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국사교과서Ⅸ. 민족의 독립 운동3. 독립 전쟁의 전개[1] 독립군의 무장 독립 전쟁이 거둔 성과는?

독립군의 승리

일본군은 독립군의 활동을 막기 위해 대한 독립군을 비롯한 몇 개의 독립군 부대가 주둔하고 있던 봉오동을 습격해 왔다. 홍범도가 이끄는 대한 독립군 등은 이를 미리 알고 대비하고 있다가 일본군을 맞아 큰 승리를 거두었다. 이것이 봉오동 전투이다(1920. 6.).

봉오동에서 패한 일본군은 더욱 규모가 큰 부대를 보내어 독립군을 공격하는 한편, 각 지역에 살고 있는 우리 동포를 마구 학살하면서 독립군을 포위하여 완전히 제거하려는 작전을 폈다.

김좌진이 이끄는 북로 군정서군을 비롯한 여러 독립군 부대들은 삼도구에 있는 청산리 일대에 집결하여 일본군을 맞아 싸울 준비를 갖추었다. 일본군 대부대와 전투가 벌어지자, 독립군은 지형을 잘 이용한 효과적인 작전과 목숨을 아끼지 않는 투지로 6일 동안의 대전투 끝에 일본군을 크게 물리쳤다. 이것이 청산리 대첩이다(1920. 10.).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이 지역 일대에 거주하는 동포들의 협력은 전투의 승리에 큰 도움을 주었다.

청산리 대첩은 우리 민족이 독립 전쟁 과정에서 거둔 가장 큰 승리였으며, 우리 겨레에게 용기와 함께 독립에 대한 희망을 가지게 한 값진 선물이 되었다.

청산리 대첩

1920년 10월 21일부터 10월 26일까지 10여 차례의 전투에서 일본군은 연대장을 포함하여 1200여 명이 전사하고, 독립군은 100여 명이 전사하였다.
청산리 대첩 때 사용된 무기류
창닫기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