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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군

제목 4군
한자명 四郡
유형
시대 조선 시대
관련국가 조선
유의어 사군(四郡)
별칭•이칭

[정의]

조선 초기에 개척했던 평안도 지역의 4개 군.

[내용]

4군은 조선의 평안도 북변에 위치했던 여연(閭延)⋅자성(慈城)⋅무창(武昌)⋅우예(虞芮)를 가리킨다.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북방으로 진출하고자 했다. 따라서 조선은 군사력과 행정력을 동원해 여진(女眞) 세력을 압도하면서 압록강 일대의 지역들을 조선의 영역으로 확보했다.

우선 조선은 1416년(태종 16) 갑산에서 여연을 분리시켜 강계에 소속시켰다. 특히 세종(世宗, 재위 1418~1450)은 자신의 재위 기간 동안 압록강 일대의 영역을 확보하고 압록강을 조선의 국경선으로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했다. 세종이 추진했던 북방 정책 중 가장 상징적인 것이 바로 대외 정벌이었다. 세종은 1433년(세종 15) 압록강의 지류였던 파저강(婆猪江) 일대의 건주위(建州衛) 이만주(李滿住) 세력에 대한 정벌을 단행했다.

조선은 원정 후 여연과 강계 사이에 성을 쌓아 자성군이라 했다. 1437년(세종 19) 파저강 일대에 대한 2차 정벌 뒤, 1440년(세종 22) 여연군 동쪽에 무창현을 설치했다가 2년 후 군으로 승격시켰다. 1443년(세종 25)에는 여연과 자성의 중간 지점에 우예군을 설치함으로써 4군이 완성되었다.

하지만 계속된 여진의 침입과 군비 증가 등의 문제로 4군 철폐 논의가 활발해지게 되었다. 결국 1445년(단종 3) 여연⋅무창⋅우예를 우선 철폐했고, 1459년(세조 5) 자성군까지 폐지하게 되었다. 이로써 이 지역은 폐4군이라 불렸다. 조선 후기에 일부 4군 지역에 군진(軍鎭)을 설치하기도 했지만 오래 유지하지는 못했다.

4군 개척은 6진 설치와 함께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을 조선의 국경선으로 만드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 관련자료

ㆍ4군(四郡)
ㆍ사군(四郡)
ㆍ4군 6진 개척(4郡 6鎭 開拓)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