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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신문

제목 독립신문
한자명 獨立新聞
유형
시대 근대
관련국가 중국
유의어
별칭•이칭

[정의]

1919년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 정부와 일정한 관계를 가지면서 발행된 신문.

[내용]

〈독립신문〉은 1919년 8월 21일 중국 상하이에서 창간되었다. 창간 당시 제호는 한자로 표기된 〈獨立〉이었다. 이후에는 여러 번의 정간(停刊)과 속간(續刊)을 거치며, 〈獨立〉에서 〈獨立新聞〉으로, 그리고 〈독립신문〉으로 변하였다. 〈독립신문〉은 타블로이드판 형태로 활판 인쇄를 사용하였는데, 기존의 신문들이 등사판(謄寫版) 인쇄를 사용했던 것에서 진일보한 형태였다. 발행 면수는 4단 4면제였으며, 발행 주기는 화⋅목⋅토의 주3회를 원칙으로 하였다.

이광수(李光洙, 1892~1950)가 쓴 것으로 알려진 창간사에 따르면, 〈독립신문〉의 사명(使命)은 다음의 다섯 가지였다. 첫째, 민족 사상의 고취와 민심의 통일, 둘째, 우리의 사정과 사상을 우리의 입으로 전달, 셋째, 여론의 환기, 넷째, 신학술과 신사상의 소개, 다섯째, 국민성 개조 혹은 신국민의 창조였다. 〈독립신문〉은 독립을 기본 전제로 삼으면서, 동시에 세계 열국과 경쟁하기 위하여 문명국민에 상응하는 신사상, 신학술을 준비하고, 신국민을 만드는 것을 발행의 목표로 삼았다.

〈독립신문〉 창간 당시에는 이광수가 사장 겸 주필을 맡았으며, 주요한(朱耀翰), 이영렬(李榮烈), 조동호(趙東祜), 김여제(金輿濟) 등이 참여하였다. 1921년 2월 이광수가 사퇴하고 귀국한 이후에는 주요한, 이영렬, 김승학(金承學), 최천호(崔天浩) 등이 〈독립신문〉의 운영을 맡았고, 주필직은 윤해(尹海)와 박은식(朴殷植) 등이 담당하였다. 박은식은 1922년 8월부터 〈독립신문〉 중국어판 주필이었으나 윤해가 물러나자 국문판 주필직도 겸하였으며, 1924년 12월에는 사장에 취임하였다. 하지만 심각한 재정난으로 한 달에 한 번도 제대로 발행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1925년 11월 11일 제198호로 종간되었다.

▶ 관련자료

ㆍ독립신문(獨立新聞)
ㆍ독립 신문 창간(獨立 新聞 創刊)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