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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신보

제목 한성신보
한자명 漢城新報
유형
시대 근대
관련국가 조선~대한제국, 일본
유의어
별칭•이칭

[정의]

1894년(고종 31) 일본인들이 서울에서 발행한 신문.

[내용]

〈한성신보(漢城新報)〉는 청일 전쟁의 발발과 함께 조선에 거주하던 일본인 아다치 겐조(安達謙藏), 기쿠치 겐조(菊池謙讓), 구니토모 시게아키(國友重章) 등이 일본 외무성과 주한 일본 공사관의 원조를 받아 1894년 말에 창간한 신문이다. 1~2면에는 국문으로 잡보(雜報)를 싣고, 3면에는 일문으로 사설과 외보(外報)를, 4면에는 광고를 실었으며 격일제로 발행되었다. 이어 농상공부(農商工部)의 허가를 받아 같은 제호의 국한문 혼용판을 1896년 1월 23일부터 발간했다.

신문의 체제는 4호 활자, 4단제로 1단은 36행, 1행은 17자였다. 제101호까지는 소형이었으나 제102호부터는 배대판(倍大版)으로 확대되었다. 1903년 10월 1일부터 국한문판과 일문판 모두 일간으로 발행되었다. 〈한성신보〉는 1906년 7월 31일 제2069호를 마지막으로 통감부에서 인수되었고, 이후 〈대동신보(大東新報)〉와 병합되어 통감부의 기관지인 〈경성일보(京城日報)〉가 되었다.

〈한성신보〉는 창간 이후 지속적으로 일본의 조선 침략을 정당화하고, 이에 대한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기사들을 게재하였다. 을미사변에 대하여 대원군과 훈련대(訓鍊隊)가 주도하였다고 왜곡 기사를 내보낸 것이 대표적이다. 또 1896년에는 조선 왕실을 비방하는 동요를 게재하여 물의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한편, 〈한성신보〉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한글 소설이 연재되었다는 점에서 국문학적으로 의의가 있다.

▶ 관련자료

ㆍ한성신보(漢城新報)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