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용어 해설시대별 > 전체

삼수병

제목 삼수병
한자명 三手兵
유형
시대 조선 시대
관련국가 조선
유의어
별칭•이칭

[정의]

조선 후기 훈련도감(訓鍊都監)에 편제된 포수(砲手), 사수(射手), 살수(殺手)를 이르는 말.

[내용]

임진왜란 초기 조선군은 육지 전투에서 왜군에게 연이은 패배를 당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선조는 1592년(선조 26) 8월 훈련도감을 별도로 설치하도록 명을 내렸다. 당시 선조는 명나라에서 왜구를 막는 데 효과적이었던 명령 체계와 지휘 책임을 강조한 척계광(戚繼光)의 교사법(敎士法)을 따르도록 했고, 유성룡(柳成龍)도 명나라의 전법과 지침서였던 『기효신서(紀效新書)』를 따라 군사를 훈련시키는 것에 찬성하였다. 그 결과 선조는 1592년(선조 25) 10월 환도했을 때에 『기효신서』에 소개된 내용의 군사 훈련과 편제를 따라 훈련도감을 조직하게 된다.

『기효신서』의 요지 가운데 하나는 ‘삼수기법(三手技法)’인데, 조총을 다루는 포수와 화살을 다루는 사수, 그리고 창검을 다루는 살수의 기예를 수록하고 있다. 조선에서도 이를 차용하여 처음에는 포수로만 구성되어 있던 훈련도감군에 사수와 살수를 추가로 편제하였다. 훈련도감에서는 조총 때문에 임진왜란 초반 전투에서 패배했다는 생각으로, 먼저 조총수를 훈련시켰다. 훈련을 시킨 지 일 년이 지났을 때, 훈련도감 포수의 사격술이 명나라나 왜군보다 낫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성과가 있었다. 이후 원래는 광해군(光海君, 재위 1608~1623)을 호위하기 위하여 1593년(선조 26)에 설치된 의용대(義勇隊)가 훈련도감의 살수에 편제되었고, 1594년(선조 27) 6월에는 사수가 포함되어 훈련도감은 삼수병(三手兵) 체제를 완성하였다.

▶ 관련자료

ㆍ삼수병(三手兵)
ㆍ포수(총), 사수(활), 살수(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