조선의 성립과 발전3. 왜란과 호란의 극복

학습 정리

1. 내용의 요지

가. 임진왜란의 극복

⋅ 조선은 수군의 승리와 의병의 활약으로 왜란을 극복할 수 있었다.

⋅ 조선은 왜란으로 인적, 경제적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 왜란 이후 일본에서는 정권이 바뀌었고, 중국에서는 명이 쇠퇴하고 여진족후금이 등장하였다.

나. 광해군의 중립 외교

광해군은 국제 정세의 변화에 잘 대처하였다.

인조반정으로 집권한 서인 정권친명 배금 정책을 취하였다.

다. 북벌 운동의 추진

여진족(후금)의 침입으로 정묘호란이 일어났다.

⋅ 조선은 청의 침입에 항쟁하였으나, 삼전도의 굴욕을 겪게 되었다(병자호란).

효종은 민족적 수치를 씻기 위해 북벌 운동을 추진하였으나 실현하지 못했다.

2. 주요 용어

임진왜란 | 의병 | 통신사 | 병자호란 | 나선 정벌

이순신 | 권율 | 곽재우 | 송시열 | 이완 | 정발 | 송상현

3. 탐구 활동

다음 글을 읽고, 인조반정이 일어난 까닭을 말해 보자.

역신 이이첨과 정인홍 등이 그의 악행을 부추겨 형(임해군)과 아우(영창 대군)를 섬에 가두어 죽이고, 연흥 부원군 김제남을 멸족하는 등 여러 차례 큰 옥사를 일으켜 무고한 사람들을 살육하였다. 왕의 막내아우인 능창군도 무고를 입고 죽으니, …… 대비를 서궁에 유폐하고 대비의 존호를 삭제하는 등 그 화를 헤아릴 수 없었다. 전 왕조의 옛 신하들로서 다른 뜻이 있는 자는 모두 추방하여, 당시 어진 선비가 죄에 걸리지 않으면 초야에 숨어 버려 사람들이 모두 불안해하였다. 또, 토목 공사를 크게 일으켜 해마다 쉴 새가 없었고, 간신배가 조정에 가득 차고 후궁이 정사를 어지럽혀 크고 작은 벼슬아치의 임명이 모두 뇌물로 거래되었으며, 법도가 없이 가혹하게 거두어들임으로써 백성들이 수화(水火) 속에 든 것과 같았다. 임금이 윤리와 기강이 무너져 종묘 사직이 망해 가는 것을 보고 있을 수 없어 난을 제거하고 반정(反正)할 뜻을 두었다.

인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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