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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사화

제목 을사사화
한자명 乙巳士禍
유형
시대 조선 시대
관련국가 조선
유의어
별칭•이칭

[정의]

조선의 4대 사화(士禍) 중 하나로 1545년(명종 즉위년) 명종(明宗, 재위 1545~1567)이 즉위하면서 모후인 문정왕후(文定王后, 1501~1565)와 외척들이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일으킨 사건.

[내용]

을사사화는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戊午士禍),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甲子士禍),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己卯士禍)와 함께 ‘4대 사화’로 지칭된다. 기묘사화 이후 사림(士林)으로 분류되는 인물들은 대부분 조정에서 활동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1538년(중종 33) 김안로(金安老) 일파가 실각하면서 다시 요직에 기용되었고, 이에 훈구와 사림의 대립 양상이 또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중종(中宗, 재위 1506~1544)이 죽은 뒤 즉위한 인종(仁宗, 재위 1544~1545)이 병 때문에 1년도 안되어 죽고, 다시 명종이 즉위하였다. 이 과정에서 인종과 명종을 중심으로 한 외척들 사이에 정치적 갈등이 발생하였다. 중종의 첫 번째 계비(繼妃)였던 장경왕후(章敬王后) 윤씨는 인종을 낳았고, 두 번째 계비였던 문정왕후 윤씨는 명종을 낳았다. 또한 중종은 김안로 일파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외척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기 때문에 이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진 상황이었다. 이 과정에서 세자 책봉 문제 등을 둘러싸고 문정왕후의 형제였던 윤원형(尹元衡, ?~1565) 세력과 장경왕후의 아우였던 윤임(尹任) 세력이 대립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윤임 세력을 대윤(大尹), 윤원형 세력을 소윤(小尹)이라 불렀다.

을사사화는 윤원형 세력이 명종의 즉위와 함께 문정왕후의 밀지(密旨)를 받아 일으켰던 사건이었다. 당시 윤원형은 자신의 첩이었던 난정(蘭貞)에게 문정왕후에 대한 역모를 고발하도록 시켰다. 이 고발로 인해 대윤 일파에 속했던 주요 인물 대부분이 처형되거나 유배되어 몰락하였다. 을사사화를 계기로 문정왕후와 윤원형을 중심으로 한 소윤 세력이 정치적 실권을 장악하였지만, 파행적인 국정이 거듭되는 가운데, 결국 척신 정권이 붕괴되고 붕당 정치가 시행되는 계기가 되었다.

▶ 관련자료

ㆍ을사사화(乙巳士禍)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