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국사교과서태조(太祖)-선조(宣祖)태조조(太祖朝)

태조 원년(1392)

개국 기원 임신 원년(壬申元年, 1392) 가을 7월 17일1) 병신(丙申)에 태조(太祖)가 송경(松京, 개성)의 수창궁(壽昌宮)에서 즉위하시고, 국호를 조선(朝鮮)이라고 하셨다. 그 당시 고려의 정치가 문란하여 민심이 떠났는데 태조의 공과 덕이 이미 융성하여 백성의 마음이 모두 [태조에게로] 향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태종(太宗, 이방원)이 남은(南誾), 조인옥(趙仁沃), 조준(趙浚), 정도전(鄭道傳), 조박(趙璞) 등 52명과 함께 모의하여 [태조를 왕으로] 추대하기로 하였다. 배극렴(裵克廉)2) 등이 사람들을 이끌고 국보(國寶)를 받든 후 잠저(潛邸)3)로 찾아가 한 목소리로 [태조에게] 왕위에 오르실 것을 권하였다. 태조께서는 극구 거절하셨으나 사람들이 그 곁을 지키며 물러가지 않자 부득이 즉위하셨다.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의 제도, 과거(科擧) 제도, 관혼상제(冠婚喪祭)의 예(禮), 수령을 선발하고 절의(節義)를 지킨 사람들을 포상하는 일을 차례로 거행하셨다. 경기에 과전(科田)을 설치하여 사대부(士大夫)를 우대하셨고, 주군(州郡)에 군전(軍田)을 설치하여 군대를 양성하셨다.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군(恭讓君)4)을 간성(杆城, 강원도 고성 지역)에 두고 왕씨(王氏)의 모친과 형제들을 마전(麻田, 경기도 연천 지역)에 두어, [그들로 하여금] 신성왕(神聖王, 고려 태조 왕건)과 공민왕(恭愍王)의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태조의 아버지와 그 조상] 4대를 추존하고 익안 대군(益安大君) 이방의(李芳毅) 등 39인을 개국공신(開國功臣)으로 삼았다.

1)원문에는 16일로 되어 있으나, 『태조실록』에 의하면 17일이므로 바로잡는다.
2)원문에는 배극렴(裴克廉)으로 되어 있으나, 배극렴(裵克廉)으로 바로잡는다.
3)임금이 왕위(王位)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을 말한다.
4)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恭讓王)으로 태조 1년(1392) 8월에 공양군으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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