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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의제문

제목 조의제문
한자명 弔義帝文
유형
시대 조선 시대
관련국가 조선
유의어
별칭•이칭

[정의]

무오사화의 발단이 된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의 글로, 항우의 손에 죽은 초나라 회왕(懷王)을 조문하는 내용.

[내용]

이 글은 세조(世祖, 재위 1455~1468) 대 김종직이 경산으로 향하던 길에 답계역이란 곳에서 자다가 꿈에서 초나라 회왕, 즉 의제(義帝)를 만난 것을 계기로 지었다고 한다. 초나라 회왕은 항우(項羽)의 손에 살해되었는데, 항우는 초나라 출신으로 회왕과는 본래 군신(君臣) 관계였다. 김종직은 작품에서 중국 사람인 회왕이 조선 사람인 본인의 꿈에 나타난 것이 매우 신기한 일이라 하면서, 회왕을 위로하는 내용의 글을 지었다.

그런데 이 작품을 김종직의 문인인 김일손(金馹孫, 1464~1498)이 사초에 적어 넣은 것이 화근이 되었다. 연산군(燕山君, 재위 1494~1506)이 즉위하고 나서 『성종실록』을 편찬할 때 편찬 책임자인 이극돈(李克墩, 1435~1503)이 이 작품을 ‘김종직이 단종(短宗, 재위 1452~1455)을 회왕에 비유한 것이다’라고 문제 삼은 것이다. 당시 김일손의 사초에는 이극돈의 비리를 적은 것이 많아, 이극돈이 김일손에 대해 앙심을 품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비리를 감추기 위하여 이 작품을 문제 삼았으며, 3사의 관원에게 자주 탄핵을 당하던 유자광에게 알려 연산군에게 보고되게 하였다.

이극돈의 고변으로 시작된 이 ‘조의제문’ 사건은 이후 무오사화(1498)의 발단이 되었다. 이로 인하여 김일손을 비롯한 많은 김종직의 문인들이 연루되어 죽거나 파직되었다. 당시 김종직은 이미 사망한 이후였는데, 대역죄의 명목으로 관을 부수어 시신을 베는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당하였다.

▶ 관련자료

ㆍ조의제문(弔義帝文)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