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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

제목 남경
한자명 南京
유형
시대 고려 시대
관련국가 고려
유의어 한양부(漢陽府), 남경유수부(南京留守府)
별칭•이칭

[정의]

고려 시대에 설치된 별경(別京) 중 하나.

[내용]

남경(南京)은 고려 시대에 지금의 서울특별시 종로구를 중심으로, 서울 강북 일대와 구리시, 남양주시 일부에 이르는 지역에 설치되었던 별경(別京)이다. 고려 시대 유행하던 풍수 예언 사상에 영향을 받아 서경(西京, 지금의 평양직할시), 동경(東京, 지금의 경상북도 경주시)에 이어 1067년(문종 21) 처음 설치되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폐지된 것으로 보인다.

본격적으로 남경을 건설하기 시작한 이는 숙종(肅宗, 재위 1095∼1105)이다. 술사(術士)인 김위제(金謂磾)는 풍수 예언서에 근거하여, 왕조의 통치를 연장하기 위해서는 새로이 경(京, 도읍)을 설치해야 할 때라고 하였다. 양주(楊州, 현재의 한강 이북 지역) 삼각산 남쪽 목멱산 인근에 남경을 설치하여, 국왕이 서경(평양)⋅중경(개경)⋅남경에서 1년에 4개월씩 돌아가며 머무른다면, 왕조의 통치가 연장되고 주변 국가들이 조회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1099년(숙종 4) 양주 일대에 궁궐터를 살핀 후, 1101년(숙종 6) 남경개창도감(南京開創都監)을 설치하고 궁궐 등을 짓기 시작하였다. 남경의 전체 영역은 확실하지 않으나, 북쪽은 백악, 동쪽은 대봉(大峯), 남쪽은사리(沙里), 서쪽은 기봉(岐峯)을 자연 경계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남경 궁궐은 1104년(숙종 9)에 완공되었으며, 국왕이 때때로 머무르는 고려 별경 역할을 수행하였다. 남경에는 행정 기구로 유수관(留守官)이 설치되었다. 남경 유수관에 배속된 관원으로는 3품 이상 임명하는 유수(留守) 1명, 4품 이상의 부유수 1명, 6품 이상의 판관(判官) 1명, 8품 이상의 법조(法曹) 1명, 9품 이상의 문사(文師)⋅의사(醫師) 각 1명 등이 있었다.

남경은 1308년(충렬왕 34) 한양부(漢陽府)로 격하되고, 윤(尹)⋅판관(判官)⋅사록(司錄) 등의 관원이 설치되었다. 우왕(禑王, 재위 1374∼1388)과 공양왕(恭讓王, 재위 1389∼1392) 대 잠시 이곳으로 천도(遷都)하기도 하였으며, 조선 건국 후 조선의 수도 한성이 되었다.

[의의]

고려 별경 중 하나인 남경은 현 종로구 일대를 중심으로 새로이 건설하였기 때문에, 현재 광진구 일대에 있었던 양주 읍지에서 현 서울 구도심 지역으로 중심지가 이동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남경은 이후 조선의 도읍지가 되었으며, 지금도 대한민국 수도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 관련자료

ㆍ남경(南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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