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종 2년(1547)
정미 2년(丁未二年, 1547)에 삼공(三公, 좌의정⋅우의정⋅영의정을 합하여 부르던 칭호)과 재추(宰樞, 2품 이상의 관료)에게 명하여 쓰시마 섬[對馬島]과의 약조(條約)를 논의하여 정하게 하였다. 정언각(鄭彦慤)이 양재역(良才驛)의 벽(壁) 위에 붉은 글씨로 쓴 원망하는 말들이 있다고 하여 봉해 올렸다. 그 글은 ‘여주(女主)가 위에서 정권을 잡고 간신(奸臣)이 아래에서 권세를 농간하고 있으니 나라가 장차 망할 것을 서서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윤원형(尹元衡)이 윤인경(尹仁鏡), 이기(李芑), 정순붕(鄭順朋)1)으로 하여금 응당 죄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을 열거해 써서 입계하게 하였다. 이에 봉성군(鳳城君) 이완(李岏), 송인수(宋麟壽), 이약빙(李若氷)2)는 모두 사사하고, 이언적(李彦迪), 노수신(盧守愼), 임형수(林亨秀), 유희춘(柳希春), 김난상(金鸞祥), 권벌(權橃), 백인걸(白仁傑) 등 30인은 안치(安置)3)하거나 부처(付處)4)하였다. 정언각이 경기도 관찰사(京畿道觀察使)로 있다가 말에서 떨어져 사망하니 사람들이 통쾌함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