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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프 전쟁

제목 청프 전쟁
한자명 淸佛戰爭
유형
시대 근대
관련국가 청(淸), 프랑스
유의어 청불 전쟁(淸佛戰爭), 중법 전쟁(中法戰爭), 청-프랑스 전쟁(Guerre franco-chinoise/Sino-French War), 통킹 전쟁(Tonking War/Tonquin War)
별칭•이칭

[정의]

1884년(고종 21) 베트남을 둘러싸고 청국과 프랑스가 벌인 전쟁.

[내용]

프랑스는 1858년 베트남을 침략하기 시작하여 다음 해 사이공 및 그 주변 지역을 점령했다. 1862년에는 응우옌(Nguyễn) 왕조를 굴복시켜 제1차 사이공 조약을 체결하여 베트남 남부인 코친차이나의 동부 3성을 취했다. 1867년에는 코친차이나 서부 3성을 점령해 베트남 남부 전역을 프랑스의 식민지로 만들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베트남에 대해 종주권을 주장하던 청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프랑스는 베트남 남부를 식민지화한 이후 다시 북부 지역인 통킹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하고자 하였다. 프랑스는 1873년 군대를 파견하여 하노이 등을 점령하고, 1874년 3월 응우옌 왕조를 강박하여 제2차 사이공 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을 통해 프랑스는 베트남의 외교권 감독, 하노이, 하이퐁, 뀌 년의 개항과 홍하의 항행(航行) 개방, 개항장에 프랑스군 주둔, 치외 법권 등을 획득했다.

그러나 제2차 사이공 조약에서 획득한 각종 이권을 제대로 실현할 수 없었던 프랑스는 다시 군대를 파견해 1882년 4월 하노이를 점령하고, 이듬해인 1883년 8월 20일 수도인 후에를 점령했다. 응우옌 왕조는 1883년 8월 25일 프랑스에 항복하고 프랑스의 보호권을 인정하는 후에 조약을 체결했다. 이후 응우옌 왕조는 1년 동안 4명의 황제가 즉위하는 등 혼란이 거듭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청국은 번속국(藩屬國)의 정통 왕위를 보위하고 그에 대한 반신(叛臣)을 정벌한다는 명목을 내걸고 베트남에 대한 종주권을 회복하기 위해 군대를 파병했다. 하지만 1883년 11월 통킹에서 충돌한 후 청프 양군은 지루한 공방전만을 이어갔다. 결국 양국 정부는 협상을 통해 베트남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고, 1885년 6월 22일 톈진 조약(天津條約)을 체결하여 전쟁을 종결하였다. 이 조약으로 청은 베트남이 프랑스의 보호국임을 인정하고 군대를 철수하였다.

▶ 관련자료

ㆍ청불 간 전투
ㆍ청불 전쟁(淸佛戰爭)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