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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 정치

제목 왕도 정치
한자명 王道政治
유형
시대 조선 시대
관련국가 조선
유의어 왕도(王道), 왕도 사상(王道思想), 왕도 정치 사상(王道政治思想)
별칭•이칭

[정의]

군주가 공평하고 사사로움이 없는 태도로 정치를 운영해 이상적 사회를 수립하는 것을 의미하는 유교의 대표적 정치사상.

[내용]

유학(儒學)에서는 성왕(聖王)이 자신의 도(道)를 펼쳐 사회적 안정을 이루는 것을 이상으로 추구하고 있다. 따라서 왕도 정치 사상은 유학 사상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무엇보다 유학은 정치적 현실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국가나 사회의 구성원들이 보다 안정적이고 인간적인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 노력했다. 백성들의 인간적인 삶을 보장하기 위한 방법으로 유학에서는 지도자의 덕(德)과 인격을 통한 왕도 정치의 구현이 제시되었다.

원래 ‘왕도’란 공자(孔子, BC 551~BC 479) 이전에는 ‘치우침이 없는 공정함’을 의미했다. 하지만 공자가 이상적인 인간과 정치의 목표로 인(仁)을 제시한 이후 인정(仁政)이 왕도 정치의 핵심으로 위치하게 되었다. 이후 전국 시대에 들어 제후들의 각축전이 확대되는 것을 본 맹자(孟子, BC 372?~BC 289?)는 힘과 무력을 통한 패도(覇道) 정치에 대비되는 개념으로서 인정(仁政)을 내용으로 하는 왕도 정치를 주장하였다. 특히 맹자는 왕도 정치 실현을 위해 백성들이 기본적으로 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군주가 백성들의 안정된 생업을 보장해 주고 이들을 덕으로 감화시킬 때 진정한 왕도 정치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맹자는 민생을 안정시키기 위해 토지 제도와 세금 제도의 개혁, 전쟁의 자제, 백성들의 사정에 따라 처벌의 정도를 구분할 것 등을 주장했다.

맹자의 왕도 정치 사상은 조선 건국 세력에게 큰 영향을 주었는데 특히 맹자의 개혁 정책들은 고려 말과 조선 초기의 개혁 정책에 적극 반영되었다. 새로운 국가 조선을 건국했던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역성혁명을 통해 재위에 오른 새로운 군주가 인정을 펼치는 정치적 상황을 조성해서 개국의 정당성을 보여 줄 필요가 있었다.

왕도 정치 사상의 중요성은 조선 시대 동안 지속적으로 강조되었지만 항상 같은 의미로 사용되지는 않았다. 16세기에 등장했던 사림(士林)의 경우 도학(道學) 정치의 이념을 바탕으로 왕도 사상의 재해석을 시도했다. 또한 17~18세기의 사대부들도 예(禮)에 대한 깊은 관심과 적용을 통해 성리학적 왕도 정치의 이념을 현실 정치에서 실현하고자 노력했다. 이처럼 왕도 정치 사상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이해되고 활용되었다.

▶ 관련자료

ㆍ왕도 정치(王道政治)
ㆍ왕도(王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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