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용어 해설시대별 > 전체

통리기무아문

제목 통리기무아문
한자명 統理機務衙門
유형
시대 근대
관련국가 조선
유의어 내아문(內衙門), 기무아문(機務衙門)
별칭•이칭

[정의]

1880년부터 1882년까지 조선 정부의 외교와 개화 정책을 담당하였던 신설 관청.

[내용]

1876년(고종 13) 개항 이후 조선 정부는 서구 국가들의 조약 체결 요구에 대응하고, 개화 정책을 주체적으로 시행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여 이를 담당할 신설 기구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졌다. 이에 1880년 12월 17일 국내외의 군국기무(軍國機務)를 담당할 기구로 통리기무아문을 신설하였다. 그리고 삼군부를 폐지하고 그 업무를 신설 기관으로 옮겼다. 관청 이름과 기능으로 볼 때, 서양 관련 업무를 관장하던 중국의 총리각국사무아문(總理各國事務衙門)을 모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의 관청이 대외 업무를 주로 담당했다면, 통리기무아문은 국내의 정책 결정에도 중요한 권한을 가졌다.

통리기무아문은 사대사(事大司)⋅교린사(交隣司)⋅군무사(軍務司)⋅변정사(邊政司)⋅통상사(通商司)⋅군물사(軍物司)⋅기계사(機械司)⋅선함사(船艦司)⋅기연사(譏沿司)⋅어학사(語學司)⋅전선사(典選司)⋅이용사(理用司) 등 총 12개 부서로 구성되었다. 통리기무아문의 수장인 총리는 정부 내에서 가장 높은 정1품 아문의 지위를 지녔으며, 정부 대신 중에서 총리를 임명하였다. 그리고 당상(堂上)⋅낭청(郎廳)⋅참사(參事) 등 소속 관리들의 직계를 정하였다. 이에 따라 영의정 이최응(李最應)이 총리대신에, 경기 감사 김보현(金輔鉉), 지중추부사 민겸호(閔謙鎬), 상호군 김병덕(金炳德), 예조참판 김홍집(金弘集) 등 당시 조정의 실력자 10명이 당상에 임명되었다. 1881년(고종 18) 9월에는 사대사와 교린사를 동문사(同文司)로 합하고 나머지 기구를 군무사(軍務司), 통상사(通商司), 전선사(典選司), 율례사(律例司), 감공사(監工司)로 변경⋅통합하였다.

통리기무아문은 개화 문물을 습득하기 위해 중국과 일본에 각각 영선사(領選使)와 조사 시찰단(朝士視察團)을 파견하고, 신식 군대인 별기군(別技軍) 설치, 서양과의 조약 체결 담당, 재정 문제 해결을 위한 주전(鑄錢), 금은 광산 개발, 홍삼 관리 등의 업무를 수행하였다. 1882년 7월 개화 정책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 임오군란(壬午軍亂) 이후 폐지되었다.

▶ 관련자료

ㆍ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