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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성

제목 9성
한자명 9城
유형
시대 고려 시대
관련국가 고려
유의어
별칭•이칭

[정의]

1107년(예종 2) 윤관(尹瓘)의 군대가 여진족을 정벌하고 획득한 동북 변경 지역에 설치한 9개의 성.

[내용]

한반도 북부와 만주 일대에 거주하던 여진족이 11세기 말 완옌부[完顔部]를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하면서 고려와 여진족 사이에 긴장 관계가 형성되었다. 고려는 이 일대 여진족에 대하여 해동천자(海東天子)를 자처하며 우위를 점하고 있었으나, 완옌부가 세력을 확장하면서 이러한 권위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숙종(肅宗, 재위 1095∼1105)은 임간(林幹)과 윤관 등을 파견하여 여진 정벌을 시도하였으나 모두 실패하여 여진족이 거주하는 기미주(羈縻州)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이에 고려는 별무반(別武班)을 조직하고 대대적으로 전쟁 준비에 나섰다. 1107년 윤관을 원수(元帥)로 약 17만 명에 달하는 별무반이 옛 땅 수복을 명분으로 내걸고 여진족 정벌에 나섰다. 전쟁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135개의 여진족 촌락을 점령하여 이 지역에 9성을 쌓고, 1108년(예종 3) 4월에 개경(開京)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곧바로 완옌부를 중심으로 한 여진족이 강력하게 저항해 왔다. 윤관 등은 다시 출정하였으나 1년이 넘도록 전투에서 진전이 없었으며, 오히려 길주(吉州)와 공험진(公嶮鎭)이 여진족에게 함락되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여진에서 9성을 돌려주는 조건으로 화친을 청하자, 고려에서도 이를 수락하였다. 오랜 전쟁을 치르면서 재정적 부담과 인명 피해가 심했을 뿐만 아니라, 각 성 사이의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어 방어선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1109년(예종 4) 7월 9성을 돌려주고 주둔군을 철수하였다.

9성은 기록에 따라 명칭도 조금씩 다를 뿐 아니라 위치는 견해 차가 매우 크다. 또한 9개 이상의 성을 축조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체로 함주(咸州), 영주(英州), 웅주(雄州), 길주, 복주(福州), 공험진, 진양진(眞陽鎭), 통태진(通泰鎭), 숭녕진(崇寧鎭), 의주(宜州), 평융진(平戎鎭) 등이 이 무렵 설치된 성이다.

9성의 위치에 대해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윤관이 세운 비석이 있었다는 공험진이다. 공험진의 위치를 추정하는 견해는 대략 세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두만강 북쪽 700리 되는 곳이라는 조선 초기 지리지류의 기록에 근거하여 두만강 북쪽 700리 지역부터 그 이남으로 정평(定平, 현 함경남도 정평군)까지 함경남⋅북도 일대에 9성이 건설되었다는 견해이다. 둘째는 길주(현 함경북도 길주군) 이남부터 정평까지 주로 함경남도 일대에 9성이 있었다는 주장으로, 조선 후기 실학자들의 견해이다. 셋째는 함흥평야 일대에 한정되어 있었다는 주장으로, 일제 강점기 일본인 학자들의 견해이다.

▶ 관련자료

ㆍ동북 9성(東北九城)
ㆍ9성(九城)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