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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상회

제목 백산 상회
한자명 白山商會
유형
시대 근대
관련국가
유의어
별칭•이칭

[정의]

1914년 무렵 안희제(安熙濟, 1885~1943)가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부산에 세운 회사이자 독립운동 단체.

[내용]

상회 이름은 안희제의 호인 백산(白山)에서 유래한다. 대한제국 시기부터 구국 운동을 전개한 안희제는 일제 강점 이후 1911년 만주와 러시아로 망명을 갔다.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국외로 망명한 독립운동가들은 변화한 국제 정세를 독립의 기회로 활용하려 했다. 그들은 국내와 접촉을 더욱 빈번히 시도했고, 항일 투쟁을 지속하기 위해 국내 비밀 연락망을 구축하고 운동 자금을 조달하려 했다. 안희제는 1914년 9월 무렵 부산으로 귀국하여(입국 시기를 1912년 3월 전후로 보는 견해도 있다) 고향인 경상남도 의령의 소유 농지 2,000두락을 팔아 자금을 마련하고, 이유석(李有石)⋅추한식(秋翰植) 등과 더불어 백산 상회를 설립했다.(설립 시점은 1914년 9월 설과 1916년 전후 설로 나뉜다)

상회는 겉으로는 곡물과 해산물, 면포를 판매하는 회사로 위장하였지만, 실제로는 독립운동의 연락과 자금 지원을 목적으로 했다. 1917년에는 경상남도 양산의 대지주 윤현태(尹顯泰)와 경주의 부호 최준(崔浚)⋅최완(崔浣) 형제 등이 투자하여 백산 상회는 자본금 14만 원의 합자 회사로 발전했다. 회사의 위치는 부산부 본정(本町) 3정목이었다. 그 뒤 1919년 1월 14일 백산 무역 주식회사로 설립 인가를 받아 회사를 확대 개편했다. 설립 당시 사장은 최준, 전무 윤현태, 이사에 안희제 등 7명이었다. 영남 지역 항일적인 자산가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자본금은 100만 원에 달했다. 백산 상회는 이미 1916년에 경성(서울)과 원산 등에 지점을 설치했다.(이 밖에 대구⋅원산⋅인천, 만주의 안동과 봉천 등지에 지점을 세웠다는 설이 있다) 1920년대에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연통제(聯通制) 조직을 통해 독립운동가의 연락을 돕고 운동자금을 조달했으며, 〈독립신문〉 보급 등의 독립운동도 전개했다.

그러나 1919년 안희제, 윤현태 등이 단원이었던 비밀 결사 조선 국권 회복단(朝鮮國權恢復團) 활동이 일제 당국에 발각되면서 백산 무역 주식회사 간부와 대다수 주주들이 조사를 받았다. 이후 백산 상회는 경찰의 감시를 받으면서 활동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또 주식회사 전환 이후 경영난으로 인해 주주에게 배당을 못하면서 주주들이 추가 투자를 거부하고 경영진이 여러 차례 바뀌는 등 회사 내 분규가 일어났다. 결국 자금난과 경영 위기 속에 회사는 1928년에 해산되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