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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관

제목 춘추관
한자명 春秋館
유형
시대 고려 시대, 조선 시대
관련국가 고려, 조선
유의어 예문춘추관(藝文春秋館), 사관(史館), 사국(史局), 춘록관(春綠館)
별칭•이칭

[정의]

나랏일을 기록하기 위하여 설치한 관서.

[내용]

춘추관은 고려 시대 때 최초로 건립되었고, 조선 건국 이후에는 예문춘추관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후 태종(太宗, 재위 1400~1418) 대 춘추관이라 개칭하였고, 나랏일의 기록과 역사서를 편찬하는 일을 담당하게 하였다. 춘추관은 전담 관원이 배치된 기관이 아니었으며, 최고 책임자인 영관사(領館事)에서부터 실무를 담당한 하위직까지 모두 타 관서의 관원이 겸임하는 겸직 관서였다. 이례적으로 영의정⋅좌의정⋅우의정이 모두 겸직을 맡았으며, 기타의 관원 모두 문관으로만 임용하였다.

춘추관의 기본 임무는 매일의 국정 일체를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다. 이를 사초(史草)라 하는데, 예문관(藝文館)에 소속된 8명의 전임 사관(史官)이 매일 2부씩 작성하여 1부는 춘추관에 제출하고, 남은 1부는 집에 보관하였다. 국왕이 승하하고 다음 국왕이 즉위하면 전대 왕에 대한 실록을 편찬하는데, 이때 사관들이 기록한 사초와 시정기(時政記)를 모두 수합하여 실록 편찬의 자료로 삼았다. 춘추관 관원은 이 실록청에 배속되어 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이리하여 춘추관의 관직을 겸직하는 사람들도 넓은 의미에서 사관이라고 지칭하기도 하였다.

춘추관은 만들어진 실록을 보관, 관리하는 업무도 맡았다. 편찬된 실록은 춘추관에 1부를 두고, 비상시에 대비하여 지방에 설치된 4개의 사고(史庫)에도 각각 1부씩 보관하도록 하였다. 아울러 실록 외에도 왕실과 관련된 중요 자료를 보관하기도 하였다. 이들 춘추관에 보관된 자료는 국가의 의사 결정 과정에서 과거의 사례를 참조할 때 참고로 활용되었는데, 이러한 경우에도 국왕의 직접 열람은 불가능하였고, 국정과 관련해 필요한 부분을 사관이 등사해 보고하는 방식을 채택하였다.

이처럼 춘추관을 통해 당대의 기록을 정확하게 남겨 역사서로 편찬하고자 하였던 조선 시대의 역사 인식을 엿볼 수 있다.

▶ 관련자료

ㆍ사관(史官)
ㆍ사국(史局)
ㆍ춘추관(春秋館)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