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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황

제목 전황
한자명 錢荒
유형
시대 조선 시대
관련국가 조선
유의어
별칭•이칭

[정의]

국가에서 발행한 명목 화폐의 부족 현상을 이름.

[내용]

조선 시대 동전의 대규모 유통은 1678년(숙종 4) 상평통보(常平通寶)를 발행하며 시작되었다. 일본으로부터 동전의 원료인 구리를 수입하게 되면서 조선은 이전부터 필요성이 제기되었던 금속 화폐를 제작하여 유통시켰다. 그런데 동광(銅鑛)이 적극 개발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일본으로부터 구리의 수입마저 충분하게 유지되지 못했다. 이에 조선에서는 상평통보를 필요한 만큼 제작할 수 없었고 동전의 수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특히 18세기 초반부터 구리 수입량이 현저하게 줄면서 점차 국가는 늘어난 화폐 수요를 충족시킬 만큼 주전(鑄錢)을 할 수 없었다.

전황을 해결하기 위해 영조는 1727년(영조 3), 1729년(영조 5), 1734년(영조 10)에 조세를 상평통보 대신 면포와 같은 현물로 거두는 정책을 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적 정책에도 불구하고 민간과 관에서 상평통보의 사용이 이미 확대되어 상평통보에 대한 수요는 줄어들지 않았다. 이와 같은 배경 속에서 전황은 해결되지 못한 채 조선 후기 내내 지속되었다.

전황의 가장 큰 원인은 수요만큼 충분한 원료가 공급되지 못한 구조적인 원인에 있었다. 다음으로 민간에서 동전을 유통시키지 않고 축재 수단으로 활용한 데 원인이 있었다. 현물보다 보장성이 좋아 오랫동안 쌓아두고 저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지역 간 동전 거래가 이뤄지지 않고 대부분 동전이 세금의 형태로 서울로 유입되다보니 인위적으로 지역 간 유통을 유발하지 않는 한 지방에서는 전황이 상시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도 했다.

조선 후기 구조적인 동전 부족과 유통의 불균형으로 전황은 지속적으로 나타났지만 동전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증가했기 때문에 전 근대 조선에서는 전황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었다.

▶ 관련자료

ㆍ전황(錢荒)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