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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비법

제목 시비법
한자명 施肥法
유형
시대 고려 시대, 조선 시대
관련국가 고려, 조선
유의어
별칭•이칭

[정의]

토양이나 작물에 인위적으로 비료를 공급하여 농작물의 생육을 촉진하는 방법.

[내용]

농업 생산량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요인은 비료의 공급이다. 고려 말과 조선 초기에 도입된 새로운 농법 가운데 핵심 요소도 바로 시비법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 도입된 새로운 시비법 때문에 조선 초기에는 연이어서 토지에 작물을 경작할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농법이 도입되기 전인 고려 시대에는 지력이 높지 않아 작물을 연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휴경(休耕)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조선 초기 중국의 강남 지역 농법이 전래되면서 시비법이 전파되었고 연작상경(連作常耕)이 일반화되었다.

조선 전기에 전파된 시비법은 사용하는 재료, 시기, 시비 대상 작물에 따라 구별할 수 있다. 조선 전기에 사용된 시비 재료는 분(糞)으로, 벼농사에는 오래 삭힌 분과 재와 소변을 섞은 요회(尿灰, 오줌재)가 사용되었다. 그리고 밭작물에는 이 숙분과 요회를 한꺼번에 섞은 분회(糞灰)가 사용되었다. 그 밖에도 우마(牛馬)의 배설물과 잡초 등이 널리 사용되었다. 그리고 시비하는 시기에 따라 파종 전에 시비하는 기비(基肥)와 파종 후에 시비하는 추비(追肥)로 구분되었다.

시비법의 발전은 농업 서적의 서술 체계에도 변화를 주어 16세기 후반 이후 간행된 농서에는 시비 항목이 독립적인 지위를 획득했다. 조선 후기의 시비 방식은 인분과 다른 야초(野草) 등을 혼합하고 주변 재료를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조선 초기와 구별된다. 또한 주로 밭에 활용되었던 시비 재료를 논에도 활용하는 등 시비의 재료와 시비 대상이 조선 후기 들어 확대되는 특징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시비법은 시비 재료의 제한 때문에 무한대로 발전 확대될 수 없었고, 조선 후기까지 별도의 비용을 들여 비료를 구매하는 금비(金肥)도 나타나지 않았다.

▶ 관련자료

ㆍ시비법(施肥法)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